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성
박지현
가끔 헛헛해진 마음을 안고 찾아가는 보수동 헌책방 골목, 먼지에 쌓인 책들의 행간을 읽는다. 아무렇게 굴러다니다 쓰레기처럼 실려 온 활자들, 골목 사이 햇살에 묻혀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다. 책갈피 사이의 한 자 한 자 정성들인 세계, 그 풋풋한 설렘 위에 먼지만 쌓인 낡은 서점, 그곳은 순백의 하얀성처럼 모든 것을 한 순간 바꾸어버릴 깊은 진실이 숨겨져 있다.
파피루스의 기록을 따라 가는 여정은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나를 찾아가는 길, 권태로운 삶에 익숙한 내가 낯선 나를 위해 떠날 차비를 한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뿌연 안개를 더듬어 스멀스멀 분출하는 용암처럼 또 다른 세계를 엿보는 노마드가 되어 짐을 꾸린다.
관습의 옷을 걸친 꿈을 잃은 고래들, 국경의 경계를 넘어 미지를 향하는 호모 노마드, 새로운 욕망은 길들여진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 잃어버린 기억 언저리를 바꾸어 살아가는 삶을 상상한다.
파피루스엔 지나온 시간의 향기가 깊숙이 배어들어 살아온 기억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아슴아슴 사그라지는 해가 지기도 전에 취해버린 오렌지 빛 노을, 그 취기는 전신으로 퍼지고 아직도 유효한 환상의 연금술, 나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박지현 시집, {하얀성}(도서출판 지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