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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새해를 위한 위대한 결단
211226(주일오전)
다니엘 1장 8-9절
토머스 콜리가 자신의 저서 “부자 되는 습관들”에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조사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인 습관이 독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88% 이상이 하루에 30분 이상의 독서를 즐긴다고 조사가 되었답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도 부자가 되어서 성공한 사람처럼 그렇게 책을 읽었을까요? 결론은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2%만이 독서를 즐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거리 비행을 할 때, 일반석 승객들의 대부분 이 영화나 음악을 보고 듣고 있지만, 비즈니스 석에 승객 들은 일을 하거나 두툼한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성공 한 사람들의 가까이에는 언제나 책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분에 대하여 그분의 측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많은 복을 받고 노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쓰임 받고 계신 분이 계십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분의 특징은 항상 식사하기 전에 성경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식사를 포기하고 성경을 읽는 것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시편 1편의 만사형통의 복을 받고 계심을 봅니다.
(시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결기 있게 행하는 사람들의 것임을 깨닫습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위대한 성공의 사람들은 다 위대한 결단의 사람들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성공을 하려면 큰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크게 쓰신 사람들은 남다른 큰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하는 신비의 책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은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큰 결단력의 사람이었습니다. 10대 중반의 나이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히브리 청년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네 사람은 용모가 뛰어나고 지혜와 총명이 남달라서 느브갓네살 왕의 왕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게 되었으나 왕궁의 음식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어선 안 될 것과, 다른 신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였기 때문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그것을 먹지 않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심하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환관장은 그들이 만일 채식만 하다가 얼굴이 초췌해지고 왕이 그것을 보게 되면 자기의 목이 달아나게 될 것이라고 만류를 합니다. 다니엘은 그의 뜻을 굽히지 않고 환관장이 세운 그들의 감독자에게 강청하기를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단 1:12-13)라고 했습니다. 그 감독자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을 시험하였는데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들보다 더욱 좋아 보였습니다. 이에 그들의 채식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는 누구든지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면 그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느브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였으나, 그들을 너무도 아꼈기에, “이제라도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라.”(단3:15)는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들은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께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라는 말로 그러한 왕의 호의까지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장면을 목도한 느브갓네살왕이 말하기를 『[28]...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단 3:28-29)고 하였습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라는 격언대로 웬만하면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내자고도 했을 터인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자, 다니엘 3: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는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더욱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절개를 주도한 다니엘에게는 더욱 더 큰 은혜를 베푸사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게해 주셨습니다.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은 바벨론 제국에 3명의 총리를 세우고 전국을 다스리게 했는데, 다니엘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남으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을 때, 왕의 총애를 받는 국무총리 다니엘을 시기하여 다른 총리들과 고관들이 그를 죽여 버릴 계략을 꾸몄습니다.앞으로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하는 법령을 만들고 왕의 도장까지 받아냈습니다.
웬만하면 한 달, 즉 30일 동안만 숨어서 기도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다니엘은 목숨을 건 위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참으로 비범한 결단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건 위대한 결단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바라본 다니엘의 기도는 “간구하는 기도”(단6:11)였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지키려던 다니엘은 결국 굶주린 사자들이 있는 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모든 실상을 파악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일 흉계를 꾸민 신하들과 가족들을 다니엘이 던져졌던 그 사자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들을 던져 넣자마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 부서뜨렸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위대한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왕조가 몇 번 바뀌면서도 그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고 정치인이면서도 구약의 계시록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결심과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도 될 수 없고 믿음직한 사명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달리 성공한 사람들은 남다른 결심력,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2021년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는 우리도 이제 곧 맞이하게 되는 2022년의 첫 시작과 함께,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뜻을 정하는 결단이 필요한 줄 압니다. 망설이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도우심도, 성공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850대 1로 결판을 벌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두 사이에서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할 때에 『…How long are you going to waver between two opinions? If the Lord is God, fellow Him! But Baal is God, then fellow him!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는 책망을 하였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24장 15절에 『…Choose today whom you will serve. But as for me and my family, We will serve the Lord.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다가오는 2022년의 전망을 놓고도 이렇쿵 저렇쿵 말들이 많습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더라도, 오히려 더욱 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언약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기회로 삼으면, 이전보다도 더 큰 은혜와 더 큰 복을 받고 더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7]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가오는 2022년도를 지금까지의 우리 교회 역사상 최고로 부흥하고 최고로 복 받는 해로 선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2022년 이런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매일매일 성경말씀의 묵상과 실천을 결단해야 합니다.
(시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약 1:22-25)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전기가 아무리 많아도 전선이 연결된 곳까지만 흘러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행하는 수준만큼만 하나님의 복이 흘러오게 될 것입니다. 부흥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시편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시 19:10-11)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 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경건한 삶의 기초가 하나님 말씀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복된 삶이 되려면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행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교회중심으로 예배에 집중하는 믿음의 삶을 신앙생활을 결단해야 합니다.
(마 18:19-20)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교회)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출 20:23-24)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모든 예배의 장소)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신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기뻐하시며, 또 그러한 모임에 함께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중심의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히 10:22-25) 『[22] 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헬. 호모로기아; 고백)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한글킹)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들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재림의 그 순간까지, 교회로 모여서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모닥불이 뭉치면 함께 살고 더 세차게 타오르지만 흩어지면 함께 꺼져버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뭉쳐서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을 때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살고, 흩어지고 믿음의 고백을 놓쳐버리면 함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이웃, 우리의 지체들도 역시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22:37-40).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동시에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계명 중 한 가지라도 빠지면 계명을 잃은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교회중심으로 믿음의 고백과 함께 살아갈 때, 점점 더 거룩하게 되고, 병 고침을 받고, 파멸에서 건지심을 받게 되며, 사막에서 생수가 흘러나는 것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시84편, 눅4:10, 출29:43, 시100:1-3, 시103편 등).
윤남옥 목사님의 간증입니다(「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이렇게 치유하라」 pp.96~99).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는 말은 바로 그 시간에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이다. 매 주일예배는 기름부음을 다시 받는 시간이다. 기름부음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되면 성도들은 은사도 열매 맺는 삶도 살지 못한다. 자주 모이라고 하는 것은 그 모이는 시간이 기름부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하! 정말 주일예배는 너무 중요하군요. 그 시간에 풍성한 기름부음이 있을 때 그들이 각자 처소에 돌아가서 충만한 생활을 하게 되는군요!’
주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은사도, 열매도, 신령한 성전을 세우는 것도 기름부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순절을 기억하라. 그때 대대적인 기름부으심, 곧 성령강림이 있었고 그 이후 그들은 은사를 받았으며 기쁨의 생활과 열매 맺는 삶이 시작되었고 죽을 수도 있는 증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 기름부음이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성령이 일하기 시작하신다. AJ를 통하여도 일하고, 너를 통하여도 일하고, WL을 통하여도 일한다. 성령은 그 사람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하여 역사한다. 큰 능력이 드러나는 집회는 인도자가 어떻게 기름부으심이 있는지, 어떻게 성령의 임재를 초청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그분의 임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과 영혼이 더 크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 너는 성령의 임재에 대하여 민감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으므로 어떤 일에도 두려워하지 마라.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고 그의 기름부으심을 기다리라. 그리고 시작하면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고 듣게 될 것이다. 네가 하는 일은 오직 그의 임재를 기다리고 기름부으심이 오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은 찬양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기름부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찬양을 통하여 기름부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을 통하여, 기름부음이 있는 기도를 통하여, 기름부음이 있는 말씀을 통하여 기름부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예전에 물을 먼저 넣어야 더 많은 펌프물(마중물)이 나오는 것처럼 기름부음 있는 찬양, 기도, 말씀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름부음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그리고 나를 환영하라 하시면서 기름부음에 대한 감격적인 깨달음을 다시 한 번 더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은 성령의 임재이며 성령의 임재 없이 어떤 것도 무의미하며 생명이 없으며 단지 형식과 위선에 지나지 않는 죽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 사무엘선지자와 그의 선지생도들이 머물던 라마 나욧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과 구별된 장소에 특별하게 임재하시는 성령님의 기름부음과 권능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삼상 19:18-24)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3. 규칙적인 기도의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생활을 하려면 규칙적인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급한 일이 생길 때만 안타깝게 기도하고 예배시간에만 잠깐씩 기도하는 생활을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 위대한 성도들은 규칙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의 전국 120도를 관할하는 국무총리였으나 하루 세 번씩 기도했고, 그를 모함하는 무리들이 사자 굴에 집어넣어 죽이려는 계략을 꾸민 것을 알면서도, 규칙을 어기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원수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왕조가 몇 번 바뀌어도 계속 국무총리의 자리를 지켰고 세상 끝 날까지 되어질 하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35에 예수님도 새벽 오히려 미명에 규칙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1에 “제 구 시(오후3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구걸하는 태어나면서 못 걷는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6절) 그 태어나면서 못 걷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제자들도 3시, 6시, 9시(오전 9시, 정오 12시, 오후 3시) 등 규칙적인 기도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권세와 능력을 의심 없이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항상 전도하는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딤후 4:1-2)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막 16:15-18)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4-1) 세상을 향한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전도하는 2022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을 열면 그 사람 천국가고 우리가 입 다물면 그 사람 지옥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4-2) 교회학교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히 5:12-6:2)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요 21:15-17)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여러분들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들의 답변은, “교회학교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전도의 최전방은 교회학교입니다. 교회학교가 살면 교회가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강력하게 전진해갈 수 있고, 교회학교가 죽으면 교회가 죽고 하나님의 나라가 힘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최종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이상의 네 가지 결단으로 전무한 부흥을 누리는 2022년 되시기 바랍니다.
1. 매일매일 성경말씀의 묵상과 실천을 결단하십시오.
하루 중 언제 말씀을 묵상하시겠습니까?
2. 교회중심으로 예배에 집중하는 믿음의 삶을 결단하십시오.
바로 지금 주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주님, 2022년에는 교회중심으로 예배에 집중하는 믿음의 삶을 살겠습니다.”
3. 규칙적인 기도의 삶을 결단하십시오.
하루 중 몇 번, 어느 시간에 기도하시겠습니까?
4. 항상 전도하는 삶을 결단하십시오.
이번 주 누구에게 전도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전도하시겠습니까? 전화로? 카톡으로? 만나서? 선물로?
언제 어떻게 전도하시겠습니까?
교회학교 교사는 어떻습니까?
언제부터 시작하시렵니까?
2022년에는 과거 어느 해보다도 승리의 해, 복된 해,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해가 되시기를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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