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거부 심리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20만 명이 넘는 등 확산 추세가 여전히 거세지만 미 전역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돌발 행동을 벌이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 5월 2일 한 남성이 KKK 두건을 쓰고 식료품 매장을 돌아다녔다.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가리개나 마스크를 하라는 샌디에이고의 행정명령이 떨어지자 이를 조롱하듯 마스크 대신 눈만 뚫려 있는 KKK 두건을 쓴 것이다. KKK는 인종혐오 범죄를 일삼던 미국의 대표적 백인우월주의 단체다. 이 남성은 KKK 두건을 벗으라는 매장 직원의 요청을 수차례 무시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며 처벌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미시간주에 있는 매장에서는 마스크를 쓰라고 말하는 직원의 옷에 코를 닦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68세의 이 남성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매장에 들어왔다. 직원이 남성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자 남성은 직원의 옷을 가리키며, 이걸 마스크 대신 쓰면 되겠다고 말했고, 직원의 옷에 코를 닦았다. 그 후에도 남성은 계속 가게에서 소란을 피우다 결국 경찰에게 체포됐다.
미시간주 역시 행정명령에 따라 공공장소 출입 시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며칠 전에는 미시간주 플린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경비원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매장 경비원이 여성 손님에게 행정명령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여성은 경비원과 말다툼을 한 뒤 매장을 나갔다가 자신의 남편, 아들과 함께 다시 매장을 찾았다. 남편은 경비원에게 자신의 아내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며 언성을 높였고, 아들이 경비원에게 총을 쐈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경비원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정치권에서도 마스크 착용 문제가 논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있는 마스크 생산 공장을 방문하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도 미네소타주의 병원을 찾으면서 혼자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폴은 5일 상원 회의에 참석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 사람은 미국 상원의원 중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폴 의원은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바이러스에 걸렸었다며, 면역이 생겨 다시 걸리지도, 남에게 옮기지도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재감염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미국에서 유독 마스크 착용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프라이스 에모리대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개인의 권리에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며,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 조치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역사 탓이라는 설명도 있다. 미국 약 15개 주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두고 있다. 과거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가 두건을 쓰고 흑인 등 인종혐오 범죄를 저질러왔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마스크 착용에 대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자유의 박탈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들에게 겁을 먹었다 생각하고 공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며, 자신을 강하다고 보여주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초기 사태에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하여 혼란을 부채질했다. 트럼프 등 미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메시지가 모호하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치인들부터 솔선하여 마스크를 착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바로 코로나19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최고의 비법은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이며, 남들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미국 사람들은 한사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 하는지 소가 웃을 일이다.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