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4일 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사탄은 끝장이 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헛소문에 귀를 열지 마십시오.
내가 좋아하는 위인 중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 있을 때 의정부(議政府)참찬이던 월남 선생님이 임금님을 뵈러 들어간 일이 있었답니다. 그때 내인(內人)들이 사사로이 매관매직하는 첩지를 싼 자주 빛 보자기를 들여놓은 것을 보게 되었답니다. 이에 월남 선생님은 “상(上)께서 계신 방이 왜 이다지 추운가?”하고 난로에다가 그 첩지 묶음을 불태우고는 임금님 앞에 엎드려 대죄(待罪)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강직함과 위트가 있으신 분입니다.
한 번은 우쯔노미야(宇都宮) 일본군 사령관과 사석에서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가 유행성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하자 월남 선생님이 웃으며 “대포를 쏘아서도 못 고치는 걸 보니 그놈의 감기 조선 땅보다 무섭구먼..”하였답니다. 그래서 일본 고관이나 귀족들이 월남 선생님을 만나기를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또한 충정공 민영환 선생이 을사년 조약을 항거하면서 자결한 곳에서 혈죽(血竹)이 피어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때 이완용과 만난 자리에서 “대감이 죽은 자리에서는 뺑대쑥이 날거요.”하여 파랗게 질리게 바른 말을 서슴없이 하였던 분입니다.
그는 3․1 운동이 기승을 부릴 때 한국에 온 미국 의원단 앞에서 연설을 하였는데 “미국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은 미국이 부자이기 때문도 아니요, 군대가 강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와 자유(自由)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조선의 실정에서 이 존경의 조건에 어긋나지 않게 해주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이런 것을 월남 정신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려서 그런 말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강직함과 거침없는 자기표현이 너무 좋게 느껴졌고, 그 말 속에 뼈가 있고, 혼이 살아있고, 정신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 속에는 강직함과 재치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분을 위인으로 존경하고 그 얘기를 자주 마음에 새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모함을 당하시고, 사람들의 헛소문에 당신을 바르게 알려 주십니다. 주님은 ‘악령의 힘을 빌려 악령을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하는 소문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원리로 그 소문이 진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계십니다. 소문의 진상은 아무나 밝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장본인만이 밝힐 수 있습니다. 헛소문을 낸 사람들은 악의에 차서 그렇게 헛소문을 내고 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망가지는 것이 좋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하고, 그 소문에 빠져서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게 할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해와 헛소문으로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을 수 없는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진실을 해명하실 필요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만큼은 경고하실 필요성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도저히 용서 받지 못한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말은 참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더라도 함부로 화를 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요즘에서야 겨우 깨닫는 것 같습니다. 오해하고 나를 모독한다고 내 자존심을 내세워서 대꾸한다고 하여도 결국 나만 못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헛소문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새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번지고 있는 악성 헛소문이나 댓글에 마음이 많이 상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런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말 속에서 성령을 모독하는 말이 있었다면 모두 용서해 주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헛 소문과 비방과 험담과 거짓말과 악담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런 국민이 되었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파도와 침묵
정채봉/ 참 맑고 좋은 생각
‘참자’라는 이름을 가진 갈매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도 세상을 살아보니 참기 어려운 일이 종종 일어났다.
참자 갈매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름을 지어준 스승 갈매기를 찾아갔다.
참자 갈매기의 하소연을 묵묵히 듣고 있던 스승 갈매기가 앞서 날면서 말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바닷가의 바위 위에 스승 갈매기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참자 갈매기도 그 곁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스승 갈매기가 말했다.
“이 바위에 폭풍우가 무섭게 몰려들던 날을 기억하지?”
“네.”
“그 사나운 파도들이 계속 덤벼들 때에 이 바위는 어떻게 하더냐?
맞 대항을 하더냐?”
“아닙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간 뒤 이 바위를 본 적이 있을테지?
폭풍우 속의 파도들이 바위를 깨끗이 씻어주었던 것을.“
“오히려 바다가 조용해져 있었던 날에 끼어들었던 온갖 쓰레기들을
그 파도들이 치워가지 않았더냐.”
스승 갈매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참자 갈매기도 따라서 날았다.
스승 갈매기가 말했다.
“참을 수 없는 캄캄한 때일수록 더욱 참아라.
조개가 아플 때일수록 진주가 자라는 법이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축일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 (Francis de Sales)
신분 : 주교, 설립자, 교회학자
활동 지역 : 제네바(Geneva)
활동 연도 : 1567-1622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살레시오, 살레시우스,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또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체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567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독립 공국인 사보이아(Savoia)의 토렌스(Thorens)에 있는 가문의 성(城)인 샤토 드 살(Chateau de Sales)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Paris) 인근 안시(Annecy) 대학과 클레르몽(Clermont)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는 교회법과 일반법을 전공하여 불과 24세의 약관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법률가 자격 제의와 상원 의원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도생활을 위하여 화려한 세속의 일과 전망을 모두 포기하고 1593년 12월 18일 안시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1594년 샤블레(Chablais) 지방의 선교사를 자원하여 5년 동안 활동하였는데, 그곳은 칼뱅주의자들이 약 50년간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지역으로 사보이아 공국이 되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선교 지역이었다. 암살자와 칼뱅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곳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599년 5월 22일 그는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가, 1602년에 선임 교구장이 사망하자 그를 계승하여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그는 곧 종교개혁자에 대항하는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인 그는 해박한 신학지식과 이해심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예비자들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1604년 그는 부르고뉴(Bourgogne)의 수도인 디종(Dijon)에서 유명한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 8월 12일)을 처음 만나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적인 우정으로 자라났다. 그 후 1607년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기존 수도회의 육체적 엄격함을 견디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Lyon)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뇌일혈을 일으켜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한 후 그 다음날인 1622년 12월 28일 숨을 거두었다. 그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신심생활 입문”(1609년)과 “신애론”(1616년)을 들 수 있다. 그는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는데,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한 첫 번째 공식 시복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는 1665년 11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으며, 1923년에는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드 살 (Francis de Sale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