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명치끝에 남아있다.
쇠구슬이 달린 수십 가닥의 가죽채찍에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힌 적나라한 상황은
모두에게 가슴 찢어지는 처절한 순간이었다.
하나, 몇 시간 동안 한 사건만을
너무 의식적인 상징으로만 과잉 묘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인간적인 의구심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종 너무 잔인한 묘사로 이루어진 까닭으로, 아님 내 미련함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틀에 꽉 틀어박힌
현대인들에게 주는 경종이요,
십자가에 못박힌 역사적인 잔인한 사건이
그 동안 너무 쉽게 한 줄의 전설처럼
읽혀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저린 뉘우침이 겹찔렸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가능하다라는 말씀을
또다시 뼈저리게 새기며.(히11)
누군가를 대신해 아픔을 껴안는 다는 것은 분명
누구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보다 더 큰 세상 일이 어디 있을까.
가룟시몬의 아들 유다가 예수를 팔고(은30냥에 빌라도에게 팜, 마태복음27장)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번 주님을 부인한 사건이
어디 그 시대
한 개인에게만 종속된 인간 상으로 끝날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요6:70)
피 흘리는 예수의 죽음을 의심한 한 병사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를 때
다시 한번 인간의 잔인함을 뒤돌아보았다.
눈물, 회개, 부활, 사랑...
부모와 자식, 인간적인 고뇌와 인내, 희생...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내가 모든 걸 다 이루었느니라"(요19:30절)
첫댓글웬만한 슬픈 영화를 봐도 별 미동 없어 척박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던 내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영화가 끝나고 밝은 공간 밖으로 나올 적에는 그제야 민망함을 알고 화장실에 들러 세안을 오랫동안 하고서야 다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영화....
첫댓글 웬만한 슬픈 영화를 봐도 별 미동 없어 척박한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던 내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영화가 끝나고 밝은 공간 밖으로 나올 적에는 그제야 민망함을 알고 화장실에 들러 세안을 오랫동안 하고서야 다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