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23년간 8500만원… ‘상습수급자’ 감액법안은 국회서 낮잠
18년 연속 수령자도 최소 7명 달해… “선원 등 단기계약-실업급여 반복”
5년내 3회이상 수령 10만명 넘어… 정부, 작년말 ‘50% 감액’ 국회 제출
노동계 “제한땐 취약계층 생계 불안”… 학계 “방치땐 실제 필요한 계층 피해”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정부는 반복적인 수급자 혜택을 줄이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21.10.13 신원건 기자
농림어업 분야에서 일하는 A 씨(63)는 해마다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신청하는 ‘단골손님’이다. 그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23년 연속 한 해도 빠짐없이 실업급여를 받았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원치 않게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정 기간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실직 전 18개월 가운데 180일 이상 일하면서 보험료를 내면 받을 수 있다. A 씨는 이 규정을 이용해 매년 연간 약 180일을 일한 뒤 나머지 기간에 실업급여를 받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그가 23년 동안 받아간 실업급여는 총 8519만 원에 이른다.
○ 20년 이상 연속 수령자 3명
14일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실업급여 누적 수령액 상위 10명 자료에 따르면 A 씨는 국내에서 실업급여를 가장 긴 햇수에 걸쳐 가장 많이 받아간 사람이다. 이어 22년 연속과 20년 연속 수령자가 각각 1명 있다. 18년 연속 수령자는 최소 7명으로 집계됐다.
이 10명이 누적으로 받은 실업급여는 각각 8000만 원 이상이었다. 물론 이런 사례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이들이 매년 비슷한 시기에 실업급여를 받은 점을 감안하면 선원 등 계절에 따라 일이 몰리는 직종에서 단기계약과 실업급여 수령을 반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비자발적으로 실직하면 최대 9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매달 받는 금액은 직전 평균 임금의 60%다. 최소한으로 받는 실업급여 하한액이 하루 6만120원(2022년 기준)이라 매달 180만 원 이상 받는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4주에 1번 이상 면접을 보거나 구직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 재취업 활동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취업할 의지 없이 면접만 보거나 구직 프로그램에 참여만 하는 식으로 재취업 활동을 인정받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여기에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사업주가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부추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이 없는 시기에 근로자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이들이 실업급여를 받도록 강요하거나 묵인하는 식이다.
○ 3번 이상 수령자 10만 명
고질적인 ‘실업급여 상습 수급’은 적자에 빠진 고용보험기금 재정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직전 5년 이내에 3차례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016년 기준 7만7000명에서 2021년 기준 10만10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받아간 금액은 같은 기간 2180억 원에서 499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 때문에 많은 보험료를 내고도 실업급여를 받지 않은 사람과의 형평성이 문제로 꼽힌다. 김학용 의원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메뚜기 실직자’ 때문에 고용보험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반복 수급자의 혜택을 줄이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5년 내에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으면 지급액을 최대 50% 줄이고, 급여 수령 대기기간을 최대 4주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단, 이직이 잦은 일용직 등 취약계층은 예외로 뒀다. 반복 수급자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의 사업주 보험료를 올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노동계에서는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제한하면 취약계층 노동자의 생계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며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방치할 경우 청년 등 실제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