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수요일>(2023. 7. 19. 수)(마태 11,25-27)
복음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유식한 바보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여기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처하지만 참된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 교만한 위선자들, 잘난 체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기득권층 사람들, 지식인들,
권력가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감추시고” 라는 말씀은,
그런 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자들은 자기들이 현세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에 취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자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데, 그 뜻을 외면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외면해서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하느님께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자들이 스스로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로마 1,18-22).”
이 말은 원래는 무신론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을 꾸짖는 말인데,
신앙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속의 이상하고 쓸데없는 이론에 귀를 기울이다가
신앙인들도 하느님과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성서학자들과 신학자들 중에도 그런 ‘유식한 바보’가 있습니다.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다가 예수님의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아테네에서의 선교활동’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과 토론하고,
또 날마다 광장에 나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하였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몇몇 철학자도 바오로와 대담을
나누었는데, 어떤 이들은 ‘저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바오로가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이방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군.’ 하고 말하였다. 사실 아테네인들과 그곳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은 모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사도 17,17-18.21).”
오늘날에도 진리를 탐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고, 이해가 안 되면
아예 안 들으려고 하고...... 그러면서 점점 더 ‘구원의 진리’에서
멀어져 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철부지들’은
겸손한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드러내 보이시니”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겸손한 사람들에게만
당신의 뜻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들만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세속의 지식이나 기득권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일에 세속의 기득권층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의 구원을 독점한다면,
그래서 가난하고 힘없고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소외되고
차별 당한다면,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도 아니고,
그 구원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들의 교만과 위선을 버리면 됩니다.
스스로, 진심으로, 자기를 낮추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라는 말씀은,
승천하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구원하지 않을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예수님만)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의 나라’에, 즉 하느님 나라와 구원에
도달하는 길이고,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구원의 진리’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만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출처]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