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Changgyeonggung Palace , 昌慶宮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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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19. 19:06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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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 Changgyeonggung Palace , 昌慶宮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1963년 1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창덕궁의 동쪽에 위치한 궁궐로, 원래는 왕실의 작은 별궁이었던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1483년(성종 14) 성종이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여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게 되면서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었고, 1980년대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의 명칭인 '창경(昌: 창성할 창, 慶: 경사 경)'은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수강궁 시기
창경궁의 자리는 원래 수강궁이라는 조선 왕실의 별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수강궁은 1418년(세종 1)에 세워진 별궁으로,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태종이 상왕(上王)으로 등극하면서 머물렀던 곳이다. 태종이 사망한 이후에도 단종과 세조는 수강궁을 사용했으며, 세조는 수강궁에서 별세하였다. 또한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은 수강궁의 중문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창경궁의 창건
1483년(성종 14) 성종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 덕종의 비이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를 모시고자 수강궁을 확장하여 창경궁을 건립하였다. 이때 지어진 전각은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사성각 등이며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徐居正)이 지었다. 정희왕후 윤씨, 안순왕후 한씨, 소혜왕후 한씨를 모시고자 지어진 궁궐이었으나, 정희왕후 윤씨는 창경궁이 완공되기 전에 사망하여 창경궁에 모시지 못하였다.
임진왜란때의 소실과 중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 등 한양 안에 있던 모든 궁궐과 종묘가 소실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창경궁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으나,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인해 통명전·환경전·양화당 등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1633년(인조 11)에 중건되었고, 1830년(순조 30) 대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전각들이 또 다시 소실되어 1834년(순조 34)에 중수하였다.
창경궁의 훼손과 창경원으로 격하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1909년(순종 3)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강제로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이 이루어진 이후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창경궁 복원사업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Changgyeonggung Palace, 昌慶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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