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해설: 아래는 2004년 1월 12일 정건순(65세)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3년 전부터 빈혈로 피 수치가 Hb 4.2로 매우 낮았으며, 다른 데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S병원에 계속 다니면서 피검사, 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 등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 주사를 한 번에 4대씩 수시로 맞았습니다. 피 주사를 7대씩 맞았는데도 검사를 해보면 수치가 7밖에 안 나왔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갑자가 피가 왜 새는지, 왜 부족한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2003년도에는 S병원 갈 때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위와 십이지장궤양 두 군데 힘줄에서 피가 샌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3년간 변이 까맣게 나왔는데도 그것을 몰랐었습니다. 코, 호스, 산도측정 등의 검사도 했습니다.
10월 9일 S병원에 20일간 입원한 뒤, 혈액주사 7번 맞고 2번이나 실려 왔으나 검사할 게 없어 그냥 통원치료만 받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 수치가 9까지 올라왔으나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원한지 15일이 지난 후에는 하루에 세 번씩 퇴원하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예약 날짜와 약을 받았으나 병원의 행동이 너무 괘씸해서 퇴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하며 어지러워 앞이 안보일 정도였습니다. 약 때문에 위가 쓰려 위궤양 치료를 위해 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뛰지 않아서 내시경 검사를 못한다고 하면서 피 검사만하고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입원하고 싶지 않아 자식들과 상의해 본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습니다. 그 후 믿음의 어머니를 통해 청심병원 차상협 원목과 연락이 닿아 청심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니 마음이 푸근하면서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과 김종형 선생님께서는 차트를 보시고 약을 지어주셨는데 양이 많지 않고 좋은 약이었습니다.
간호사인 며느리가 제 약을 보고는 좋은 약을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S병원에서는 약을 한 주먹씩 받았습니다. 위에 난 구멍도 그래서 생긴게 아닌가 싶고, 그때 약들은 별 효과도 없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난 14일 김수장 선생님의 권유로 한약을 먹으면서 침을 맞았습니다. 그 전부터 왼쪽 반이 마비가 심해 풍이 오는가 싶어 치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찜질과 마시지만 받았으며, 합병증으로 당뇨 증세도 생겨 정기적으로 체크를 해야 했습니다.
청심병원에서는 양약을 먼저 먹고 1시간 후에 한약을 같이 복용하게 했습니다. 처음엔 5-10분만 걸어도 가슴이 시리고 아프면서 숨이 가빴었습니다. 그 전에 다니던 병원의사도 혼자 운동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종종 천주청평수련원에 내려가서 찬송역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심병원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대모님께서 오셔서 한정자 권사님보고 영분립을 좀 해주라고 하셔서 영분립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또 올라오신 대모님께서는 병원 반찬 등 여러 가지를 물어보시며 세세하게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의료천사와 지상의 선생님의 조화된 치료가 이뤄져서 제가 좋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음 이곳 응급실에서 피 주사를 7대 맞고 그 이후 수치가 11.5까지 올라갔고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누랬었던 얼굴과 손바닥도 불그스름해질 정도도 혈액순환이 좋아졌습니다. 위내시경 검사를 다시 해봤는데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치료는 아침 먹고 침 맞고, 점심 먹고 오후에 찬양하는 등 종합적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불편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1월 13일에 퇴원하였는데 모든 것이 다 치유된 느낌입니다. 다른 병원과 비교하면 청심병원의 생활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환자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없었습니다. 무조건 증상만 가지고서 검사만 하고 결과는 상관없이 내보냅니다. 오히려 주치의가 병의 원인이 안 나온다며 스트레스를 줬었습니다. 청심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꼭 봐가면서 종합적으로 치료를 해주셨습니다. 의사 간호사분들도 모두 친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 전에 천안에 있는 한방병원에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진맥을 하고 피 수치를 보고는 놀라며 당장 응급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보약을 암만 좋은 것을 써봐야 무용지물이라고 하였었습니다.
오직 지금껏 정신력 하나로 버텼습니다. 죽고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죽을 날만 바라보고 산 제가 이곳에서 새 삶을 찾았습니다. 아는 식구들에게 무조건 청심병원으로 오라고 자랑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딸도 여기서 종합적인 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간증 제6집 제4부 의료천사가 함께 하는 청심병원 pp.295-298.
하지만 단기 계약직이라고 하니, 신분이 약간은 불안하여 평생직업으로 안정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학을 막상 졸업해도 평생직업으로 삼을만한 적당한 직장이 없다고 우왕좌왕 하지 마십시오.
90살까지 살아야할 기나긴 인생에서 급하다고 마구잡이 임시방편 취업은 인생 후반부에 가면 후회합니다.
자녀들의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안정적인 미래설계, 요동치는 경제 불안의 공포가 없는 아메리카(특히 캐나다)에서 한의사, 자연의학 의사가 되어 활동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지평을 넓히는 길이요, 애국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SCU 한의대 재학생(www.scukorea.com)들은 캐나다 한의사가 독점적인 한의사(Doctor)면허 시스템이라는 점, 정년 퇴직의 불안이 없다는 점에 만족하고 열심히 한의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