교육, 심사숙고해야할 때
한스럽고 염치없다. 교실붕괴, 학교폭력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 그 소리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교단을 34년간 지키며 교육관을 바로 세워보려고 고집했던 한 사람으로서 교실이 무너지는 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회한(悔恨)의 눈물이 앞선다. 통탄(痛歎)할 일이요. 개탄스러운 바를 떠나 앞날이 걱정스럽고 슬프다. 지난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자괴지심(自愧之心)을 갖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학교가 어찌하여 왜? 이지경이 되었는가! 면구스럽기만 하다. 답답하고 딱한 심정이기에 제자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무거운 죄책감과 책임감도 느낀다. 교육의 붕괴라는 중차대한 현실 앞에서 성실하게 임했어야할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누가 뭐라 해도 당사자인 나만큼은 그 책임과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마당이 채찍을 무섭게 맞고 엄하게 처벌 받아야할 입장이며 처지다.
사람을 사람답게 다듬어가는 것이 교육의 힘이고, 사람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의 길이라 하여 보람으로 여긴 때가 있다. 그리하여 교편을 잡았던 일을, 한때는 자랑스럽게 여기며 열정을 쏟았던 지난날이 있었다.
2000년 정년 단축으로 학교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며 그간의 생활수기를 정리하여 "잘 기르고픈 씨알"이란 자서전식 문집을 엮어낸 적도 있다.
책 머리글을 되새겨본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발간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더구나 교실이 무너져 내리는 요즘에, 무거운 멍에를 진 후진(後進)들과 함께 어울리며 온몸으로 소통해 보고자하는 필자의 심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우직한 마음의 표현으로 읽어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리고 나는 "큰 교육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내 도량에 넘치지 않고 염치를 생각할 줄 아는 무명교사가 되기를 자청한 길이다.
최 일선에 서서 학생들과 뒹굴고 함께 어울리며 한 교실 안에서 맞부딪치며 생활하기를 즐기기로 고집해 왔다. 더 덧붙이면, "자랑거리는 못되지만, 교육자의 도리에 어긋남 없이 살아가려했고 부끄럽지 않게 소신껏 생활해온 길이다.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을 뿐, 나의 바람과 즐거움은 오직 수업을 통해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소박한 가르침이다."고 썼다.
부탁의 말씀으로 "교단을 지키려는 후배동료들에겐,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훌륭한 간접 경험들을 익혀갔으면 한다. 그리고 쉽게 부모가 되어버린 어버이들에겐, 올바른 부모공부 방향을 세워 실천해갔으면 한다. 또한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에겐,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 체험하면서 덕성스런 인품을 쌓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우리나라사회에 대해서는, 보다 더 성숙된 문화국민과 더불어 밝고 따뜻한 사회 속에 살면서, 공정하고 근실(勤實)한 사람이 대우받는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소연한다.
내 마음의 진솔한 표현이 써져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학교 폭력사태를 보면서,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있단 말인가. 교실의 붕괴가 자살로 이어지는 비참한 현장을 보면서 몸 둘 곳이 없다. 가슴이 미어 터질듯 한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 이라니, 입시지옥과 경쟁위주교육에서 지친 젊은이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와 같은 현실은 청소년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교육제도와 현장교육의 방향 설정과 인식체계가 잘못 되어서다. 행정가들도 '현장에 답이 있다'하는데 교육도 현장에 분명히 답이 있다. 교육의 최 일선, 교실이 바꾸어져야 한다.
학교교육이 인성과 적성교육에 있다고 정해 놓고도 실제 교육현장은 경쟁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교육이 인성과 가치관을 세워주는 된 사람을 기르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육 패러다임(paradigm)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 최근 입학 사정 관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여 진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거나 수석교사제와 교원능력개발평가 법제화만으로 교육이 바로 설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입시위주교육을 훨훨 털어버리는 학교현장의 변화는 간단하지 않다. 복합적이며 험난한 과제이다. 교원의 자질과 부모교육, 잘못 되어가는 사회현상에 영향이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인식체계가 언제 변해야 하는가. 이제 인재 대참사 앞에서 변해야할 때도 온 것 같다. 변하지 않으면 인재사고는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이니 변해야 산다. 교육이 인성교육 중심, 가치관 정립 교육으로 바로서야 나라도 어수선하지 않고 바로 선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교육이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빈다. 제발 교육의 탈바꿈에 모두가 앞장서 주시기 바란다. 그중에서도 특히 높은 자리에 계시는 교육관련 공직자나 교육감들께서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셔야 한다. 교육을 백년지계(百年之計)라 했으니 미래를 내다보고 서둘려야할 시급한 과제이다.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지성인들께서, 먼저 실천하면서 고취시키고 선도하셔야 한다. 국가개조도 교육으로부터 시작함이 옳다. 혁신을 하려면 여러 방향에서 같이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만 외쳐봐야 외로운 메아리가 될 것은 분명하고 효과가 없다. 나라 전체가 함께 일심동체가 되어 대변혁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시절 스스로 택한 "농어촌연구부" 동아리의 구농(救農)이란 기치를 이어 받으려고 두메산골 교육으로 시작한 것이 잘못 출발일까? 구례군 산동면 노고단 아래 후미진 골, 명산중학교 창설멤버로 시작한 교단생활인데, 34년간 몸담은 과거가 이제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옛 제자들 앞에 면목이 서지 않아 죄송스럽고 겸연쩍다. 참으로 통회(痛悔)하며 마음 둘 곳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공교육의 교단을 떠난 직후 바로 사회교육인 한글교실(글벗사랑방) 자원봉사로 또다시 무명교사의 길에 나선다. 지금까지 13년째 쉼 없이 문자해득교육을 하면서 지나간 죄 값의 일부를 씻어보려 한다. 현재도 스스로 '속죄의 멍에'를 짊어지고 메인 몸으로 살아가면서 늦깎이 어머니들 정서에 맞는 '마중물'이란 어르신평생학습용 책을 얻어 나누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자. 선행학습을 하는 사교육인 학원들 앞에서 공교육은 무엇을 담당하고 있는가? 학원에서 먼저 배운 학생이 새로울 것이 없어 엎드려 자고 있는데, 깨우지도 않고 무관심한다면, 과연 학교가 있어야할 존재 가치가 무엇일까? 창의 인성 교육, 인간교육인가, 계발(啓發)교육, 전인교육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학문과 도의문화 교육보다는 지식전달, 기술전달이면 족하고 시험지로 학생을 경쟁시키는 편이지 않는가? 학교마다 교육계획서에는 전인교육을 한답시고 미사여구로 써놓고 경쟁심만을 북돋아가게 되어 있고, 입시 경쟁 장으로 학생을 몰아가면서 무한경쟁을 시키는 교실분위기다.
학생만 그런가? 교사들 중에는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서는 몰염치하게 자습시키고, 점수 따기 위한 은밀한 교사 구락부까지 있다. 젯밥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학교에서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가?
중등교원 해외연수가 교육부 주관으로 시작된 후 제2진으로 새마을교육 담당교원에게 주어져 동남아 4개국을 시찰(견문)하도록 일정이 잡혔다. 자유대만, 태국,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순방이 1988년 여름방학에 연수하는데 총무를 맡아 다녀 온 적이 있다. 자유대만에 첫 안착하여 교육기관을 방문하니, 학교 중앙에 써 붙인 교육목표가 "염치를 알게 하는 교육" 이었다. 지금까지도 새롭게 다가오는 연유는 무엇일까?
충남교육청과 천안교육청에서 장학사가 교육전문직자리를 돈으로 사고판 부끄러운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교육계의 각종 부조리와 염치없는 짓거리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기에 기막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요, 교육계에서 걱정하고, 인식하고 있는 과제이면서도 혁신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교실이 무너지고 학교폭력이 심각한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올바른 교육이 세워질 수 있을까. 백범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글로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학부모,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당부 하시고 마무리하셨다.
박달글벗사랑방(문해교육)에서 民村 김용현(011-9745-7751) 수필가 고백
첫댓글 인생 중말년을 교육에 몸 담고 퇴직한 한 사람으로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현실 비판에 100% 공감합니다. 마음만 있지 인생 말년에 있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서 답답하고 서글프기만 하네요. 하지만 우리보다 더 영악한 후배들이니
그들의 세상은 더 좋아지지 않을가 희망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