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大理) 숭성사(崇聖寺) 삼탑(三塔), 가운데 탑의 높이는 69.13m

▶ 여행일시 : 2016.4.11.(월) ~ 4.15.(금)(4박 5일)
▶ 여행인원 : 22명(남자 6명, 여자 15명)
▶ 여행방법 : 여행사 패키지 상품 여행
중국 운남성 곤명이 꽤 멉니다. 곤명은 운남성의 성도입니다. 비행기로 4시간 30분이나 걸립
니다.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을 가기 위해서는 곤명에서 여강(麗江)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꼬박 예닐곱 시간은 걸립니다. 곤명은 옥룡설산을 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물론
곤명에도 석림이나 동굴 등 볼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내 이번 여행을 오지산행 몰래 갔다 오려고 했는데 대간거사 님의 정확한 추리에 바로 간파
되고 말았습니다. 치악산 산행기를 평소와는 달리 월요일 아침 일찍 올린 점, 4월 13일 총선
거일에 북배산을 가자고 전화했는데 받지 않을뿐더러 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응답이 없는 점
을 고려할 때 국내에 없는 것으로 판단했답니다.
인천공항에서 4월 11일(월) 16시 1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곤명에 19시 20분(현지시각 20
시 2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녁 먹고 호텔에 들어가서 세면탁족하고 자기에 바빴습니다.
이튿날 전세 관광버스 타고 여강으로 가기 위해 05시 30분 기상하고, 06시 30분 식사한 후,
07시에 출발하였습니다.
곤명은 해발 고도 1,900m대의 고원입니다. 기온은 평균 겨울에는 섭씨 3도, 여름에는 28도
라고 합니다. 봄의 도시, 꽃의 도시라고 하는데 작년 겨울에 이례적으로 영하 6도까지 내려
갔다고 합니다. 그 맹추위(?)로 꽃들이 다 얼어 죽었답니다. 특히 부겐베리아가 피해가 컸다
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꽃이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곤명의 상주인구는 약 720만 명, 중국의 20대 도시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중국 내 생화의 40% 가까이를 공급하고 우리나라 사업가들도 주로 생화생산 업종에 종사한
답니다.
그리 많지 않은 중국 여행이지만(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판의 글씨에 우선 눈
이 갑니다. 무슨 말인가? 무슨 글씨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국의 간자체는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모양이 어색합니다. 멋들어진 서예가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잘 쓴 글씨를 만날 때면 기분이 상쾌합니다. 중국 여행에는 그런 즐거움이 적지 않습니다.
마치 오지산행 중 잘 생긴 소나무를 만난 같습니다. 아마 이름 있는 명필의 작품이라고 생각
합니다. 상점 간판, 버스 옆면과 뒷면에 붙인 글씨 등 서예 전시회를 봅니다.
1. 雲南省旅遊. 관광버스 옆면에 쓰인 글씨 중 일부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어느 명필의 글씨를 집자(輯字)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2. 昆明中北. 우리가 4박 5일 동안 타고 다닐 전세버스 옆면에 쓰인 글씨 중 일부입니다.

이 글씨만 보아도 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우리의 여행이 아주 즐거울 것 같습니다. 특히
‘中’자는 힘이 넘칩니다. 대체로 간단한 글자인 大, 小, 女, 中 등은 맵시 있게 잘 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3. 곤명 어느 보석상에 들려 현판에 쓴 글씨 중 일부입니다. 날렵합니다. 그렇다고 경박하지
도 않습니다.

4. 대리(大理) 숭성사(崇聖寺) 본전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진미하고 완미한 절품입니다. 이런 글씨는 몇 시간을 보아도 즐겁습니다.

조박초(趙樸初)라는 분의 글씨입니다.
조박초(趙樸初)가 누구인가?
여허공(如虛空) 조환기 전 동명대 교수의 블로그에서 그분을 뵐 수 있었습니다.
조박초(趙樸初, 자오 푸 추 1907~2000).
“중국 사찰 여행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단아한 글씨체, 사찰마다 적혀 있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글씨의 주인공이 바로 조박초(趙樸初)다. 불교계 활동 때문에 어쩌면 한국에서 조박
초는 서예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박초가 서예가로서도 이름을 날
렸지만, 무엇보다 조박초는 온몸을 던져 오늘날 중국 대륙에서 불교가 다시 꽃필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준 재가불자인 거사(居士)이자 정치가였다.
조박초는 중국불교협회회장이면서, 동시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부주석을 지
낸 정치적 거물이었다. 더구나 최근 눈부신 발전 가도에 있는 대륙의 불교 현황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조망하는데 조박초의 역할이 기초가 될 것이다.
격동의 시대, 특히 종교는 아편이라고 외치는 공산당이 통치하던 중국 대륙에서 전전긍긍하
던 불교의 불씨를 보존하여 오늘날 화려한 불교의 부활로 이끌어 주었던 인물이 바로 조박초
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박초의 서예만 아는 것은 조박초의 편린을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박초 그의 「임종게(臨終偈)」라고 합니다.
살아서 진실로 즐거웠으니 生固欣然
죽어도 아쉬울 것 없네 死亦無憾
꽃은 지면 다시 피고 花落還開
물은 흐르고 또 흐르네 水流不斷
나에게 무엇이 있을까? 我兮何有
누구와 함께 안식하리? 誰歟安息
밝은 달 맑은 바람 明月淸風
구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네 不勞尋覓
조박초는 죽기 전 가족에게 자신이 죽으면 안구를 병원인 동인의원(同仁醫院)에 실험용으로
기증하고, 쓸 수 있는 장기는 최대한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나머지 쓸모없는 부분은 화장
하되 유골이나 사리를 거두지 말 것을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의 수의는 본인이 평소에
쓰던 침대보를 말아서 사용하고,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일체의 허례허식을 행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1928년 그의 나이 21세 되던 해부터 불교에 몸을 담았고, 1980년부터 사망 시까지 20
년 동안 중국불교협회회장을 역임하였고, 불교에 몸을 담은 후 평생을 채식과 불교 연구에
매진한 충실한 불자였습니다.
6. 대리 이해(洱海) 호수

곤명에서 여강으로 바로 가기에는 너무 멀고 지루해서인지 중간에 대리를 들립니다. 대리
(大理)에는 대리석이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리석이라고 합니다. 대리의 이해(洱海)
에서 배 타고 유람하는 일정이 있었으나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취소하였습니다.
이해(洱海)는 호수가 바다처럼 넓기도 하지만 호수의 모양이 귀(耳)를 닮았다고 합니다.
7. 이해 유람선 선착장

8. 대리(大理) 숭성사(崇聖寺) 입구

숭성사는 유서 깊은 절입니다. 남조시대 899년에 세워진 절입니다.
삼탑을 비롯하여 ‘중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향의 임산배수로 명당에 위치하였습니다. 절이 얼마나 큰지 절 입구에서 본전인 대웅보전
까지 가는 데만 40분 가까이 걸립니다. 불도(佛都)입니다. 셔틀 전동차도 다닙니다.
9. 용을 조각한 대리석

10. 숭성사 본전인 대웅보전

북경 황궁인 태화전의 모양이라고 합니다.
동향으로 뒤의 산세와 잘 어울립니다.
날이 흐려 산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11. 우동관음전 앞 청동 솥(?). 엄청 큰 솥입니다.

11-1. 우동관음전 소개,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이 엉터리입니다.

12. 삼탑 중 북탑, 높이 42.19m

13. 삼탑 중 서탑, 높이 42.19m

14. 여강 입구

여강 입구 전망대 휴게소에서 찍었습니다.
‘여강제1경’이라고 큰 안내탑을 세워 놓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런 경치를 보고 제1경이라니.
여강을 떠나올 때 여기가 여강제1경인 이유를 알았습니다.
옥룡설산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고도 2,000m가 넘는 고지라 날씨가 순식만변합니다.
이때는 비가 내렸습니다.
15. 여강 입구, 전망대 휴게소에서

첫댓글 입구에서 본전까지 걸어서 40분이라! ㅋㅋ 아주 작은 절이군요. 멋진 사진들이 독자의 구미를 확 당깁니다.
빨리 앞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행기네요. 다음 편 기다리고 있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