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사
성혈사는 신라의 고찰임이 분명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는다. 의상 대사(625∼702)가 초암사에서 수도하던 중 장소가 좁아 이곳으로 옮겨 창건하였고, 성승(聖僧)이 절 아래로 300m 거리에 있는 바윗굴에서 나왔으므로 성혈암이라 했다고만 전할뿐 다른 사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성혈사의 역사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지만, 국보로 지정된 나한전이 조선시대인 1553년(명종 8)에 세워졌고 1634년(인조 12)에 중수된 것으로 보아서는 적어도 16∼17세기에 법등을 잇고 있었음을 알 수는 있다. 또한 이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간행된 임고서원 소장 장적 중 「환성사결입안(環城寺決立案)」에 임고서원(臨皐書院)과 환성사(環城寺)·운부사(雲浮寺)·인각사(麟角寺)·정각사(鼎脚寺)·성혈사 등 5개 사찰과 임고서원과의 분쟁에 대한 입안이 나와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연혁은 전혀 남겨진 것이 없다. 최근에는 1956년에 중수하였고, 2004년에 요사를 새로 지었다.
성혈사 입구
성혈사 요사
성혈사 인법당
성혈사 법당내
성혈사 신중탱화
문화재자료 제523호
신중탱화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한 화면에 모아 그린 그림으로 규격은 가로 116cm 세로 131cm 이다. 대웅전에 봉안된 이 신중탱화은 1775년에 제작된 불화로, 안정된 구성형식을 지닌 제석・천룡탱화이다. 이 제석・천룡탱화는 제석천(帝釋天)과 일월천자(日月天子)를 비롯한 천부중(天部衆), 위태천(韋駄天)을 위시한 무장(武將)의 천룡팔부중을 함께 그린 형식이다.
화면의 상단에는 제석천이 오른쪽에, 위태천이 왼쪽에 배치되어있으며, 하단에는 무장(武將)의 천룡팔부중이 역동적인 자세로 나타나있다. 연꽃을 들고 정면향한 제석천을 향해 측면향으로 선 위태천은 화염 광배(光背)를 지닌 장군의 모습으로 두 팔에 금강저를 얹은 형태이다. 화면은 어둡지만 바탕 천(비단)이 비칠정도로 얇게 바른 차분한 채색, 세련된 필치가 돋보인다.
성혈사 산신각
성혈사 산신각내
성혈사 나한전
보물 제832호
좁은 경내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성혈사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이다. 1984년 수리를 할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1553년(조선 명종 8)에 처음 지었고 1634년(인조 12)에 다시 지었음을 알 수 있어, 건축년대가 확실한 조선 중후기의 건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므로 1985년 보물 제832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의 공포를 기둥과 기둥 사이 평방(平枋)에 짜올린 다포식(多包式) 건물이다. 창호는 각 2분합의 문을 달았는데, 공예적으로 뛰어난 여러가지 문양이 장엄되어 있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1984년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553년(명종8)에 처음 지어졌고 1634년(인조12)에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 안에는 석고로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과 16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내·외 이출목(二出目)의 공포에 기둥은 배흘림기둥으로 우주(隅柱)의 안쏠림과 귀솟음 수법이 사용되었다.
이 성혈사 나한전이 또한 중요한 이유는 앞문의 창에 조각을 만들어 장식한 점인데, 특히 가운데 칸에 있는 물고기·게·동자상·연꽃·새 등의 조각에서 뛰어난 회화 및 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안에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16나한상을 봉안하였다. 비로자나불상은 지권인을 하고 있으며 석조은 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불상과 대좌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6나한상은 모습이 다 다르게 표현되었고 옷에 채색이 잘 되어 있어 실감나는 작품으로, 조선시대에 조성한 듯하다.
성혈사 나한전앞 석등
성혈사 나한전앞 석등
나한전 앞에는 특이한 모양의 석등 2기가 조성되어 있다.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하대석 위에는 간주석(竿柱石)을 감싸고 있는 용(龍)이 조각되어 있다. 이 용은 앙련(仰蓮)의 상대석과 4개의 화창(火窓)이 뚫려있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치고 있다.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가 올려져 있다.
성혈사 나한전 문살
전면의 창호는 다양한 문양들이 창살로 짜여져 있는데, 특히 어칸은 십장생(十長生)을 투각하여 장엄을 이루고 있다. 주제별로 보면 게, 물고기, 개구리, 학, 용, 동자상, 연꽃 등으로 불, 물, 하늘에서 사는 생물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조선후기 이후에는 대체로 불교가 서민층의 의식세계를 포용하게 되었고 사찰 내의 건물 구성 및 장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문양의 창호는 민화적인 요소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유형문화재 제402호
성혈사 나한전(羅漢殿)안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연화좌(蓮花座)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고 지권인(智拳印)을 맺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옷 주름의 표현이 약간 경직되고 형식화된 몸체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9세기 후반]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릎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윤곽선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곡선으로 처리된 옷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8세기 후반 - 9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대좌는 불단(佛壇)에 가려 있어서 세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3단으로 된 연화좌인 것은 확실하며 불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손은 파손되어 보수하였고 양 무릎의 끝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성혈사 나한전내 16나한들
성혈사 찾아가는 길
서울 방면에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풍기나들목으로 나온다. 풍기를 지나 931번 지방도로를 타고 순흥면 소재지로 향한다. 여기에서 소백산국립공원 방면으로 가서 순흥 저수지를 지나면 ‘배점’이 나온다. 배점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초암사, 오른쪽은 성혈사다. 성혈사까지는 좁은 길이지만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서 경내까지 일반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