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무장 이광악과 임진왜란 특별전▣
♠전시일자 : 2021. 9.30~11.30까지
♠전시장소 : 충주세계무술박물관 특별관(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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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악(李光岳) 장군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이다.
1557년(명종 12) 충북 충주 유동리(遊洞里)에서 아버지 정선(旌善)군수 이호약(李好約)과 어머니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했다고 알려졌으며, 목소리도 컸다고 전해졌다.
또, 너무 맑아서 대인의 풍모가 있었다고 한다. 학문과 수신에 힘쓰기보다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것을 즐겼다해 무관으로 출사하는 데 그 뜻을 뒀다고 한다.
1584년(선조 17) 무과 별시에서 을과 16위로 급제해 선전관에 제수된 이광악 장군은 이후 연일(延日)현감·이성(利城)현감·경주(慶州)판관을 거쳐 곤양(昆陽)군수에 임명됐다.
이광악 장군은 임진왜란 3대첩에 빛나는 진주성전투 승리의 주역으로서, 그 공을 인정받아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됐다.
이후 수원(水原)부사·경기방어사·영흥(永興)부사를 거쳐 1606년(선조 39)에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됐다.
1608년 52세 나이로 별세했으며, 1711년(숙종 37) 충장(忠壯)의 시호를 받았다.
이광악 장군의 묘소는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탑말에 있다. 이곳에는 조부 이연경, 아버지 이호약의 무덤과 함께 있는데, 무덤 아래쪽 사당인 `문효사(文孝祠)’에 장군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이광악의 선무공신교서는 원래 불정면 삼방리의 후손가에 전해져 오다가, 장군이 쓰던 보검과 얼굴이 그려진 영정 등과 함께 1987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돼 관리하고 있다.
보물 952호인 이 문서에는 이광악 장군의 자질과 품성, 경력, 진주성을 방어하는데 세운 무공과 공신에게 내리는 혜택 등이 실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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