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목마른 사자(조선)와 멧돼지(한국)가 '작은 샘터'로 왔다.
그러나 누가 먼저 물을 마시느냐 하는 것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어느 한 쪽이 죽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둘은 마지막 싸움을 위하여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독수리(미국)들과 까마귀(일본)들이 몰려와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사자와 멧돼지는 싸움을 멈추고 "우리들은 독수리 떼나 까마귀의 먹이가 되기보다 차라리 친구가 되는 것이 좋겠어!"라고 말하였다.
옛날 우화의 하나지만 '작은 샘터'는 세계에서도 하나뿐인 한 서린 휴전선이다.
이 휴전선을 넘어 사자와 멧돼지는 2000년 6월 역사적인 평양 최고위급회담과 함께 6·15 공동선언을 했다. 서로 싸움을 멈추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온 세계에 알렸다. 1100년 전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통일회담을 한 것을 보았는가. 오천년 역사 속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인 시점을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공동경비구역 JSA'를 포함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세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독수리(미국)와 멧돼지(한국)의 90% 무력이 사자(조선)의 67% 무력과 일방장진의 태세로 전진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사자는 우리 민족끼리 싸움을 멈추고, 잘 살아보려면 독수리(미국)같은 다른 오랑캐 나라와 50년 동안 매듭짓지 못한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2002년 815민족통일대회 등 한(조선)반도의 자주통일세력의 활발한 만남 또한 한(조선)반도 평화통일지도를 다시 쓰고 있다. 전쟁의 참화가 아니라 평화통일 지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 평화통일만 있을 뿐, 그 이유는,
첫째, 각종 세계 전쟁에 약방에 감초처럼 미 군산복합체를 조종하며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지위가 한반도에서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세계전략의 핵심인 미 항공모함이 약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 본토가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면서부터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1호' 시험발사가 성공한 것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발사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베트남 1급 전범 헨리 키신저도 겁을 먹었던지 "북이 발사한 것이 미사일이건 인공위성이건 상관없이 그 발사기술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한다"고 했다. 아프간전쟁의 주요 원인이 된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 송유관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미국의 핵심 석유에너지기업인 '유노칼'의 고문으로 97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헨리 키신저이다.
급해진 건 미 군산복합체였다. 1998년 8월 31일, '광명성 1호' 시험발사가 성공한 뒤 미 군산복합체가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가를 보자. 북한이 1999년 8월에 '광명성 2호'를 발사할 것으로 본 미국이 일으킨 소동은 배꼽을 잡게 한다.
99년 8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추적한 미국의 미사일 추적함 '옵저베이션 아일랜드'호와 99년 진수된 최신예 미사일 추적함 '인빈스벌'호가 7월 사세보기지로 이동했고, 7함대 소속 구축함 '쿠싱'호(9천250톤)가 8월 2일 마이쓰루항에 입항, 같은 날 원자력 잠수함 '로스앤젤레스'호(6천80톤)가 사세보항에 입항했다. 전투기 80대를 탑재한 항모 '콘스텔레이션'도 7월 23일 요코스카항에 입항한 뒤 동해상에서 훈련 중이었고, 8월 25일에는 항모 '키티호크'가 중동에서 요코스카항에 입항해 일본주변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2척의 미 항모가 포진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기름만 낭비한 미국의 항모를 놀려주려는 듯 북한의 발사 실험은 없었다. 미국을 애타게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를 보아가며 2003년까지 발사를 유예하고 있다. 2003년 10월 21일은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핵합의서의 마감시한이다. 미국이 똥줄 탄다.
둘째, 9월 11일 사건 뒤 아프간 전쟁을 준비중인 9월 30일 발표된 미국의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QDR)를 보자. 이 보고서의 핵심은 윈-윈 전략의 포기다. 한반도에서는 전쟁을 포기한 것이다. 이는 부시 정권이 대북 강경책을 펴오다 6개월 만인 지난 6월 6일 조-미간 대화를 재개하겠다며 '핵 문제를 포함해 미사일 계획의 검증가능한 억제, 미사일 수출 금지, 재래식 군사력' 등을 제시한 뒤 4개월 만이었다. 아니 10년 간의 첨예한 북·미 대결에서 비로서 미국 스스로 전쟁이 아닌 평화관계를 시급히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동안 있어왔던 미국의 윈-윈 전략은 99년 유고전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99년 6월의 연평도 사태 뒤를 마지막으로 본격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발칸반도 유고에서 미 유엔대사인 유대인 홀부르크의 조종으로 유고전을 일으켰다. 동시에 미국은 서해 연평도에서 국지전을 상정한 공격적인 함정 들이받기를 시켰다. 북한과 남한의 젊은 병사들만 미 군산복합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북한의 황해도 해변의 대규모 방사포가 불을 뿜어 전선을 확대하게되면 미 군산복합체의 전쟁놀음에 말려들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대응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국방부가 발행하는 국방저널 2001년 6월호로 다시 보자.
"지난 1999년 6월, 서해에서 해군 2함대의 초계함(PCC)과 고속정(PKM)이 북한 서해함대 8전대 소속의 경비정들과 교전을 벌일 때도 U-2R기는 고공에서 북한을 감시하고 있었다. U-2R기의 카메라가 촬영하는 영상은 CC Seoul과 합참 지휘통제실의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전해졌으며, 한·미 작전장교들은 북한 사곶항의 미사일 고속정과 평양의 관문인 남포갑문 부근 초도에 있는 북한 해군 9전대의 함정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간 한·미 연합사의 통신감청부대는 교전중이던 북한 경비정과 북한 서해포대 지휘부 사이의 교신을 가로채 엿듣고 있었다. 교전중인 북한 해군 8전대보다 거의 2배에 이르는 화력과 공격력을 가진 9전대의 전투함들이 기지를 중심으로 별다른 이동이 없음을 확인한 한·미 연합사의 지휘관들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서해상의 포격전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국지전을 일으키려는 미 군산복합체의 불장난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윈-윈 전략은 이미 전략이 될 수 없었다.
셋째, 미국의 최첨단 무력 '항공모함'에 미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더 이상 미국의 힘을 과시할 수 없고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에 노출되어 핵 추진체가 맞으면 항공모함은 물론 그 일대가 방사능오염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급소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공룡임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뒤였다. 미 해군은 모두 12척의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3척은 기름을 때서 움직이는 재래식 항모(CV)이고, 나머지는 원자로를 움직여 가동하는 핵추진 항모(CVN)다. 오래 전부터 한반도 주변에 핵추진 항모가 배치되지 못했다. 미 해군 공식자료를 보면 현재 미 7함대에는 기름을 때서 움직이는 재래식 항모인 키티호크(CV 63), 컨스텔레이션(CV 64) 2척의 항모가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광명성 1호를 사전에 안 것은 늙은 럼스펠드였다. 인공위성 시험발사 이전인 1998년 7월, 미국 의회와 중앙정보부가 위촉한 `미국에 대한 탄도미사일 위협 평가위원회'의 위원장인 럼스펠드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래서 럼스펠드는 보고서 덕분에 국방장관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럼스펠드는 부시정권의 새로운 국방전략을 준비하면서 10여 년 간 미국의 세계전략인 윈-윈 전략을 폐기하고 있었다. 2001년 3월 22일 부시에게 "美 주요전장은 태평양"이라며 "공군은 장거리 폭격기를, 해군은 미사일에 치명적인 대형 항공모함보다 소형 항공모함을 각각 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더 이상 미국의 힘을 과시할 수 없고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앞에는 고물 덩어리임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뒤였다.
2001년 5월 17일 뉴욕 타임스는 새로운 장거리 무기를 개발하는 내용의 비밀 전략 검토서를 국방부가 마련했다고 보도하면서 "잠재적 적국이 더욱 정확한 미사일을 개발함에 따라 태평양의 미군 기지와 항공모함이 점점 더 이들의 공격에 취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략 검토서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미군 군사계획의 초점이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넘어오는 즉 동북아에서 더 이상 미국의 항공모함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위 보고서는 럼스펠드 장관의 고문인 앤드류 마샬이 주도적으로 작성했다. 그는 올해 79살로 한국전쟁전인 1949년 랜드 연구소에서 핵 전략가로 이력을 쌓기 시작해 73년 국방부에 들어간 이후 그는 닉슨 정권 시절 국방부 전략 평가국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국방부의 두뇌 역할을 해왔다. 93년 논문 '군사혁명에 관한 소고'에서 미국이 최강국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군사혁명에 매진하라고 일찌감치 일침을 놓았던 적이 있다.
앤드류 마샬의 작품은 9월 11일 사건이 터진 뒤 아프간 전쟁을 준비하는 중간인 9월 30일 미국의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QDR)로 비로서 빛을 보았다.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는 향후 미국 국방정책의 기조가 '적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미국의 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 추진 항공모함과 핵 추진 잠수함 트라이던트 2의 약점을 알아차린 뒤였다. 미 본토의 원자력발전소도 예외가 아니다.
넷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포플러나무 벌채사건으로 북한과 미국이 군사대결직전이었다. 당시 포드 대통령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의장으로 당시 CIA의 조지 부시 국장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참석했고 딕 체니는 비서실장이었다. 콜린 파월은 다음 해 1977년 국방부 부장관 선임 군사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정치·군사력을 선배들한테서 배울 수 있었다. 미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전략 폭격기까지 동원해 북한에 으름장을 놓았지만 씨도 먹혀들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에게는 미국의 최첨단 무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국가임을 이때부터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를 뼈에 사무치도록 기억하는 그들은 북한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먼저, 1991년 이후 이전 부시 정권과 북한의 관계가 핵의혹을 둘러싸고 긴장상태에 있을 당시 국방장관 체니는 대북 융화정책을 말했다. 체니는 5027작전계획의 시뮬레이션으로 제2차 한국전쟁의 공포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다시 말하면 98년 7월의 럼스펠드 보고서는 북한 미사일 개발 계획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경이적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북한미사일에 의해 미 본토가 보복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파월 국무장관은 북한 군사력, 특히 미사일 능력을 잘 알고 있다.
아미타지 국무부 차관과 케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공화당 매파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둘 다 레이건 시대의 국방차관보대리로서 아나폴리스 해군병학교 출신이다.
다섯째, 예전의 미 군산복합체가 아니라는 것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눈치를 보는 미 군산복합체의 입을 보면 더욱 재미있다.
2001년 7월 16일 세계 제일의 미사일 업체 레이시온사의 패트리어트 해외판매 총괄책임자 도널드 인판테씨가 방한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강행으로 민감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남한에 미국무기 팔았던 예전과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눈치껏 팔아야 하는 북한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미 군산복합체였다.
그는 애써“패트리어트는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 및 보호용이라 김정일위원장 서울 답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입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죽어도 '방어용'이라며 패트리어트 철학을 강조해야 했다. 예전의 미 군산복합체가 아니었다.
여섯째, 9·11사건은 북한의 북·중·러 대미 포위망 전선에 대항하는 대테러전선이었다. 2001년 1월 15일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과 장쩌민 주석의 9월 3일 평양방문 등 전통적 북·중 관계가 더욱 강해졌으며 7월 26일부터 24일간의 방러 및 북-러 정상회담은 북·중·러의 대미 포위전략의 결정판이었다. 이어 준비된 9·11사건이 터진다.
그동안 북한은 2000년에 이탈리아(1.4), 호주(5.8, 복교), 필리핀(7.12), 영국(12.12)과 수교했다. 특히 2001년에 들어서는 네덜란드(1.15), 벨기에(1.23), 캐나다(2.6), 스페인(2.7), 독일(3.1), 룩셈부르크(3.5), 그리스(3.8), 브라질(3,9), 뉴질랜드(3.26), 쿠웨이트(4.4), 유럽연합(5.14), 바레인(5.23), 터키(6.27)와 각각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에 대사관을 연 유럽국가들은 지난 1년반 사이에 5개에서 13개로 늘어났으며 유럽연합 회원국들 가운데는 프랑스와 아일랜드만이 평양에 대사관을 두지 않고 있다. 특히 2001년 8월 영국이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다는 것은 눈길을 끈다. 영국과 미국은 같은 나라에 다름 아니다. 아프간전쟁에서 보듯이 오히려 영국이 미국보다 더 앞장서기도 한다. 북한이 고립 되어 있다는 둥 개방을 해야한다는 둥 하는 말이 어마나 낭설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연방 국가들의 대북 수교 행렬은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문제는 미국의 한반도 전쟁 분위기조장 이전에 전쟁과 공포심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원자력 잠수함만 보고 열린 입을 닫지 못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만 명도 당할 수 없다. 원자력 잠수함도 급소를 치면 고물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미국의 공포 즉 최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와 환상에서 벗어나는 문제다.
첫째, 이는 제국주의자들, 최첨단 무기를 앞세우는 자들, 군산복합체들이 제일 먼저 여론 조작하는 것이 바로 '공포조성'이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 중에 '진주만' 영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상영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잠시나마 승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프간이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아프간 민족의 나라찾기는 계속된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 세계를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눈으로 보게 된다. 세상을 제대로 보는 코페르니쿠스 적인 눈이 필요하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을 보라. 수나라를 물리친 고구려, 거란을 물리친 고려의 전법을 보라. 미국을 몰아낸 베트남 민중을 보라. 최첨단 무기가 많아서인가. 아니다. 사람이 많아서 이겼나. 아니다. 전법이 뛰어났고 머리로 싸웠다. 적의 약점을 손 봤던 것이다. 군사가 단결해서 이겼다. 민족이 대단결해서 이겼다.
둘째, 제국주의에 대한 공포, 즉 최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는 최첨단 무기의 급소 즉 취약점을 제대로 모르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과학과 비 과학이 나눠진다. 최첨단 무기의 취약성을 바로 알고 군사적 힘을 키우며 세계의 반전역량처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 자주역량이 굳게 단결하는 것이 과학이다. 여기서 한 나라의 군사적인 힘이 민족의 대단결임은 당연하다.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을 보자. 그 규모와 위세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 급소가 있다. 미사일에 노출되면 졸지에 고물 덩어리가 된다. 다윗의 돌이 어디를 노렸는지 말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된다.
셋째, 미국은 약한 나라 앞에서는 강하고 강한 나라 앞에선 작아진다.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차원이 다르다. 뒤집기 승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전법이다. 상대방을 머리와 기술로 이기는 전법이다. 일부 평화운동세력들이 자신들의 시각이 무척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프간 다음은 북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몇 년 후 닥칠 미국의 쇠잔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자들 일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도 지금의 분단 구조가, 미국의 1극 세계 제패가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인` 생각이 아니다.
일부 평화운동세력들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눈은 문익환 목사님의 눈높이다. 통일을 하려면 감히 북한과 친구가 되라 하셨다. 통일의 반쪽인 북한과 친해져야 한다고 했다. 감히 연북, 친북하지 않고서는 통일이 없다 하셨다. 최소한의 기본 눈인 문익환 목사님의 눈높이 정도만이라도 없으면 아프간 다음은 북한이라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조작에 자기도 모르게 휩싸인다. 미국에 대해서는 백화점 수준의 지식은 있지만 동족인 북한에 대해서는 그 백화점 수준보다도 못하다. 문익환 목사님의 눈높이 정도로, 중용의 눈으로 사물을 보자. 관세음의 눈 높이로 세상을 보자.
다시 2003년 10월 21일,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핵 합의서의 마감시한이 다가온다. 미국이 똥줄 탄다. 2002년은 부시정권의 중간선거가 있다. 미 군산복합체, 군수재벌과 석유재벌의 이권을 쫓는 부시정권은 전쟁을 저지를 줄도 알고 포기할 줄도 안다. 정확히 북한과 미국의 힘의 역학관계에서 밀리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펼칠 수 있지만 북한한테는 전쟁이 안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과의 전쟁은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 구체적으로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이 한꺼번에 날아간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다음은 전쟁이 아니라 북-미 대화이다. 제네바 핵 합의서의 마감시한이전인 1년 반 안에 북-미 수교다. 그전에 다만 찻잔 속의 태풍만 다소 있을 뿐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자그마한 소동은 있었다. 2002년 서해교전!. 평화통일의 새벽이 오기 전에 더욱 칠흑같은 어둠이 요동을 치듯 말이다.
미국의 무기 강매도 마찬가지다. 2003년 북·미 수교협정을 앞둔 막바지 장사이다. 2001년 11월 9일 '체이스 맨해튼 뱅크'의 후신인 '시티뱅크'의 고문이자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부시 아버지가 아프간 전쟁 중 전군 경계령이 펼쳐져 있는 남한을 찾았다. 애국운동진영은 의외로 조용했다. 금강산에서는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리고 있는 때였다. 그가 머지않아 아들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2002년 8월 7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후 미국의 대북특사는 고위급으로 정해 질 것임을 예고한다. 미군 철수는 미국의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에서 눈에 띄게 시작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2002년에는 통일바람이 월드컵 열기 못지 않게 불었다. 남북노동자 5.1절 대회, 6.15민족통일대토론회, 남북농민통일대회, 8.15민족통일대축전 등 민간자주교류를 훨씬 뛰어넘는 이후의 통일행사가 봇물 터지듯 하고 있다. 평화통일을 위해 싸우는 한국 국민의 힘이 결실을 맺고 있다. 한국 국민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만 명도 당할 수 없다 하였다. 우리의 소원 통일이 현실로 되고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