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 본문 : 예레미야 33장 1-3절
지난주에 ‘기도는 사랑이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면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가 즐거움이고 기도가 행복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얼마나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사셨습니까? ‘기도는 사랑이다’라는 설교를 듣고 이전보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매순간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이라도 고백하게 되셨지요? ‘주님, 나는 죽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좀처럼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꾸 주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30분 단위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면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달라지는 것을 분명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던 주님이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만으로 주님의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기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모든 성도 안에는 기도의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교제의 자리로, 대화의 자리로 초청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 안에는 기도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나 기도해야 하는데’ 하는 말이 탄식처럼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의 탄식이 아니라 주님의 탄식입니다. 성령님의 탄식입니다. 그래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답답합니다. 이 기도의 무거움은 기도해야 풀어집니다. 주님께서 기도의 감동을 주시고, 그래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무겁게 하시고, 그래도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리로 몰아가기도 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기도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33장의 배경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던 B.C. 587년입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포위는 588년부터 시작되었고, 586년에 함락되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그러면 예루살렘 성이 불타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성안의 모든 백성들이 바벨론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항복하라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예레미야를 어떻게 그냥 놔둘 수가 있었겠습니까?
시위대 뜰에 갇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을 외칠 수 없었던 예레미야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회개하면 사는데, 바벨론을 통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복하면 사는데, 하나님께서 살 길을 알려주시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유다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위대 뜰에 갇히지 않았다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외칠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할 수 없으니 애간장이 녹았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일을 행하시는 분,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으면 이제는 기도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해야 하는데 예레미야는 계속 자신이 하려고 합니다.
※ 지난 월요일 밤에 다니엘기도회 16일차 권오중 집사님의 간증을 통해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 간증을 시청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준비를 하다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다니엘기도회 권오중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마지막에 장애를 가진 아들과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울었던 것입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월요일 밤에 권오중 집사님의 간증을 보았습니다. 유튜브에서 다니엘기도회 2024를 검색하시면 누구든지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집사님의 간증이 오늘 전하는 말씀의 좋은 예가 되어서 설교 중간 중간에 집사님의 간증을 나누려고 합니다.
권오중 집사님의 아들이 병을 앓고 있는데 한국에는 한 명 밖에 없고, 파키스탄에 14명이 있는 희귀병입니다. 간증 마지막에 아들과 함께 찬양을 부르는데 큰 감동이었습니다. 권오중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는 아내를 만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라 여러 교회에서 초청받아 간증도 많이 했지만, 정작 본인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간증 집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한다고 술자리를 가졌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분의 간증 가운데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픈데 병명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습니다. 수많은 병원을 다녔습니다. 서울만 아니라 지방까지 말입니다. 병원만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여러 민간요법까지 해보았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것이 뭐라도 한 것이 가장 미련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만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고 말씀 없고 기도가 없으니까 치료한다고 아이를 무식하게 잡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고쳐보겠다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지만 모두가 헛고생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신이 만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애쓰고 수고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수고를 다 합니다.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지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최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인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권오중 집사님의 간증처럼 헛된 수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멸망이 눈앞에 있는 예루살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위대 뜰에 갇히게 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시위대 뜰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시위대 뜰에 갇히게 하셨습니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시위대 뜰에 갇힌 분이 있습니까? 시위대 뜰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시위대 뜰에 갇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시위대 뜰에 갇혀있다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헛되 수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집을 세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세우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열심히 집을 세우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집을 세우는 것은 헛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수고해도,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고생할지라도 헛됩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집을 세워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는 모든 수고는 헛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성을 지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을 가정을 교회를 지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잠만 자면 안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깨어 있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깨어있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헛됩니다.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인생은 잠이 없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집을 세우느라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습니다. 게다가 밤에는 성을 지키느라 깨어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잠을 자겠습니까?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잠을 자려해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식이 없는 인생입니다. 이것이 평안이 없는 인생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다고 할 만큼 열심히 삽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합니다. 오직 한 가지만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 미국에서는 7천만 명 이상이 불면증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인구의 20%가 넘습니다. 그리고 매년 3만8천 명 정도가 불면증이 원인이 되어 목숨을 잃습니다. 10대 청소년 64%가 학업부진의 요인이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노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65대 이상 50%가 불면증으로 인해 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루에 팔려나가는 수면제, 신경안정제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열심히 집을 세우고 열심히 성을 지키는데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쉼이 없는 것입니다. 왜요?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만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을 다 했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았다면 헛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구원을 약속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의 감동을 주십니다. 기도의 소원을 주십니다. 그래도 기도하지 않고 헛된 수고를 하고 살아가니 시위대 뜰에 갇히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3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1. 응답을 준비하셨기에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응답을 준비하시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 새해가 되면 아이들이 우리 부부에게 세배를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아버지 어머니, 저희의 세배를 받으십시오.’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저나 아내가 아이들에게 세배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렇게라도 세배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모공경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물론 평소에도 부모에게 인사를 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이해서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실질적인 이유인데도, 바로 세뱃돈을 주기 위함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유일한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설날을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물론 저희 어릴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 하나라도 물려주고 싶어서 새해가 되면 꼭 세배하게 합니다.
세배를 받으면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줍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세배하는 것보고 세뱃돈을 줍니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요. 그러나 세배를 받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미 세뱃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세배하라고 합니다. 세배를 받아서 세뱃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뱃돈을 주려고 세배하라고 합니다.
기도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응답하시려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왕 주실 거면 그냥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육신의 부모도 자녀가 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녀의 필요를 공급해줍니다. ‘밥 주세요, 옷 사 주세요. 등록금 주세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여주고 입혀주고 채워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까요? 왜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실까요?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주선이가 매일 저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안 보여서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가 내 눈앞에 보이니 안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합니다. 상태가 심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이 지식에 머무르고 맙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은 지식을 넘어서 신앙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이 믿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왜 저렇게 걱정하고 염려하며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보면 답답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어떻게 저렇게 무식하고 비이성적으로 믿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은 응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기도와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의 신앙이 분명해지면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삽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삽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 권오중 집사님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결단했던 것이 술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술이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타락시켰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CF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연예계 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도 한 번도 제의가 없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2-3년 동안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치킨광고였는데 내용을 보니 마지막에 치킨과 함께 맥주를 권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치킨과 맥주가 단짝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치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맥주를 권하는 장면 때문에 권오중 집사님이 CF광고 모델 제의를 거절합니다. 비록 광고라 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술을 끊으라고 권면했던 자신이 술을 건네는 광고를 찍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술을 마시라고 부추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생에 처음 들어온 CF광고 모델 제의였습니다. 2-3년 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수입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갈등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자신은 술을 끊었기 때문에 술을 권하는 광고를 찍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맥주를 콜라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치맥이 치콜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고가 대박이 났습니다. 그리고 원래 받기로 했던 개런티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CF광고 모델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큰 수입이 없어지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져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사람은 이렇게 강하고 담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래야 일을 행하시는 분,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 없이 무슨 일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일을 행하시는 분,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이 자신이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 없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만으로 망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기도하지 않고 부자가 되면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응답하시기 위함입니다. 매일 기도를 통해 매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경험하는 인생, 매일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채워주시고 책임져주시는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시려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애타는 심정으로 항복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위대 뜰에 갇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응답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
그 내용이 예레미야 33장 6절 이하입니다. 한 마디로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될 것이고, 예전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들의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탄식하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멸망 뒤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놀라운 예루살렘의 회복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33장 15절 말씀입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다윗에게서 나는 공의로운 가지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 것입니다. 악을 심판하시고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예레미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능력과 우리가 가진 것을 따라 계획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힘들고 가진 것이 없으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크기는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상황과 우리가 가진 것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크기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고, 그 비전대로 그 그림대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능력과 자신이 가진 것과 상관없이 크고 놀라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 권오중 집사님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아들과 찬양하는 것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제일 못하고 싫어하는 것이 노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아들은 찬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몸이 아파서 음정도 발음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과 함께 찬양하는 것을 유튜브에 올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힘들었지만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아무도 보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영상을 올리고 나서 며칠 동안은 조회 수가 3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숫자를 보면서 안심이 되고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회 수가 올라가더니 어느새 100만이 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그 영상을 보면서 힘과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집사님의 아들 이름이 혁준인데요.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한 사람 밖에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혁준이와, 노래를 싫어하고 노래도 못하는ㄴ 그 아버지의 순종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에게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축복의 사람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어느 누구도, 본인들조차도 알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크고 놀라운 일을 권오중 집사님 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려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도합시다. 물론 기도하고 계시겠지만 더 기도합시다. 새벽에 함께 모여 기도합시다. 수요일 금요일 예배시간마다 함께 모여 기도합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응답을 받읍시다. 기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그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합시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