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보는 습관으로 이 땅에 벌어지는 일들이 말씀을 통해서 다 해석하는 능력이 임할 때까지 우리들은 성경 책에 빠져 살아야 합니다. 교회 활동보다도 각종 무슨 모임 한다. 기도한다. 전도한다. 성경공부한다는 어린아이부터 남. 여 전도회 모임 형식에 모이는 제도는 다 제쳐 놓고서 각 개인이 말씀에 집중하는 훈련으로 누구든지 빠져서 살아가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교회사를 자랑하고 평양 대부흥회를 자랑하고 민족사를 자랑하고 한국 사회에 100주년 기념관이니 전통을 아무리 자랑을 하여도 성경 말씀을 제쳐두고서 그런 보이는 형식에 매여 빠져 있으면 이것은 마귀가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교란 작전에 교회들이 목사들이 그러한 일에만 흔들려서 있다는 것이 됩니다.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말한 것을 잘 알았으면 하고요. 그만큼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안 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거거든요.
그날 하루 아침에 눈뜨면 말씀에 배고파서 뭘 볼까 내가 이게 부족하지 맞아! 주님이 이것을 알게 하는구나! 항상 그런 생각 마인드로 자리 잡혀서 살아야만 하는데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요. 성령께서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분주하게 교회 활동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도요. 이미 믿을 만한 사람들은 교회 다니고 있고 제대로 못 가르치니깐 절로 가고 타 종교로 빠지고 사이비가가 좋다고 비 진리로 왜곡된 것이 더 판을 치는 거와 같습니다.
물론 마지막 때가 가까이 다가오니 세상이 혼돈되고 부패되고 파괴되는 거지만 어쨌든 교회의 몸은(에베소서 1:23)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에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디모데전서 3:15). 말씀이 약하면 교회는 맥빠지는 일만 합니다. 교회가 문제들을 만들고 다니면서 분리가 되고 그 이유를 모르면서 당파 싸움에 성도들은 난리를 칩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요? 먼저는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입니다. 그 싸움에 조정자는 사탄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지요? 말씀이 없으니 자갈밭이 되어서입니다.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비유에서 잘 드러나는 예입니다. 마가복음 4:5-6 KRV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https://bible.com/bible/88/mrk.4.5-6.KRV
제발 부탁을 한다면 말씀을 봐야 함을 강조를 해야 하고 쉴 틈 없이 봐야 합니다. 영어 단어 숙지보다도 말씀이 먼저입니다.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조잡한 내용의 한강의 소설책보다도 성경이 먼저 보는 중에 한강의 책을 비판을 한다면 맞는 말이 되는 하나님 말씀의 검으로 찔러 쪼개서 진실과 거짓에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능력이 임하면 성령께서 관습을 하십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판단하시고 성령께서 각종 좋은 것들과 나쁜 것을 보여 주시고 보호막을 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나쁜 일에 가까이 가지 않을뿐더러 휘말리지도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심려를 끼쳐 살까 봐 나를 훈련하고 나를 깨여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저와 우리들은 말씀에만 사로잡히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 31 KRV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https://bible.com/bible/88/gen.1.27-31.KRV
하나님께 창조된 우리들은 말씀 안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말씀에 사로잡혀야 하고 말씀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주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그러한 말씀에 통찰력의 능력이 임할 때까지는 각 개인들이 훈련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는 주님께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각자의 삶의 도생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면 베드로처럼 그 고백이 닭 울기 전에 세번을 부인할지라도 주님께 책망을 받을지언정 본시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자체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33-35 KRV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https://bible.com/bible/88/mat.26.33-35.KRV
따라 죽겠다는 베드로의 고백이 무색하게 세 번을 부인할 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마주쳤습니다. 주님의 예언이 베드로의 마음을 강타를 했습니다. 대성통곡하고 울었습니다. 회개로 다짐하고 베드로는 뉘우쳤지만 언제나 모자라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쓰임을 받는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그렇게 쓰시기 위해 그의 성격 성품까지 다듬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위해서 베드로는 그의 성격상 무덤 안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별도로 만나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을 물으시고 내양을 먹이라! 내양을 쳐라! 내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0:3-6 KRV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요한이)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요한은 들어가지 않음)[6]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https://bible.com/bible/88/jhn.20.3-6.KRV
베드로는 세 번을 물으시니 근심하여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고백을 했습니다(요한복음 21:15-17).
주님께서 어떠한 죽음까지도 이미 다 보여주시고 함께한 동료 요한를 걱정하기 보다는 주님은 베드로야! 너는 나를 따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21:18-24).
실수투성인 상태로 주님께 빠지는 것입니다. 빠지면 실수투성이는 주님께서 치유를 하십니다. 고쳐주신다는 거죠. 병은 주님께 빠지는 중에 성격과 성품이 다듬어지면서 고침 받고 받았다면 철저하게 주님 사랑에 배고파서 매달려 살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방법은 완전하게 쓰시려고 별도로 개개인들이 훈련을 통과하게 하고 통과하면 더 높고 깊은 고도의 테스트가 언제나 따르고 그거까지도 능히 이기는 능력은 예수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예수님께 빠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는 통로입니다(요한복음 14:6). 진실되게 알고 보면 눈물 콧물로서 회개하면서 사는 길인데 잘 안되니까? 주님께 울부짖습니다. 고쳐 달라고 제발 고쳐 달라고요.🙏🏻
우리 주님! 저와 우리들을 항상 불쌍히 여겨주시고 제발 고쳐서 사용해 주셔요. 주님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