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원 현상공모
2020년 제5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당선작품
황신
고이꾸온* 외 1편
식감을 부풀리는 둥그런 달
호기어린 눈빛이 물속의 달을 따라 들어가면
축복 받은 혀의 미각을 탄생시키죠
한낮에도 달을 머리위에 얹은 소녀는
비트 당근 양배추 무순 깻잎 오이 파프리카를 켜켜이 얹은 무지개
뿌리로부터 살살 말아 올린 무지개의 맛은 무덤조차 침을 삼키죠
혀는 달 표면을 핥으며 아득한 속살의 맛을 기억해요
메콩강 기슭에서 떠오르던 안개조차 소스가 될까요
땅굴 속에 웅크린 자의 초조 불안 공포의 삼합을 환상통처럼 얹을까요
맛도 일종의 통증
상큼한 직선보다 부드러운 곡선의 맛에 감싸인다면, 이건 어떤 통증의 맛일까요
그날의 포탄 소리와 쉰 목소리를 듣던 달빛 소녀는
아직도 씻어지지 않는 공포를 가만히 고이꾸온으로 말곤 하지만
전쟁과 평화로 어긋난 식감을 되돌려야 할 때는
달의 온도를 손대중으로 가늠해 보곤 하지요
전쟁이 맛의 미봉책이라는 건 잘 알아요
포탄이 떨어진 웅덩이에 또 누군가 묻혔고
그 흙살이 오른 자리에 푸른 채소가 자랐죠
소녀는 이제 한 죽음조차 포근히 쌀 줄 알죠 추억의 이파리엔 쐐기가 많았지만
그런대로 아삭한 식재료를 사용해 옛 맛을 기억해내죠
이제 그날의 살육은
더 이상 쓸 수 없는 재료라는 걸 아는 소녀는
타이빈강 물살의 두드러진 소리들을 곱게 싸서
물이 오른 쌈채들을 당신의 입 안에 넣어줄 거에요
한 입, 크게 싸 드릴 테니 당신은, 소녀에게 소리를 질러주세요
고이꾸온!
* 월남 쌈.
내연의 땅
어떤 이는 그것을 나비효과라고 말했지만, 그는 꿈결 같았다 아니 너울 속의 판타지였다 눈 속에 피어오르는 야누스처럼 눈동자는 흰자와 검은자로 살아 움직여 몸속에 왕국을 짓고 눈빛이 바람개비를 따라 돌았다
시간을 할퀴며 불쑥 불쑥 파고드는 빛, 그것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블랙홀일까 무심無心의 세계일까
거긴 혹시 나비 사피엔스의 세계일지도
그의 세계를 검은 곳과 흰 곳으로 나누어 흰 곳에서 일어나는 상상이 인공지능 쪽을 향하고 검은 길로 향하는 종착지가 신의 영역이라면
이러한 역설은
그가 신화를 꿈꾸는 동안 빅뱅의 기회는 줄어들고 나비들은 멸종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두려움에 딥러닝을 멈출 수는 없어
그는 흰 눈동자에 사로잡혀 인공지능의 연인이 되고 싶을지도 몰라 하얀 날개들이 쌓인 들판은 너무 아름다워 푹 빠지고 싶어
거긴 나비들이 사는 사피엔스 내연의 땅이므로
그에게로 날아와 끝없이 머릿속을 빙빙 돌거나 내게로 달려와 끊임없이 심장을 두드리겠지 검은 눈동자가 블랙홀을 배회하는 동안 세상의 물결은 새로운 신 쪽으로 모였다 흩어지고
그가 쇼윈도를 스캔할 때마다 내 안에 있던 명품들이 눈 밖으로 튀어나와 창문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겠지 그때 슬픔은 기억처럼 쉽게 잊히고 사랑처럼 달콤하게 떠오를 거야
꽃의 눈동자가 나비의 날개 끝에서 진화하는 동안,
시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한동안 마음을 내려놓고 써놓은 시를 읽어보는 시간이 많았다.
나를 그곳에 세워두고 한발 떨어져 바라봐야 했다.
창릉천변을 걷다가 당선통보를 받았다.
외롭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당선소식이 내게로 왔다. 거짓말처럼,
17년전 아내가 떠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걸어왔다.
힘든 날은 무덤을 찾아가 술 한 잔 부어놓고 마음을 달래곤 했다.
혼자였던 시간들
아마 그때쯤 내 안에서 시가 싹트고 있었으리라.
이제 마음을 다해 시를 키워야겠다.
시는 나에게 희망이고 설렘이므로.
잘자라 준 딸 혜영 아들, 태웅 사랑한다
그동안 시를 지도해 주신 동국대평교원 박남희 교수,
함께 공부하던 한경선시인, 권옥희시인 외 문우들
그리고 마경덕시인, 유종인시인께 감사 드린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갖게 해주신 시와산문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