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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꽃반디
김은숙
반디 마을에 등불 잔치가 열렸다.
비단골 반디들은 숲속의 모든 반디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오늘은 그믐밤, 달님이 고단해 잠을 자는 날,
대신 우리 함께 모여 등불을 밝히고 춤추며 놀아요.
또한 가장 멋지게 춤을 추는 반디도 뽑아요.
비단골 반디 일동 올림
숲속의 반디들은 어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비단골 반디의 무도회에 가기 위해 날개옷을 다듬고 가지고 갈 등불도 말갛게 닦았다. 싸리산의 꽃반디도 반디골 반디의 초대장을 받았다.
싸리산 꽃반디가 받은 초대장은 다른 곳의 반디들이 받은 초대장보다 글자가 조금 많았다.
“싸리꽃 꽃반디 님, 부디 이번엔 마다하지 마시고 꼭 와 주세요.” 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싸리꽃 꽃반디는 두 번씩이나 잊지 않고 초대장을 보내주는 비단골 반디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러나 마음은 곧 걱정으로 가득 찼다.
‘이를 또 어쩌나. 내겐 가지고 갈 등불이 없으니…….’
꽃반디는 지난번 초대 때에도 꼭 가고 싶었지만 등불이 없어 가지 못했다. 등불 잔치에 등불이 없는 반디가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반디들은 꽃반디의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비단골 반디들은 지난번 초대에 꽃반디가 오지 않은 것은 다른 까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꽃반디는 꽃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 데나 가지 않는 건지 몰라.”
“그러니까 더더욱 꽃반디를 보고 싶다.”
“맞아, 몸매가 아름다우니 등불도 틀림없이 밝고 환할 거야. 이름값을 할 거야.”
하지만 비단골 반디들 모두가 꽃반디를 좋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보지 않고 알 수 없는 일이지. 꽃반디라는 이름만으로 꽃반디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아?”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아무튼 꽃반디가 오기만 하면 우리의 궁금증이 모두 풀릴 거야.”
한편 꽃반디는 초대장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읽을 때마다 비단골 반디들의 따뜻한 마음이 더듬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이렇게 친절한 반디들이라면 등불이 없이 가도 푸대접하진 않을 거야. 등불이 없는 대신 예쁜 내 몸매를 보여주자.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내겐 등불이 없지만 당신들을 위해 싸리산에 깃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어요.” 그래, 참 좋은 생각이야.’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갈 즈음, 꽃반디는 날개를 활짝 펴고 비단골로 날아갔다.
“안녕하세요? 싸리산의 꽃반디예요.”
“어머! 꽃반디 님, 어서 오세요.”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라요.”
“지난 번 초대에는 오시지 않아 섭섭했는데 오늘은 가장 먼저 오셨군요.”
비단골 반디들이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더구나 지난번 초대에 오지 않았던 꽃반디가 가장 먼저 온 것을 두고 곱으로 기뻐했다.
몇몇 시틋해했던 반디들도 꽃반디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정말 잘 오셨어요. 우리도 방금 등불 청소를 마쳤지요.”
등불 이야기가 나오자 꽃반디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나요?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큰 언니 반디가 물었다.
“아니에요. 먼 길을 왔더니 조금 어지러워서요.”
꽃반디는 비단골 반디들 앞에서 차마 등불이 없다는 af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비단골로 날아올 때 먹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꽃반디의 가슴으로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등불이 없는 꽃반디에게 비단골은 역시 낯선 마을이었다.
“잠깐 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등불 잔치가 열리려면 아직 좀 있어야 하니까요.”
큰 언니 반디가 맑은 물가에 꽃반디가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꽃반디는 풀섶에 앉아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았다.
노을이 설핏 비껴든 물속에 꽃반디의 고운 몸매가 비쳤다.시틋해하던 반디들이 물에 비친 꽃반디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정말 아름답구나. 꽃반디를 보지 않고 우리가 한 말 지워 버리는 게 좋겠어.”
“그러자. 사실은 사실이니까.”
“틀림없이 마음도 몸매처럼 예쁠 거야.”
그들은 꽃반디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뭐가요?”
“아, 아니에요. 오늘 밤 등불 잔치엔 꽃반디 님이 가장 멋진 반디로 뽑힐 거예요.”
“정말이지, 반디 마을의 등불잔치가 열린 후로 가장 아름다운 반디가 탄생했다고 야단일 거예요.”
어느덧 비단골 반디들은 한마음이 되어 꽃반디를 추어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꽃반디는 칭찬을 들을수록 점점 걱정이 쌓였다.
‘밤이 되어 등불이 없는 나를 보며 얼마나 실망할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무도 몰래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을 보아도 반디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등불 청소를 끝냈다고 했는데도 비단골 반디들은 여전히 부산하게 움직였다. 잠시도 날개를 쉬지 않으며 연습에 몰두하는 빈디도 보였다.
풀숲에 어둠이 천천히 내려왔다. 곧 등불을 켤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 꽃반디의 가슴이 점점 더 두근거려 왔다.
‘오자마자 솔직하게 말할걸 그랬어. 그러려고 고향의 얘기 선물도 가져왔는데…….’
이윽고 먹물 같은 밤이 되었다.
숲속의 반디들이 알싸한 밤의 공기를 마신 다음 저마다 꽁무니의 등불을 켜기 시작했다.
먼저 비단골 반디들이 등불을 켰다. 뒤이어 초대 받은 반디들도 등불을 켰다.
서로서로 등불의 안내를 받으며 비단골 반디들이 손님 반디들과 짝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짝을 지어 나는 반디들의 둥불이 어둠 속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반짝였다.
피어난 꽃모숨이 실개울이 되어 흐른다. 강물처럼 흐른다.
흐르는 강물에 보석이 박힌다. 보석의 강물이 춤을 춘다.
풀숲에 주저앉은 싸리골 꽃반디는 아예 눈을 감고 어둠 속에 몸을 내맡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답게 밤을 수놓은 반디들의 춤을 자신만이 출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이 스치듯 불어왔다.
“함께 추어요.”
“네?”
어둠 속의 반디는 대답 대신 자신의 더듬이를 사알짝 내밀었다. 큰 어니 반디였다.
순간 꽃반디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일찍 오시느라 그만 깜빡하셨군요.”
“네… 에… 에….”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 등불로 함께 추면 돼요.”
큰 어니 반디는 짝반디가 되어 꽃반디를 풀섶에서 일으켰다. 그리고 한쪽 날개를 꽃반디의 날개 밑에 사알짝 밀어 넣었다.
“제 날개의 느낌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길을 잃지 않고 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어요.”
짝반디의 말을 듣는 순간 꽃반디의 날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아아.’
꽃반디는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는 힘껏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짝반디의 날게 위에 한쪽 날개를 얹고, 짝반디와 함께 춤을 추었다. 비록 등불이 하나밖에 없지만 둘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춤을 추었다.
날개 끝에 매달린 작은 바람이 등불을 더욱 키워 주었다.
한 개의 등불이 두 개의 등불이 되어 곱으로 밝아진 밤.
등불이 없는 꽃반디에게 등불이 되어준 킨 언니 반디, 아니 짝반디의 고운 배려가 등불보다 환하게 피어난 정녕 아름다운 밤이었다.
더하여 난생 처음 멋진 춤사위를 펼치며 밤하늘을 실컷 날아 본 꽃반디의 가슴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추억이 아로새겨진 밤이었다.
첫댓글 이번에 강의하시는 김은숙 선생님의 동화네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김은숙 선생님 작품 읽고 있는데, 한 편 더 올려 놓을게요.
책은 그날 현장 판매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김은숙 선생님의 고운 마음이 작품 속에 녹아 있군요.
강의 못 들어 정말 아쉽습니다. 제 안부도 전해주시겠어요? 선생님!!^^
김은숙 선생님, 작품도 만나고 직접 뵐수도 있어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을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반디 파이팅, 꽃사슴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