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한해(情天恨海)
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 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다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놓은 줄만 았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너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님의 침묵>(1926)-
해설
[개관정리]
◆ 성격 : 관념적, 불교적
◆ 표현 : 점층적 구조(하늘, 바다 ⇒ 정, 한 ⇒ 님의 이마, 무릎)
대구법, 역설적 표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주제 ⇒ 정한의 극복을 통해 님에게 귀의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정한의 높고 깊음
◆ 2연 : 정한을 이겨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 3연 : 정한의 아름답고 묘함
◆ 4연 : 정한이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
◆ 5연 : 무한한 님의 세계
◆ 6연 : 무한한 님의 세계
◆ 7연 : 초월적, 절대적 님에게로의 귀의 → 주제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 한국 현대시 400선 " - 양승국 - 에서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정(情)의 하늘'과 '한(恨)의 바다'이지만, 그 곳은 가을 하늘보다 높고 봄 바다보다 깊어 시적 화자는 결코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제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 시적 화자의 숨은 의도는 '정천 한해'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이나 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찬 마음은 가을 하늘보다도 높고, 가슴에 사무친 한은 봄 바다보다도 깊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오묘한 것이라 하지만, 사바 세계를 헤매는 인간들로서는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고, 연모의 정으로 깊어진 원한 또한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지혜의 높이인 '손'이 낮고, 지혜의 깊이인 '다리'가 짧은 모든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진정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가슴에 사무친 한이 사랑으로 승화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깊을수록 묘한' 것임을 아는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없어지고, 사무친 한이 사라진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는' 절망의 질곡에서 고통받겠다고 외친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제시한 것으로, 그리움의 대상이나 원한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그리움에 사무친 한이 세상 어느 것보다 깊고 절실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님'의 초월적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님'의 절대성을 인식하게 된 시적 화자는 마침내 '님에게만 안기는' 완전한 귀의의 방법을 통해 정한(情恨)을 극복하고 '님'의 초월적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대립적 개념인 '정(情)'과 '한(恨)'이 하나로 통합되어 '님'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귀결되는 과정 즉, 대립적 관계에서 합일적(合一的) 경지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유한적 정한의 세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초월적 세계로의 승화를 꿈꾸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작가소개]
한용운 (한정옥 | 한유천) 독립운동가, 시인
<업적> :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더보기 출처두산백과
<출생-사망> :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 - 1944년 6월 29일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 8. 29 ~ 1944. 6. 29)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집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1896년 선생은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