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서울 홈페이지(테마비디오)에서 옮겨 왔습니다.
<미술관 옆 동물원> 결혼식 촬영때마다 마주치는 보좌관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는 스물 여섯의 여자 춘희는 갑자기 자신의 방에 들이닥친 남자 철수와 원치않는 동거를 하게 되죠. 마지막 군휴가를 함께 보내려고 부푼 마음으로 애인인 다혜의 방을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그 방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고, 철수는 다혜와 연락하기 위해 춘희의 방에 눌러앉고, 춘희는 밀린 월세를 철수가 대신 지불했기 때문에 철수를 쫓아내지 못합니다. 미술관과 동물원의 부조화처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서로 맞는 것이 없고 정반대 일색인 철수와 춘희는 서로의 다른 사랑방식을 두고 싸우게 됩니다. 철수가 생각하는 사랑은 체온을 나누는 현실이지만 춘희의 사랑은 말 한마디 못건네는 기다림뿐이죠. 춘희는 인공을, 철수는 다혜를 생각하며 함께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데 그 속에서 철수가 그리는 다혜는 점점 춘희를 변화시키고, 춘희가 그리는 인공은 인공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실연과 배신감으로 인해 더이상 사랑을 믿지않던 춘희와 철수는 사랑관 만큼이나 다른 생활습관때문에 매번 부딪히면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이정향 감독의 세밀한 감성이 돋보였고, 이성재, 심은하 두 배우의 호연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했던 작품. 꿈꾸는 동화처럼 사랑의 설레임을 간직하고 그 사랑을 키워가는 다혜가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한적한 도로와 울긋 불긋물든 단풍이 잘 어울리는 동화책의 한 페이지가 될 만한 장면같은데 실제 다혜와 인공이 만나는 곳은 청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대공원 외곽도로입니다. 언젠가 저도 꼭 이길을 자전거를 타고서 지나고 싶습니다.
<이티>"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인형, 하하하하 우스워." 이런 노래 기억나시나요? 제목도 기억 안나지만 이런 가사를 한 노래가 그 당시에 유행할 정도로 이티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형제인 마이클과 엘리옷은 집에서 광속에 숨어 있는 외계인 이티를 발견하지만 어머니 매리와 나머지 사람들은 엘리옷의 공상이라고 하면서 그의 말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이때 주변마을에 U.F.O 가 출현했다는 소문이 들리고, 엘리옷과 마이클은 아무도 모르게 이티를 보호해 줍니다. 그러던중 우주관리 직원이 찾아와 U.F.O와 외계인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엘리옷은 그들이 이티를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죠.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송신기를 만드는 이티와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특별한 우정을 갖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스필버그 감독이 <레이더스 Raiders>를 만든 후 휴식을 취할 겸 소품격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으나 당시 <스타워즈 Starwars>의 흥행 기록을 깨고 미국 인구 절반이 관람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무척 순수하고 독창적이었습니다. 이티를 보호하고 있던 꼬마소년이 이티를 구해주기 위해 자전거 시장바구니에 태우고 달리다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휘영청 뜬 달을 배경으로 자전거가 날아가는 장면과 함께 우리의 꿈도 하늘만큼 높아졌었습니다. <1983년 아카데미 작곡상, 음향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 수상작.>
<일 포스티노> 일 포스티노는 이태리어로 집배원이란 뜻입니다. 영어로 하면 "Postman"(동명의 케빈코스터의 실망스런 영화도 있죠.)이 되겠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52년 본국에서 추방 당한 후 나 폴리 근처에서 살게되면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탈리아 작은 섬의 우체국장은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인 네루다가 망명처로 섬을 찾으면서 엄청나게 불어난 우편물들 때문에 어부의 아들 마리오를 고용합니다. 처음에는 시인인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마을 여자들의 관심 끌기에만 몰두하던 마리오가 아름답고 무한한 시(詩)의 세계를 만나게 되죠.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체 루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네루다의 도움을 받던 그는 이 과정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교실에서 배웠지만 머리로만 이해하던 시의 은유를 무엇보다 잘 설명한 영화. "선생님 은유가 뭐죠?" "하늘이 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지?" "비가 온다는 소리겠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은유야" 멀리 보이는 지중해의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자신이 사는 섬의 가장 큰 자랑거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자신에게 제일 예쁜 베아트리체)을 하기위해 네루다를 찾아가는 마리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흐르던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의 음악은 더없이 아름다우며,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추방령이 취소되어 네루다가 칠레로 돌아간 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시를 보내는데 그는 놀랍게도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섬의 소리를 녹음하죠. 지중해의 잔잔한 물결소리, 밤하늘의 별빛소리, 태아의 심장박동소리 등을 녹음해 완성하는 시로 그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씨클로>베트남의 씨클로는 그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고통스럽고 가슴아픈 현실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사고로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씨클로를 운전하는 18세의 소년. 자전거 바퀴를 수리하는 할아버지, 구두를 닦는 여동생, 집안의 살림을 이끌어 가는 매춘부 누나,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도시 빈민구역에 사는 소년의 삶은 고달프기만 합니다. 마치 비토리아 데 시카의 <자전거도둑>에서 처럼 그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씨클로를 건달패에게 빼앗기면서 그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빌린 씨클로의 대여료를 갚지 못하는 그에게 씨클로 주인은 대여료를 갚는 대신 자신의 수하에 있는 갱 조직에서 일할 것을 요구하죠. 처음엔 마지못해 이들에게 협조하던 소년은 차츰 약간의 눈속임만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범죄 세계에 빠져들어 가면서 소년은 빠른 속도로 범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소년이 가담한 조직의 우두머리에는 소년의 누나를 사랑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매춘을 알선하고 돈을 벌죠. 소년의 누나는 시인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에 그가 알선하는 매춘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시인을 위로합니다. 겉잡을 수 없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범죄 세계의 힘을 피부로 느낀 소년은 갱 조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쉽지가 않고, 시인은 자신이 알선한 매춘으로 소년의 누나가 순결을 잃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시끌시끌한 삶의 한가운데 생계를 위해 그 혼잡의 틈을 비집고 땀을 흘리면서 달려야 하는 씨클로 만큼 인간사회에서의 빈부를 잘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요? 물건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태우는, 그래서 씨클로를 타는 사람과 그 사람을 싣고 달려야 하는 차이는 냉혹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베트남을 떠나 자랐으면서도 트란 안 홍의 베트남 역사에 대한 진한 애착과 세밀한 일상적 고찰은 무척 뛰어나며 대비되는 색깔의 이미지는 영화속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도둑> 제2차 세계대전후 황폐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네오리얼리즘(Neo Realism)은 이전의 진부한 코미디나 소설의 영화화를 벗어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네오리얼리즘은 인간에 대한 보다 솔직한 결함과 욕망을 묘사했고, 주제의 대부분이 전쟁, 레지스탕스, 전쟁의 여파로인한 가난, 실업, 매춘,암시장을 다루었습니다.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적 감독중 한명인 비토리아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또한 형식적인 미학을 배제하고 영화인물의 사실적 묘사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대사에서 중요한 작품이죠.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실업 상태에 있던 아버지 안토니오가 어느날 포스터를 붙이는 일자리를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을 하는데 필수적인 물품인 자전거를 도둑맞습니다. 자전거가 없다는 것은 곧 직업을 잃는 것과 같은 현실에서, 실업의 공포감을 느낀 아버지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점점 짙어가는 좌절감을 느끼며 자신도 남의 자전거를 훔칠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결국 공원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훔치려 하지만 그만 실패하고 어린 아들 브루노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됩니다. 특히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훔치는 장면은 대사가 거의 없는 가운데 사운드의 변화와 shot 의 편집을 통해서만 갈등하고 있는 안토니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 브루노를 통해 보여지는데, 비극적인 현실은 자전거를 훔쳐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아들앞에서 더 이상 영웅상이 될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기본적 역할조차 못하게 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노동자가 결국 자전거도둑이 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역설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