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이란전 국면에서 호르무즈해협에 군사자산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이란전 파병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면전을 시작한 2022년 이래, 북한이 수만 개의 컨테이너로 무기를 지속적으로 러시아에 보내고 군사를 파병해서 싸우고 있고 이 상황을 핑계로 질렌스키가 한국군수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전쟁의 외연을 아시아로 확장하며 그럴듯하게 모양새를 갖추고 명분을 쌓아가면서 전열을 갖출 시간을 벌더니, 이제는 한국이 이란에 파병해야 하는 조건을 갖춰왔다. 미국의 빌드업이 점입가경이다. 무엇을 어떻게 협박당하던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면 부화뇌동할 필요 없다. 트럼프가 저지른 오판을, 불 꺼진 백악관의 현재 상황에 부화뇌동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이란전 참전을 공식 확정한 단계는 아니라지만, 아직 검토일 뿐이라고 넘기는 태도는 안이하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실무 검토가 아니라, 미국의 공개 압박 앞에서 한국군을 분쟁 해역에 밀어 넣을 가능성을 정부가 스스로 열어둔 과정을 대중에 공개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 경로를 그대로 가면 헌법이 정한 전쟁·파병 통제 질서를 흔들게 되고, 그 결과는 국익이 아니라 타국의 전쟁에 한국이 끌려들어 가는 것은 명약관화다. 따라서 이 사안은 파병 불가로 가야 하며,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태도에 굴복하지 말고 국민 앞에 분명한 거부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미 해군 함정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U.S. Navy/Jonathan Clay·DVIDS)
논란의 출발점은 군 내부와 정부에서 호르무즈해협에 군수지원함, P-8A 해상초계기, 폭발물처리(EOD) 전력 등을 투입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보도다. 군수지원함은 해상작전과 보급을 뒷받침하고, 해상초계기는 선박과 해역을 감시하며, EOD는 기뢰·폭발물 제거에 쓰일 수 있다. 정부는 이를 ‘비전투 기여’로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 중인 해협에 군함과 초계기, 특수전력이 들어가면 그 명칭이 무엇이든 군사적 개입의 문턱을 넘는 일이다. 우발 충돌, 오인 사격, 임무 확대는 전장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지원’이라는 말로 위험을 지울 수는 없다.
이번 논의가 해상 안전 문제가 아닌 이유는, 배경에 미국의 요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대이란 노력에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군사 노력에 동참할 뜻이 있느냐고 물었고, 한국 측이 “고맙지만 사양한다(No thanks).”라고 하자 이를 문제 삼았다. 이어 주한미군이 한국을 지키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손을 보태지 않는다며, 한미 연합훈련 축소까지 거론했다. 동맹을 상호 방위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주니 너희도 우리 전쟁에 나와라’라는 거래로 바꾸는 발상이다. 그 거래의 대상이 한반도 억제태세와 한국 장병의 목숨이다.
정부가 검토에 들어간 표면적 명분은 에너지 수송로와 한국 상선의 안전이다. 한국 원유의 상당량이 호르무즈를 지나는 것은 사실이고, 전쟁 초기 한국 선박이 해협에 묶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선박들은 이미 외교·해수 당국의 노력으로 빠져나왔다. 에너지 안보는 비축, 대체 도입선, 외교 경로, 보험·호송 협력으로 다루는 문제이지, 교전 해역에 초계기와 EOD를 넣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 자신도 호르무즈의 장기 효용을 흔드는 발언을 내놓고,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동맹국에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금 검토하는 것은 한국 상선을 지키는 독자 작전이라기보다, 미국이 원하는 ‘실질적·군사적 기여’의 형태를 맞추는 작업에 가깝다.
청와대는 9월 4일 “정해진 것은 없다.”, “질문이 앞선다.”라고 하면서도 “한반도 대비태세에 큰 손상이 없는 범위에서 운신할 수도 있다”, “전투·비전투·수색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한다.”라고 밝혔다. 국회 협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말은 파병을 부인한 것이 아니다. 파병의 문을 열어둔 채, 국민과 국회보다 먼저 미국과 군 실무선에서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보도는 이미 실무 준비가 시작됐고, NSC와 국회 동의안을 거쳐 한두 달 안 파병까지 염두에 둔다고 전한다. ‘결정된 바 없다’와 ‘준비에 착수했다’가 동시에 나오는 것 자체가 정부가 책임 있는 답을 피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은, 호르무즈에 군사자산을 보내는 것과 이란을 상대로 포격을 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정부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쓰는 언어일 뿐, 헌법과 전장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분쟁 해역의 초계·기뢰 제거·군수지원은 미군과 우방 함정의 작전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한국 전력이 그 고리에 들어가면 이란으로서는 한국이 미국의 군사작전에 가담한 국가가 된다. 임무가 확대되면 ‘비전투’는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2003~2004년 이라크 파병 때도 정부는 재건·비전투를 내세웠다. 결과는 한국군이 미국의 전쟁에 발을 들여놓은 역사였다.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아서는 안 된다.
법적 핵심은 더 분명하다. 헌법 제60조 제2항은 국회가 선전포고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못 박고 있다. 국군을 해외에 보내는 일은 대통령의 통수권만으로 끝나는 행정 실무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가 통제해야 하는 국가 중대사다. 헌법 제5조는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평화적 국제질서를 지향한다.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에게 국가의 독립과 헌법 수호 책무를 지운다. 교전이 이어지는 해역에 군함·초계기·폭발물처리 병력을 보내는 일을 ‘기여 방안 검토’라는 말로 선행하고, 국회 동의는 나중에 끼워 맞추려는 태도는 헌법이 대통령과 행정부에 씌운 굴레를 우회하는 것이다. 청해부대 작전구역을 슬쩍 넓히거나, 개인 파병·소규모 자산이라는 훈령상 예외를 끌어와 국회를 건너뛰려는 발상도 같은 문제다. 훈령은 헌법을 이길 수 없다. 파병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국민의 군대가 외국 전장에 나가는 일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더 위험한 것은, 이 검토가 한반도 안보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P-8A는 북한 잠수함과 해상 위협을 감시하는 핵심 자산이다. 군수지원함과 EOD 역시 평시에도 수량이 넉넉하지 않다. 청와대가 대비태세에 큰 손상이 없는 범위라고 말한 것은, 거꾸로 파병이 한반도 전력을 빼내는 선택임을 인정한 셈이다. 미국이 이란전에 전력을 쏟아붓는 동안 동아시아 억제력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그 상황에서 한국이 스스로 대잠·해상 전력을 중동으로 돌리는 것은 자국의 생존 공간을 깎아 미국의 전선에 보태는 일이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그 동맹은 한국을 중동 전쟁의 보조전력으로 호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이 문제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실용 외교와 국익을 내세워 왔다. 실용의 핵심은 강대국의 기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싸울 필요가 없는 전쟁에 장병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트럼프의 압박은 동맹의 설득이 아니라 공개 망신과 훈련 축소, ‘기억해 두겠다’라는 식의 보복 언사로 나타났다. 그런 압박에 군사 기여안을 맞춰주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굴복이다. 한미 안보협상, 투자, 반도체 이슈가 어렵다고 해서 한국군의 해외 투입을 카드로 내놓는 순간, 이후의 모든 협상은 더 큰 양보를 요구받게 된다. 한 번 문을 열면 다음 요구는 구축함, 그다음은 교전 참여가 된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옵션을 검토한다.’라는 모호한 말이 아니다.
첫째, 이란전 및 호르무즈 군사작전에 한국군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점을 대통령이 직접, 분명히 말해야 한다. 둘째, 군수지원함·P-8A·EOD를 포함한 일체의 군사자산 투입 검토를 중단해야 한다. 셋째, 청해부대의 기존 임무를 호르무즈 교전 해역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야 한다. 넷째, 에너지·상선 보호는 군사 파병이 아니라 외교, 다자 해상협력의 비군사적 수단, 국내 에너지 대책으로 다루겠다고 설명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의 요구가 있었다면 그 내용과 시점, 한국 측 대응을 국민과 국회에 공개해야 한다. 비밀 검토 뒤에 동의안을 들이미는 방식은 헌법 절차를 요식행위로 만드는 것이다.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반미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한국 국민과 한국 영토이지, 미국이 끝내지 못한 중동 전쟁의 빈자리가 아니다. 항행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 자유를 명분으로 한국 장병을 기뢰 밭과 미사일 사거리 안에 넣는 것은 국익이 아니라 국익의 전도다. 국회 동의 없는 파병은 위헌에 가깝고, 동의를 받더라도 주권 국가가 타국의 전쟁 논리로 군대를 내주는 일은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검토와 결정을 구분하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열어둔 검토의 방향 자체가 이미 위험하다. 이재명 정부는 더는 시간을 끌지 말고, 파병 불가를 국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해야 한다.
미국은 왜 자국이 선택한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 못하고 동맹국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는가.
이란전을 이어갈 결단이 미국의 것이라면 그 위험과 대가 역시 미국이 져야 한다. 싸우고 전쟁하고 싶다면 너희가 직접 하면 된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한국군을 호르무즈로 밀어 넣고, 연합훈련 축소로 압박하고 협박하는 것은 상호 방위가 아니라 일방적 종속 관계의 강요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한국 국민과 한국 영토이지, 미국이 끝내지 못한 중동 전쟁의 빈자리가 아니다. 동맹을 거래와 보복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 타국 군대를 끌어들이려는 압박은 당장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