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魯)나라는 주(周)의 건국공신인 주공 단(旦)의 아들이 개국한 유서 깊은 나라였다.
공자(孔子)가 음력 8월 27일에 태어났다는 통설은 많은 역사가들이 의문을 제기하였
으나, 오랫동안 지켜온 그의 탄신일(誕辰日) 이었다. 그러다가 세계화의 추세로 대부
분의 국가에서 양력 9월 28일로 바꿔서 그의 탄신일로 기리며, 여전히 동아시아의 대
부분 나라에서 공자탄신일로 널리 봉축되고 있다.
▲ 공자탄신일에 성균관에서 추계 석전제를 올리기 위하여 자리에 앉아있는 유생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곡부(曲阜)에서 태어난 공자는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
고 처음에는 어머니 안징재(顔徵在)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10대에 벌써 지칠 줄 모르
는 향학열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말년에 "나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十有五而
志于學)고 회상했다.
▲ 공자탄신일을 축하하는 화환이 성균관에 진열되어 있다.
공자는 창고를 관장하는 위리(委吏), 나라의 가축을 기르는 승전리(乘田吏) 등의 말단
관리로 근무하다가 19세에 가정환경이 비슷한 여인과 결혼했다. 공자의 스승이 누구였
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6예(六藝)―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에 능통하고 고전(古典), 특히 역사와 시(詩)에 밝아 30대에 훌륭한 스승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 성균관의 석전제 제례에는 헌관은 모두 남자가 맡지만, 알자는 여자가 하는 경우도 있다
공자(孔子)는 40대말과 50대초에 이르러 중도(中都)의 장관으로 발탁됐고, 이어 노(魯)
나라의 재판관이며 최고위직인 대사구(大司寇)에 올랐다. 56세에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
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있는 다른 나라를 찾아
보기 위해 노(魯)나라를 떠났다. 67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과 편
집에 몰두하면서 고전의 전통을 보존하는 일에 열중하다가 BCE 479년 5월 11일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 성균관의 대성전 안에 차려져 있는 석전제 제대와 제기 등 제수용 기기들
▲ 성균관의 대성전 앞에서 석전제 제례에 절하고 있는 전국에서 모인 유학제관들
▲ 9월28일 성균관에서 열린 공자탄강 2564년 석전제에서 유학대표들이 엎드려 예를 올리고있다
공자탄신일(孔子誕辰日)을 유림에서는 ‘공부자탄강일(孔夫子誕降日)’ 이라고 한다.
올해는 공기(孔紀) 2564년이 된다. 단군왕검이 우리나라를 세운 해의 기준인 단기
(檀紀)나 서기(西紀) 또는 부처가 열반한 해로부터 계산한 불기(佛紀)라는 단어는
눈에 익지만, 공자(孔子)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공기(孔紀)라는 단어는 생소할지도
모른다. 공자(孔子 : BCE 551∼479)가 아시아문명, 아니 더 나아가 세계 인류문명
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파고드는 사상의 지주가
될 것이다. 공자는 노(魯)나라 곡부(曲阜)에서 태어나 사람의 도리인 인륜을 최초로
설파하며 유학(儒學)을 창시한 인류의 사표로 추앙된다.
▲ 공자탄신기념제에서 성균관대무용과학생들이 문묘제례악에 맞춰 팔일무(八佾舞)를 춘다
▲ 성균관에서 열린 공자탄강 2564년 석전제에서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연주단 모습
‘세계의 3대 성인’ 으로 일컫는 분이 공자와 석가, 예수이지만, 생전에 3천명이 넘는 제
자를 거느린 어른(聖賢)은 공자뿐이다. 부처나 예수는 자신의 주장이 종교로 바뀌어후
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그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은 종
교라는 명칭을 대개 쓰지 않으면서도, 그 사상의 흐름은 우리들 뇌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세관이 없는 유교를 굳이 종교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유교는 인간수
양의 이념으로 2500여 년 동안 ‘사상의 주류’가 되어 우리의 정신세계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 공부자탄강 2564년기념 석전제에서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학생들
▲ 성균관에서 열린 공자탄강 2564년주년 석전제에서 문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연주단
최근 우리 사회에 참혹한 범죄들이 잇따르고 있는 까닭으로 인성교육의 부재를 들기도
한다.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인성교육의 원조가 바로 공자이다. 공자는 지금도 남아 있는 행단(杏壇)
에서 3000여명의 제자들에게 사랑하는 마음(仁), 올바른 마음(義), 실천하는 마음(禮),
슬기로운 마음(智)을 갖도록 가르친 인류의 참스승이다. 공자의 사상이 시대에 역행하
는 고리타분한 관념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 성균관에서 열린 공자탄신 2564년주년 기념제례에서 제례 음악과 무용을 하고있는 학생들
▲ 공자탄신 2564년주년을 맞은 우리 전통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뜰안 모습
공자탄신일을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스승의 날’로 정하고 있고,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및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있다. 특히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대륙을 공산당에게 넘겨주고 대만으로 옮긴 후에도 유교사상을 지켜온 적
자로 성장하여 오면서, 공자탄신일을 일찍부터 '스승의 날'로 지정, 국정공휴일로 지키
고 있다. 인류의 사표인 공자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게 된다면 해마다 촌지나 선물
등으로 얼룩진 스승의 날 논란도 그칠 수도 있으며, 인성교육에 대하여 학부모들이 성
찰해보는 의미 있는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도 29년간 지켜온 스승의 날
을 내년(2014년)부터 9월 10일에서 9월 28일로 바꾸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 되고
있다. (국무원교육법을 수정)
▲ 성균관에서 공자 탄신기념일 석전제 봉행에 제례악을 담당하는 한 대원을 포커스로
▲ 성균관 대성전 앞 은행나무는 유학을 지켜온 지혜의 상징이라고 한다.
첫댓글 유생대표 사진속에 두류봉이 있는지? 그동안 소식이없어 이북에(?) or 이민 가신줄 알았오. 어쨋거나 다시 돌아오심을 축하합니다.
머리속에 두류봉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류봉 선생은 대 유학자이시니, 성균관 일에 관여하시네요.
맡은 직함도 있겠지요.
다음에 이런 행사있으면, 소생도 한번 말석에라도 참가하고 싶으니,
데려가 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