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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소금인형
어제는 미국에서 브루더호프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님 부부를 만나게 되었어요.
형제님의 구원 간증과 공동체와 연결되게 된 배경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었어요.
고넬료가 꿈에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만나 예루살렘 교회와 연결이 되었던 것처럼....
형제님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간구했고
"나는 누구인가?"
"이 아름다운 대자연...자연을 만드신 분은 누구신가?"
의문을 가졌고, 어느날 어떤 분의 한마디
"기도는 네가 궁금한 것을 아버지께 물어보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되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하셔요.
주님의 제자는 세번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십자가 고통의 현장에서 한번, 무덤에서 한번, 부활하신 현장에서 한번....이렇게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의 공동체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힘들지만 원더풀한 삶이다"라고 하십니다.
공동체의 인원은 350명 정도가 되고, 모임은 매일 있고, 주일 한번은 공동체 전체가 모이며, 식탁 교제 또한 공동체 전체가 일주일에 한번 있다고 하시네요. 돈은 소유하지 않으며 8시간을 노동하고 가장 연약한 자들이 가장 큰 배려를 받게 된다고 해요.
공동체를 위한 공동체가 아니며, 사람을 효율성에 의해 대하지 않으며,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공동체의 모든 형제가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100년 정도 이어온 공동체에 한때 위기가 있기도 하였으나
그분들이 이제 공동체 생활을 해온 지13년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시고, 참 행복한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 말씀을 실천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생활이 되신 분들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공동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밖의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좋은 교제를 허락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메노나이트 신앙(출처 : 위키백과)
메노나이트 신앙의 역사는 16세기 종교개혁당시에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보다 근원적(Radical)개혁을 요청했던 그룹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세례의 참 의미가 당시의 유아세례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말하고, 이미 유아세례를 받은 성인 크리스천으로서 진지한 신앙고백과 함께 신자의 세례(Believers' baptism)를 서로에게 주었기 때문에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은 박해로 인해 재세례파 운동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재세례파 리더로 활동했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네덜란드의 가톨릭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는 저술활동과 성경을 연구하면서 당시 편만해있던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잡고, 이를 실천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현재 메노나이트 교회는 미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경에 충실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자도, 평화, 공동체라는 핵심 가치 아래,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적 교회를 공동체로 여기며, 화해와 평화의 사역을 실천하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메노나이트 교회는 신약성경에 충실한 삶,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충실히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또한, 평화교회로서 추구하는 평화주의는 신앙고백의 핵심으로 폭력을 거부하며, 평화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백교회로서 메노나이트 교회는 입술로서의 신앙고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와 섬김을 통해 믿음을 고백한다. 1920년 이후로 메노나이트 교회는 자체 메노나이트 구호단체를 결성하였고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원봉사자, 선교사를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6세기의 초기 메노나이트들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박해로 말미암아 프러시아, 러시아, 미국,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한 후, 신자들의 교회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많은 교단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재세례파 운동은 퀘이커, 역사적 평화교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간접적으로는 침례교, 청교도 운동, 감리교 운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부르더호프 공동체, 레바플레이스 공동체는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로서 전 세계 공동체와 교회 리더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아나뱁티스트 역사>> 코넬리우스 딕 지음, 대장간 출판.
한국에는 1953년부터 1971년까지 대구 경산 지역에 메노나이트 직업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전쟁 고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고, 전쟁 미망인 프로그램, 물자 원조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였다. 1990년대부터 메노나이트 선교부에서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춘천에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Korea Anabaptist Center www.kac.or.kr)와 경기도 덕소에 한국 평화교육 훈련원(www.kopi.or,kr), 그리고 교회의 네트워크로서 한국 아나뱁티스트 펠로우십 (Korea Anabaptist Fellowship, www.wkaf.net)이 있고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으로 교단이 형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현재 공동체 관련 자료, 평화 신학, 회복적 정의 운동, 건강한 교회 및 교회회복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으며, 최근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교회를 한국 교회의 희망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건강한 교회의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메노나이트 교회가 지난 500여 년 동안,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초대교회의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 온 역사에 근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메노나이트 교회의 시작은 1525년 1월 21일, 신자의 세례 (believer's baptism)가 시행된 16세기 재세례신앙운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은 네덜란드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로 사목했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였지만, 종교개혁에 가담하여 재세례신앙운동의 교리를 유아세례 불인정, 개인의 종교의 자유 인정 등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신약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폭력에 반대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재세례신앙운동은 1600년까지 1만명의 순교자를 낼 정도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재세례신앙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메노나이트도 탄압받았다.
그래서 일부 유럽의 메노나이트 신자들은 미국으로 이민가거나, 러시아의 농업 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메노나이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기로 했던 예카테리나 대제가 다스리는 제정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이들 중 미국에 이주한 이들은 독일어 방언이라는 그들의 문화를 갖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당시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인 메노나이트들은 무기사용을 곧 살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갈등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진보지식인인 하워드 진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당시 메노나이트와 러시아 정교회내 평화주의교회인 두호보르파등의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갇히는 탄압을 받았다. 물론 고난과 박해의 시절을 거쳐 지금은 대체복무제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아나뱁티스트 센터가 설립되어 2001년 이후 활동해오고 있으며, 2010년 한국 아나뱁티스트 펠로우십 (3대 대표 남상욱)가 형성되어 교제를 진행해오고 있다. 메노나이트에 대한 신학과 역사에 대한 책은 KAP와 대장간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다. 도서출판 대장간에서 《아나뱁티스트 성서해석학》,《아나뱁티스트역사》,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등과 오십여 권의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 교회론, 공동체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자이며 윤리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의 총서가 11권 소개되었다. 또한,KAP에서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가 쓴 《제자도,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 (Discipleship as Political Responsibility)》외에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예수의 정치학》(The Politics of Jesus , IVP)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메노나이트의 신학사상이 소개되었다. 2016년 2월에 한국메노나이트교회연합(Mennonite Church South Korea)가 교단(대표 김성우)으로 발족하였고, 논산의 평화누림메노나이트교회, 제주의 하늘가족메노나이트교회, 진해 주빌리메노나이트교회, 춘천 메노나이트예수마음교회가 속해있다. 이밖에 아나뱁티스트 교회로는 춘천의 예수촌교회가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부터 1971년까지 부산, 대구 등의 영남지역에서 무료 직업학교 운영 등의 구호활동을 한 바 있다. 1954년부터 2 년간 대구와 부산에서 메노나이트 교회 봉사활동을 했던 아담 에워트(Adam Ewert)씨가 1954년 당시의 대구의 생활상을 찍은 컬러 사진 120점을 공개하기도 했다.[1][2]
첫댓글 부르더호프 공동체의 형제자매님 부부의 모습은 참으로 소박했습니다..책을 한아름 가져오셔서 선물로 주시고 참 감사함이 가득했었지요. 자매님의 체크무늬 잠바스커트차림을 보면서 왜 여성만 교복처럼 저런 옷을 입고 남자들은 자유로운 복장을 할까? 라고 질문하였더니 남편이 답변하길 여성들은 옷과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니,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서로 비교하지 않고 마음 상할일도 없이 시간도 절약되고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남성들은 아무 옷이나 소박하게 입고 옷에 신경을 안쓰니 괜찮다고 답변하네요... 그럴듯한 답변이지요...
평창에서 자란 형제님이 중학교 어린시절에 나는 누구인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가 만드셨나? 라는 의문을 가졌다는 것이 새로웠고 어린시절에 자연의 아름다움 창조주를 기억했다는 것이 경이로웠어요. 어린시절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제도권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영성이 죽었다가 부르더 호프 관련 서적을 발간하는 일을 하시면서 그들의 삶을 직접 확인하러 공동체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 마태의 수난곡을 듣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고난받는 십자가를 체험하고 처음 성령체험하신 때로 영성이 회복되는 체험을 하였다는 간증도 참 은혜가 되었어요
부르더호프 공동체는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모든 구성원들이 이 형제 자매를 만장일치로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들여야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공동체의 일보다 우선시 하는것이 약한 형제자매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더 중요시하고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노동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들은 참으로 소박함 자체였고 공동체 일원으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지만 원더풀한 삶" 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게 다가왔답니다. 편안하지만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힘들지만 사람사이의 역동 하나님의 섭리하심 성령의 인도하심이 생생하게 날마다 일어나는 원더풀한 삶의 현장 !!! 참 부럽네요..
형제 자매님들을 만나면 공통된 느낌이 있어요.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친근함과 주님을 만나게되었을 때의 유사한 경험의 간증에서 오는 일치된 생명이라는 그 느낌이지요. 박형제님의 십대 때의 고민과 이후 신앙이 바닥을 치고 난 후 공동체와의 만남의 경험...모두 마음을 적시는 감동의 간증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