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5]『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
그제 오후 우체통에 꽂힌 걸 보니 틀림없이 ‘책’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뜯어보니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이종묵 지음, 돌베개 2024년 10월 28일 펴냄, 280쪽 18500원)라는 신간. ‘아하, 출판사 대표가 사랑하는 후배라고 보낸 거구나’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소생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입니다. 순식간에 독파했습니다. 제목처럼 개에 관한 이야기이어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서울대 국문과 이종묵 교수가 쓴 것인데, 부제가 ‘개를 사랑한 조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목숨 바쳐 주인을 사랑한 개’ 항목엔 고려초 이야기이지만, 우릭 고향의 ‘오수 의견총’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다양한 개들의 이야기가 조선 500년 동안 있었는지 처음 알아 놀랐고, 그와 관련된 미담이 이렇게 많은 것에 또 놀랐습니다. 과학문명의 발전과 발달에 상관없이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겠지요. 지금은 애완견이 아니고 아예 반려견의 인구가 1500만명에 이른다는데, 조선시대에도 충견忠犬, 의견義犬, 열구烈狗. 효견孝犬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한문학자들이 빛나는 대목이 이런 곳에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집과 전적 속에서 개와 관련된 구절을 찾아 눈에 볼 수 있도록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 속에 ‘개’라는 존재가 어찌 뻬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말씀드립니다만, ‘때로는’를 ‘아주 자주’나 ‘아주 많이’라고 바꾸고 싶었습니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사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미물인 개와 비교하여 조롱하거나 비난한 말일 것입니다만, 그게 사실일 터이니 그리 화낼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정말로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을 살면서 '때로'가 아니라 '너무 자주' 느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말은 ‘개보다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뜻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느낌은 훨씬 더 셉니다. ‘내가 개보다 정말 못하고, 개가 나보다 더 나을까’를 생각해 보시죠. 누군들 피가 거꾸로 솟지 않겠습니까. ‘개하고 같다’거나 ‘개만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이 세상의 어떤 도덕군자도 화가 치솟을 것은 뻔하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개보다 못하거나 개와 같거나 마치 진짜 개같은 인간들투성인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세간世間의 평이 두려워서가 아니고 개보다 못하거나 개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그저 ‘개판이네’라고 자조自嘲의 한숨만 쉬면 되겠는지요? 우리나라 작금의 정치상황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수 반이라는 지도자가 정말로 개만도 못하므로, 당연히 개만도 못하거나 개같은 정상배들의 집단이 여의도에 몽땅 모여 머리와 허리를 굽신거리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른지요. 그러나 그 말을 귀가 뻥 뚫어지게 들려주고 싶은 것을 어이합니까. 어쩌면 이 책을 펴낸 출판사나 저자가 의도적으로 제목을 우리의 정치상황을 빗대서 달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의리와 충성을 알고 실천하는 개는 역사상으로 쌔고 쌨습니다. 과연 그런 미물의 개한테 하나도 배우는 게 없는지,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책을 굳이 읽으면서 반성하고 또 반성하기를 빕니다. 이 개만도 못한 정치꾼들아, 제발 부탁하건대, 지나간 역사를 직시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