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폭행으로 엄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지옥 같은 시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다.
어릴 적 우리 가정은 벼농사도 제법 지었고 복숭아 과수원도 있었다.
나는 복숭아가 익어갈 즈음 과수원 옆을 지날 때면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하나씩 따주곤 했다.
아버지는 농사도 열심이었고, 어머니를 위해 집안일도 곧잘 도와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술에 취해 있는 날이 점점 많아지더니,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취한 아버지에게 가족과 집은 항상 때리고 부숴야 하는 적이었다. 집에 들어오면 가재도구를 밖으로 집어 던지고 작은 체구의 어머니를 몹시 괴롭혔다. 어머니는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아버지가 술의 힘을 빌려 행하는 폭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폭행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은 어머니를 보고 나와 작은누나가 울며 흔들어 깨웠다. 다행히 어머니는 의식을 찾았고, 우리는 어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성치 않은 몸으로 아버지가 내던진 물건을 다시 주워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우리를 데리고 어두컴컴한 부엌에 숨어있었다.
당시 나는 대여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이런 모습을 가장 많이 목격했지만, 어머니를 지키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어린애였다.
점점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버지의 발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어대면, 내 심장도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내 간절한 바람을 비웃듯 아버지는 여지없이 어머니를 괴롭혔다.
불행한 가정에 또 다른 불행이 엄습해왔다. 과수원 복숭아 과목이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살길이 막막해졌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공장이 많은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셨기에 한 직장에 한 달 이상 다니질 못했다. 이사 온 곳에서도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종일 맥주 공장에서 공병을 날랐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의 횡포로 형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했고, 큰누나는 서울에 있는 고모에게로 떠났다. 그 후로도 계속되는 가정폭력의 피해는 고스란히 작은누나와 막내인 내 몫이었다.
나는 학교에서는 명랑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우유 급식을 못 해 가끔 친구의 우유를 얻어먹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혼날 때도 있었지만,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친한 아이들과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교실 문이 갑자기 확 열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을 향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형동아, 형이 집에 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작은 몸으로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고 교실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까지 갔다. 그런 내 등짝에 아이들의 시선이 꽂히는 걸 느끼며 자존감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아버지를 보내고 몸을 돌려 교실로 향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학교 정문을 나오는데 낯익은 모습의 어른이 길에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이면 학교 정문에 쓰러져 있을까?’
부끄러워 지나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심지어 바지에 소변을 본 상태였다. 너무 창피해서 빨리 학교 앞을 벗어나고 싶어 온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로 인해 나의 자존감은 또다시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사라져버렸다.
날 찾아오신 하나님 아버지
이전에 살던 동네에는 교회가 없었다. 복음을 들을 수도 ‘예수님’이란 존재를 알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이사 온 곳 부근에 빨간 벽돌로 지은 작은 교회가 있었다. 교회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준다는 친구의 말에 언덕 위 그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길게 난 창문에 어두운 붉은색 커튼이 달려있고, 장의자들 사이에 커다란 난로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복음을 들었고,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을 가장 소중한 이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다. 과수원이 망하고 공장지대로 이사한 게 내게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교회는 상처 많은 어린 내게 안식처이자 피난처였다. 교회 선생님들이 넉넉한 품으로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때까지 가정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함께 살면서 내 마음에는 분노만 쌓여갔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교회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는 날 사랑한다고 하셨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매일 같은 장소, 같은 간절함으로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성경 속 아버지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셨다.
갈기갈기 찢어져 상처투성이에 가치 없는 나를 대신하여 당신의 아들에게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 불행한 환경을 뚫고 그분이 찾아오셨다. 어둡기만 한 삶에 한 줄기의 빛 같은 희망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버지가 된 지금 감사한 건, 내가 아버지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내 인생이 새롭게 되었고, 육신의 아버지 자리에 하늘 아버지가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 말씀 심는 아빠, 이형동
말씀 심는 아빠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최고의 아빠
규장이형동
- 이 책에서 선정된 문장을 써보세요 ♡ (태블릿 / 종이출력 모두 가능)
말씀 심는 아빠 20선 쓰기 PDF
→ https://mall.godpeople.com/?G=1685516077-9
더 다양한 은혜문장필사 보기
→ https://mall.godpeople.com/?GO=grace_sentence
† 말씀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 나훔 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16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시편 46:1
† 기도 주님. 최악이라도 기도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영혼과 가정들이 있습니까? 개입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전하는 힘과 지혜와 사랑을 주셔서, 상처 받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 치유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지옥 같은 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같이 고통 받으시며 울고 계셨습니다. 그 아픈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이끌고자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어떤 상처이든지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토하십시오. 주님은 그 상처도 치유하시며, 상처입은 치유자로 상처가 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
첫댓글 평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