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길을 여는 분이 계십니다. 길을 가게 하는 이가 있습니다. 길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께서 길을 열고 걷게하고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드립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를 낳았습니다. 예수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도 낳으셨습니다. 세상에 위대한 인물을 낳아주신 분이 '어머니'입니다.
인근에 입양원이 있습니다. 아기들, 어린이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엄마, 어머니'라고 분명하게 부를 수 없다는 것. 그것입니다.
입양원이기 때문에 돌보아주는 분들이 엄마도, 선생님도, 이모, 삼촌 도 됩니다. 어린이들은 엄마라고 부르기도, 이모라고도, 선생님 그리고 삼촌하고 부릅니다. 엄마도 여럿이고, 돌보는 엄마가 있다가 떠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마음의 상실감이 큽니다.
"아!, 아픈 아이들이여! 아픈 인생들이여! 어찌해야 합니까?
그들에게는 한 분의 '엄마, 어머니'가 없습니다. '엄마, 어머니' 사랑과 자비, 곧 엄마. 어머니, 위대한 분의 자애가 그들에게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린이 들에게 엄마라는 명칭과 함께 엄마의 인격적 가치가 스며들고 자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간구합니다.
" 언젠가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서, 엄마 아빠가 될 때, 스스로 그 엄마 아빠의 거룩한 길을 가게 하소서!
하루빨리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하소서!"
나누는, 주는 사랑도 그들에게는 일시적일 뿐,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가다가 멈춥니다. 함께하고 싶지만, 입양원의 구조상, 그곳 담당자도, 돌보는 이들의 입장과 상황도 이해해야 합니다. 안타까움. 연속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하고, 주 성모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이 어린이들이 이른 시기에 좋은 부모, 가정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들이 이른 시기에 부모들을 만나지 못하면, 이곳을 떠나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져야 합니다. 물론 그곳에서 잘 돌보고 인도하지만, 또 다른 엄마, 어머니를 만나고, 이모를 만나야 합니다.
나라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만들어진다. 고 하였습니다. 종교의 개념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지만, 기도는 어머니를 통해서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어머니들은 기도하는 어머니입니다.
성인이 되어 어려움과 좌절과 절망 속을 헤멜 때, 불현듯 어머니의 기도 모습을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간구하십니다. 어머니는 바로 생명과 구원의 전구의 어머니입니다.
시인은 시적으로, 교사는 가르침으로, 그러나 어머니는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이 넓게 교육합니다. 하느님 마음을 닮았습니다. 어머니는 거룩하며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어머니는 남자보다 높고, 여자보다 높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주인입니다. 아버지는 주권이 있을 지라도, 상대적으로 어머니는 주권이 없더라도, 모든 것을 이루는 분입니다.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어머님의 길입니다. 그분이 가신 거룩한 길을 따라 가면서 내가 살아왔고,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찬미하고 찬양합니다. 거룩한 그분의 길을 따라 또한 걸어갑니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길을 따라 갑니다. 어머니의 거룩한 길을 갑니다. 항구한 어머니의 길을 통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따라 삽니다. 그 말씀에서 신앙과 복음의 빛을 비추고, 실천합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생명을 전달합니다.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