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회
- 강 문 석 -
울릉도의 도동항 여객선 선착장에 어둠이 내렸다. 낮이면 이곳에서 멍게와 전복 해삼을 파느라 전을 벌이던 아낙들은 이미 대부분 철수한 뒤였다. 팔다 남은 오징어 때문에 귀가하지 못하고 가스등 불빛을 지키던 중년여인은 우리 두 부부를 맥없이 맞았다. 제주에서 온 변전소장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다. 그러니 좀 점잖게 있으면 좋으련만 조금 전 식사하면서 걸친 반주 때문인지 나를 제치고 오징어 흥정에 나섰다. 살아있는 놈은 한 마리에 만 원이고 조금 전에 숨을 거두었다는 놈들은 두 마리에 만 원이라고 한다. 제주에선 창오징어로 불리는 한치만 잡히고 오징어는 없는데도 그는 제주 출신 티를 내면서 오징어장수 아줌마를 무시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이라면 그가 그럴 만도 했다. 해녀 출신인 그의 부인에다 그도 모슬포에 가까운 제주 대정 바닷가 어촌에서 대대로 살았으니 어부나 진배없었다. 나는 그를 30년 전 직장의 사원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다. 팔자에 들었다는 역마살 때문인지 바쁜 직장생활에도 틈만 나면 나는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곤 했다. 특히 그가 사는 제주를 자주 찾았고 더러는 우리 부부가 함께 그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땐 마침 그의 아들딸이 서울로 유학을 가서 비어있는 방들이 있었다. 후덕하셨던 그의 어머니도 얼굴을 알고부터는 살갑게 대해주셨다. 본인이 바쁠 땐 두 대의 승용차 중 나은 차를 우리 부부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가끔씩은 모터가 달린 자가용 배에 두 부부가 함께 올라 무인도로 바뀐 차귀도를 비롯하여 제주의 아름다운 새끼 섬들을 찾곤 했다. 비자림과 같이 일반 관광코스에 빠져있던 명소나 당시에 들어선 제주분재원이나 한라수목원 같은 곳을 직접 안내해 주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엔가는 물이 빠져나간 대정 앞바다에서 본격적으로 그들 부부의 고기 잡는 실력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부인은 해녀 출신답게 삽시간에 해삼 멍게 고동 전복을 서너 자루나 캤고 우리가 선물 받은 것만 두 박스나 됐다. 그는 주로 작살로 고기를 잡았는데 실력이 아주 뛰어났다. 하루 이틀에 익힌 솜씨가 아니었다. 그날 그는 옛 고향집에서 우리 부부와 하룻밤을 지내며 어린 시절의 고향 바닷가 얘길 활동사진처럼 펼쳐보였다.
그 무렵 제주에서 만났을 때 내가 울릉도 여행을 제의했다. 그들 부부가 부산의 우리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승용차를 이용하여 후포로 향했다. 그러고 전날 오후에 도착한 울릉도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낸 것이다. 우리가 든 숙소에서 코 닿을 듯 가까운 성인봉을 아침에 올라 약초재배단지로 변한 나리분지를 지나며 난 혼자서 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 안내한 사람이 제대로 설명을 못해준 걸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추산수력발전소까지 걸었지만 크게 감탄을 자아낼 만한 비경은 없었다. 초대한 사람의 얼굴을 봐서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제주에 비하면 그야말로 코딱지만 한 섬에다 경치마저도 밋밋해서 그들 부부는 크게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난 그런 분위기를 읽고 울릉도가 제주도보다 먼저 생긴 섬이란 것만 연거푸 읊어대고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울릉도에 일주도로가 없었기에 더욱 단조로웠을 것이다. 투어에서 돌아와 골목길을 걷다가 새마을금고 건물처럼 작은 전력회사를 만났다.
기상악화로 여행객들이 며칠씩 섬에 갇히면 서울을 비롯하여 본토에서 온 직원들에게 금고역할을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던 곳이다. 난 여인에게 살아있는 오징어 두 마리를 주문했다. 그러자 옆에 섰던 여자 둘이가 나서서 자기들은 배가 부르다면서 한 마리만 해달라고 금세 뒤집었다. 컴컴한 편인데도 아줌마의 도마 위 칼질은 민첩했다.
회를 쓸어서 바로 비닐봉지에 담지 않고 바가지의 물에 집어넣으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제주 친구는 오징어를 쓸면서 배어나왔을 육즙을 아깝게 왜 죄다 씻어버리느냐면서 여인을 크게 나무랐고 식칼을 든 여인은 ‘내 평생 이 짓을 해도 별 째진 소릴 다 들어 본다’고 맞섰다. 난 여러 차례 울릉도를 찾았지만 예사로 보아 넘겨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겨우 오징어 한 마리 팔면서 손님이 너무 자기를 무시한 때문에 여인은 발끈했고 분을 못 이긴 험악한 얼굴은 금세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오징어 회를 담은 비닐봉지를 흔들면서 우리가 찾아간 곳은 생선초장을 파는 가게였다. 숙소에 도착하여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우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봐야 했다.
여인이 고의적으로 구멍을 크게 뚫진 않았을 터인데 우리가 조심스럽게 들고 이동해야 할 것을 비닐봉지를 흔들어대면서 걷는 바람에 물이 빠지도록 만든 서너 개의 구멍으로 미끄러운 오징어 토막은 거의 다 빠져나갔던 것이다. 녹다 남은 얼음덩이만 몇 알 들어있었고 회는 채 열 점도 안 되었다. 다시 사러 갈까 하는데 그는 아줌마가 우리에게 앙갚음을 한 것이라며 파출소에 일러야 한다고 소릴 질렀다. 소주를 잔에 따랐지만 그는 회를 바로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얀 오징어 토막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지면서 작은 살점을 떼어다 술잔에 담그기 시작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유심히 관찰해보라고만 했다. 오징어 몸에 달라붙었던 기생충이었다. 길이는 채 1센티미터가 안 되었다.
몇 점 안 되는 오징어 토막에서 대여섯 마리나 잡아다 알코올로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야, 이 친구야! 그것도 고긴데 아깝게 뭘 버리고 그러냐? 안 그래도 회가 모자라는 판인데…?” “형님, 이게 위에 들어가서 위벽에 달라붙었다 하면 화장장에 가서 태우긴 전엔 절대 안 죽는다는 걸 왜 몰랐수꽈?” “한치는 많아도 오징어는 잡히지 않는 동네에서 어찌 그런 것까지 연구했나? 자, 다 시끄럽고 내일 나갈 때 그 아줌마 만나면 우리가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하자. 알겠나?” 어둠침침한 여관방 조명 아래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치며 오징어 회를 한 점씩 입에 물었다. 바닷고기 전문가와 함께 한 자린데도 그 맛은 썩 유쾌하질 못했으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담.
오징어와 한치가 나온 김에 그의 사촌격인 준치까지도 살펴보자. 예로부터 제주는 맛있는 한치가 나기로 유명하다. 살이 부드럽고 단맛이 있어 일반 오징어보다 고급으로 치고 가격도 비싸다. 제주에서 한치는 자리돔과 함께 물회 재료로 인기가 높다. 뼈째 썰기한 자리돔의 까슬까슬한 느낌이 싫다면 부드럽고 쫄깃한 한치가 무난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주로 사먹는 연체동물인 오징어는 두족류다. 두족류 중 다리가 열 개인 10완목은 오징어와 한치, 여덟 개인 8완목은 문어 낙지 주꾸미다. 다리 길이가 한 치밖에 안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한치는 다리가 10개인 것으로 분류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중 2개는 다리가 아니라 촉수다.
이 촉수를 평소에 숨기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났을 때만 쭉 뻗어 잡아채는 역할을 한다. 이 촉수는 전문용어로 촉완이라 부른다. 한치는 물결처럼 부드러운 유선형의 몸통이 우윳빛 뽀얀 색이다. 제주 한치의 표준명은 창오징어지만 대개 화살오징어란 명칭으로 통용된다. 준치는 표준명이 없다. 우리 바다에서 잡히지 않고 아르헨티나에서 동쪽으로 수백 해리 떨어진 군도 포클랜드에서 잡히기 때문이다. 제주를 여행하다보면 한치와는 다른 오징어를 말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옛말은 청어과 생선의 작은 물고기를 가리키지만 제주에서 말리는 준치는 다르다.
모양이나 맛이 한치와 오징어의 중간쯤 되는 오징어를 ‘중치’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준치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한치와 준치는 모두 오징어 종류이다. 이참에 국립수산과학원마저도 갈팡질팡하는 오징어 이름도 정리해보자. 가장 흔한 울릉도오징어는 살오징어, 한치라 불리는 창오징어, 에깅의 주대상어종인 무늬오징어, 서해와 남해 내만에서만 잡히는 갑오징어로 분류된다. 오징어를 잡는 방법도 가짜미끼인 에기를 사용하는 낚시가 에깅이고 방파제에서 전자찌에 생미끼를 달아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가 있는가 하면 가장 많은 방법은 역시 밤바다를 훤히 밝히며 오징어뿔을 오르내리는 선상낚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