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1등 공신 신숭겸장군 묘
6월이 시작을 알립니다.
6월은 호국의 달.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영령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춘천외곽에 있는 신숭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신숭겸 장군은 궁예시절 무공으로 있다가 궁예의 폭정에 대항하여 918년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손잡고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한 개국 1등 공신입니다.
신숭겸은 평산신씨의 시조로서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고 활동은 춘천에서 하였다고 하는데 고려사에는 춘천사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고려 태조 10년인 927년 대구 팔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싸움을 벌리게 되는데 장군은 그 전투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왕건을 보호하기 위해 왕건이 입고 있던 옷으로 갈아입고 전투를 벌리다 장렬히 전사합니다,
그 사이 왕건은 전장에서 무사히 탈출합니다.
이후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왕건은 그에게 '장절공'이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장절은 '절의가 굳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왕건은 장군에게 시호만 내려준 게 아닙니다.
장군이 잠든 묘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 위에 봉분이 무려 3개나 솟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 혹시 부인이나 다른 가족이 함께 묻힌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게 아닙니다.
장군의 묘는 하나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묘입니다.
봉분이 3개나 된 데는 도벌꾼으로부터 장군의 묘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장군이 전사하자 후백제군은 장군을 왕건으로 오해하고 왕건이 사망했다는 증거로
장군의 머리를 베어갑니다. 그 바람에 장군은 머리가 없는 시신으로 남게 되는데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왕건이 장군의 시신을 거둔 뒤, 장군의 머리를 황금으로 만들어 시신과 함께 안장했습니다..
머리 크기만 한 금덩어리가 함께 묻혔으니, 자연히 도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의 묘가 도벌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봉분을 3 개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신숭겸 장군 묘
신숭겸의 묘는 총 10개인데 도굴을 두려워하여 구월산과 팔공산에 각각 3개의 가묘와
신숭겸의 몸이 묻혀있는 춘천에 3개,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 신숭겸의 머리가 묻혀 있다고 합니다
신숭겸 장군 묘 양 옆으로 멋진 소나무
이자리는 풍수지리학자에 의하면 천하의 명당자리라고하네요.
그래서 왕건이 죽으면 이곳에 묻힐려고
하였는데 신숭겸장군이 묻혔네요
첫댓글 문화탐방팀에서 방문해도 좋을듯하네요
김 이사님 교통편을 좀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게ㅛ습니다.
재미나는 전설과 역사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어린 이야기입니다. 왕건을 위해서 장렬히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이나 최선의 보응을 하려는 임금의 갸륵한 군신간의 신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오늘날에도 통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