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새해
빌립보서2:5-11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새해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예배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처럼 새해에는
먼저 하나님을 구하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먼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처럼
2024년도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며칠 전에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을 지냈습니다만
성탄절의 의미는 중에 하나를 더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사시기 위해 오셨다’ 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지만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33년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33년을 사시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사셨던 것이 예수님의 삶의 두 가지 특징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서로 똑같은 인간이 사는 모습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사실까? 매우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이 땅의 환경에서도 하나님답게 사실 수 있을까?’
‘온전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고 사실 수 있을까?’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사신 삶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시어서 인간의 삶을 사셨을까요?
그것은 물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그렇게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할 수 있는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도 그렇게 살라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살아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인간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셔서 새로운 인생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너희들도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삶을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있고 이 사회를 향한 사명이 있습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 하는데요,
교수들이 뽑은 지난해의 사자 성어는 “의로움을 잊고 오로지 이익만 챙긴다.” 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 였습니다.
교수들은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와 자녀 학교 폭력에 대한 대응,
개인의 이익을 핑계로 가족과 친구도 버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견리망의로 선정한 이유로 밝혔습니다.
이러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도 우리 사회가 지금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고위층에 있는 사람들과 사회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이용하여
앞장서서 이런 일을 행한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큰 책임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저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할 이유는 이것이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여도 사랑하시고 우리가 실수하여도 사랑하십니다.
믿음이 커지면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묵상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사랑도 더 깊어지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잘할 때는 후해졌다가 실수하면 줄어들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했다고 덜 사랑하시고 성공했다고 더 사랑하시지도 않습니다.
지금 부족할 때에도 사랑하시고 믿음이 커져도 사랑하십니다.
언제나 어느 때나 변함없이 지금 이 모습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손과 발에 흙을 묻히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려고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그때 아버지는 그냥 주지 않습니다.
수돗가에 가서 손과 발을 씻기고 얼굴을 씻기고 아이스크림을 주려합니다.
아이는 손과 얼굴을 씻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씻기 전에는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딸아이가 흙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고 얼굴과 손과 발을 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순결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무리의 흠모를 받으셨지만 검소한 삶을 사셨습니다.
여자들의 공궤를 받으셨지만 불순한 생각으로 욕들은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능욕을 당하셨지만 그들이 자비를 빌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다녔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으로 묘사했습니다.
같은 기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요한도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요일3:5)
예수님의 마음은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평안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일을 당해도 조급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제자들이 안달했을 때도 주님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제자들은 폭풍을 만나 겁에 질려 소리를 쳤으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폭풍 중에서도 곤하게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무리가 검과 몽치로 무장하여 찾아왔을 때
베드로는 칼을 뽑아 병사들에게 맞섰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의 칼에 상해진 병사의 귀를 만져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도 노발대발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간다고 시무룩해지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얼굴에 침을 뱉자 자신도 침을 뱉어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이 모든 일에 침착하셨습니다.
보복하지 않고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위로부터 주어진 소명 외에 어떤 다른 것에 이끌려 다니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 분은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인생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당연히 성취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이 사명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고 사셨기에 그 분은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 말할 때와 ‘다 이루었다’고 말할 때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목표를 따라 살아가셨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마음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즐겁게 사셨습니다.
백합화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으셨고 예배를 드리면서 기쁨을 누리셨고
문제에서 가능성을 찾으셨습니다.
30여년이 넘는 시간 인간의 오물과 진창 속을 헤집고 다니셨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아름다움을 보셨고 우리 잘못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네 번째는, 신령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셨기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요14:1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각종 능력 있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사시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관례를 따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시간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40일 금식 기도하셨고 12제자를 뽑을 때도 산에 올라가 철야기도하신 후에 뽑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런 말을 들을 때 본능적으로 우리가운데 일어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같이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이 사셨던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여러 번 이런 의심의 함정에 빠져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나서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을 닮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늘 말씀드리지만 이러한 말씀과 명령은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고 명령하셨지 절대 못한다고 하면 아예 주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능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1.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것이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받았습니다.
2.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갈2:20)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이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왜 아직도 나의 고민과 걱정이 버젓이 살아있는 것일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여 년 전에 아일랜드 해변에 작은 집 한 채를 짓고 살던 부자이면서도 아주 검소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지역에 전기가 들어오자 이 여인이 제일먼저 전기를 놓았습니다.
전기를 가설한지 몇 주 지나 검침원이 방문했는데 ‘전기가 잘 들어오느냐’고 묻자 ‘잘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이상한 듯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계량기는 거의 제자리입니다. 전기를 쓰고 계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저녁마다 해가지면 촛불 붙이는데 필요한 시간만큼만 전깃불을 켜지요. 그리고 꺼버려요.’
전기가 들어오지만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여자의 집은 전기로 연결되어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그리스도의 삶으로 살아가는 변화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스위치를 올릴 때도 있지만 대개는 그냥 어둠속에 갇혀 지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이미 들어와 계십니다.
그 분은 전기를 켜고 환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살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 분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기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옛 생활에 매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회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소욕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기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이야기로 마치려 합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우리 마음에는 늑대와 양이 함께 살면서 서로 싸운다고 하자 손자가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기나요?’
할아버지의 대답은 ‘네가 밥을 주는 놈이 이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밥을 주고 누구에게 순종하고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이기는 것은 결정되어 집니다.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에 마음을 기울이고 가까이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