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불구이 삼겹살은 말 그대로 짚을 태워 그 불에 삼겹살을 구워내는 것으로,
기름기는 쫙 빠지면서 짚의 향이 고기에 스며들어 노릇노릇하면서 담백하고 향긋한 맛을 낸다.
잘 구워진 삼겹살에 무안 특산 양파와 칠게장을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사창의 두암식당이 바로 짚불구이의 원조이자 본산이다.
영산강 제2경 몽탄노적(夢灘蘆笛)!
영산강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무안에선 몽탄강이라 부른다.
몽탄노적은 ‘꿈결 같은 여울에 울려 퍼지는 풀피리 소리’라는 뜻.
얼마나 경치가 빼어나면 묵객들이 이런 예쁜 이름을 붙였을까.
‘영산강 제2경 몽탄노적’이라 적힌 커다란 표지석 뒤로 포구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바로 한때 영산강의 번성을 주도했던 몽탄포구다.
몽탄은 영산강 가장 안쪽의 어항으로 하굿둑이 축조되기 전까지는 많은 어선이 어업활동을 했다.
특히 건너편 나주 동강면 주민들이 몽탄면 명산리의 호남선 명산역을 이용하려면 강을 건너야 했기에
1986년까지 동력선 나룻배가 운행됐고 하루에 500여명이 이용했을 정도로 북적댔다.
하지만 1994년 몽탄대교 준공으로 나루 기능이 사라졌고
지금은 고기잡이배 몇 척만 포구에 쓸쓸하게 남아 흘러간 옛이야기를 전한다.
고목과 어우러진 영산강변 식영정.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있다.
뒤에는 산이, 앞으로는 강이 펼쳐지는 배산임수의 명당 자리다.
몽탄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낮은 강 언덕에 식영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다.
잔잔하게 휘돌아가는 ‘꿈여울’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 잡았으니
꿈결 같은 풍광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명에 얽힌 유래는 다급하고 절박하다.
정자 건립과 관련된 자료는 1643년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자세히 기록됐다.
그는 ‘영산강 연안을 따라 살 만한 곳을 찾아 상하를 두루 살펴보다
드디어 사포와 몽탄 사이에 한 오묘한 곳을 얻었으니 자리는 그윽하여 기운이 머물고
물맛이 좋으며 땅은 비옥하여 가히 선비가 살 만한 곳이다’라고 적었을 정도니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진 것 같다.
조선시대에 이산리는 마을 앞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하니
정자가 처음 지어질 때는 훨씬 풍경이 빼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1900년대 초 화재로 소실돼 1983년 현재 위치에 복원된 식영정은 일자형 건축에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구조에 팔작기와지붕을 얹었다.
정자로서는 독특하게 제실을 갖춘 점이 눈에 띈다.
예전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산바람과 강바람이 만나 한결 시원하다.
정자 터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영산강변의 정자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풍광이 나무에 많이 가려졌지만, 영산강과 들판을 바라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온갖 동물이 그들의 방식으로 생을 즐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바다와 분리되기 전 영산강에는 온갖 물고기가 풍성했고,
덕분에 주민들도 내륙이지만 게와 숭어 등 바다생선을 맛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전남 담양에도 식영정(息影亭)이 있다.
가사 문학의 대가 정철의 흔적이 배어 있는 유적으로 이름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는 정자다.
이곳 무안 몽탄면 식영정(息營亭)은 가운데 한자인 ‘영’자가 다르다.
쉬는 것은 같지만 무엇을 꾀하고 계획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내륙으로 진격하는 왜군을 저지한 방어선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호남평야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물길이었으니
‘쉼’ 속에서도 나라 경영의 큰 뜻을 품을 만한 장소이기도 하다.
푸조나무 옆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가면 몽탄나루다.
강정나루라고도 불린다.
영산강이 하구언으로 막히기 전까지 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다.
영산포로 오가는 배들이 줄을 이어 번성했다.
당시엔 주막집도 있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말이다.
식영정을 찾는 관광객들이 몽탄노적 일대 산책 길을 따라 걸으면서 힐링할 수 있도록
무안군에서 1921년도에 약 1만 6천㎡ 규모의 코스모스 꽃밭을 조성했다.
금남 최부(1454~1504) 선생은 본관은 탐진이고 자는 연연(淵淵)이며 호가 금남(錦南)이다.
최부는 아버지 최택(崔澤)과 어머니 여양 진씨(陳氏) 사이에서
단종2년인 1454년에 태어났다.
조선 시대의 문신이었던 금남(錦南) 최부(崔溥)는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부에 표류했다가 반년만에 한양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을 썼다.
그는 수차(水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후일 충청지방의 가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참형을 당했다.
표해록(漂海錄)은 최부가 제주 앞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14일간 표류하다
중국 절강에 도착한 뒤 항주, 소주, 양주, 산동, 북경을 거쳐 효종 황제를 알현하고
한양에 도착하기까지 6개월간의 기록을 담은 것으로
9세기 중반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1298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과 함께
세계 3대 중국기행문으로 꼽힌다.
전남 나주의 느러지전망대는
수국 시즌이 되면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라도의 대표 명소다
담양 용추봉에서 시작된 영산강이 목포 하구언으로 흘러나가기 전
U자 모양으로 크게 굽이치는 곳에 자리한 느러지 마을은
그 모습이 한반도 지형을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망대는 4층 높이로 3층과 4층까지 올라가면
영산강의 아름다운 비경과 한반도 형상을 관망할 수 있는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어가기에 좋다.
또한, 6월 중순에서 7월이 되면 느러지 전망대 주변의 자연공원이
아름다운 수국으로 둘러싸여 형형색색의 꽃길이 장관을 이룬다.
국내에 알려진 한반도 지형을 닮은 '물돌이'는 댐을 세우면서 인위적으로 생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 영산강 한반도 지형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 국내 대표적 한반도 지형으로 알려진 강원도 영월, 동강과 비교해
강폭이 500~600m이상으로 넓어 웅장한 맛이 일품으로 알려졌다.
나주시 동강면에서 세운 정자로
'곡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강'이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