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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새해
데살로니가전서5:23
오늘은 2024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로서 주님의 수세주일이고요
일반력으로는 새해 첫 주일 신년주일입니다.
신년주일에 참석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총회에서 정한 주제 그대로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입니다.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표어 속에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치유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치유 받아야 할 사회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고 낙심과 절망 속에서 한숨을 쉬며 갈 바를 알지 두려워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치유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 속에서 이런 표어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평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태계에서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경쟁입니다.
비슷비슷한 개체들끼리 먹이를 두고 다투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둘째, 포식입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입니다.
힘이 센 놈이 약한 놈 잡아먹고, 약한 놈은 잡아먹히는 걸 자연의 이치나 운명으로 여기며 사는 방식입니다.
셋째, 공생입니다. 서로 돕고 함께 잘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숭실대 구미정 교수가 쓴 『호모 심비우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소위 머리 좋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분리와 단절, 지배와 복종의 세계관을
유포시켜 마침내 천지 만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면,
이제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세계관은 연결과 소통,
공존과 연대의 그것이 아니겠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그런 세계를 꿈꾸며 열어 갈 사람은 필경 더불어 삶의 지혜를 아는 공생하는 인간(호모 심비우스)이어야 하리라.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 않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 군상들이
그야말로 홀연히 하늘의 은총을 입어 더불어 살 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이 지구는 얼마나 다른 세상이 될 것인가?
소유를 넘어 나눔으로, 지배를 넘어 섬김으로, 그렇게 세상의 흐름에
맞서 사는 새 사람, 공생하는 인간(호모 심비우스)야말로 성서 기자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에 담고자 했던 본뜻이 아니었을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 속에 진정으로 담겨 있어야 할 것은 공생하는 인간입니다.
악어와 물새가 공생하듯이 아프리카의 아카시아와 개미가 공생하듯이 공생할 때 인간은 평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공생하는 인간은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나만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나’라는 우상을 버리고 서로 함께 공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으라고 만들어 놓은 남녀가 어찌 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노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부자와 가난한 자가,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생해야 합니다.
모든 피조 세계와 자연 만물이 공생해야 합니다.
공생할 때 자연 만물은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0: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을 주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16). 했습니다.
평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평강에는 적어도 네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누리는 근원적인 평강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생기는 내적인 평강입니다.
셋째는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평강입니다.
넷째는 환경을 초월하는 전천후 평강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이 평강입니다.
우리는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평강을 누릴 때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강을 만들어서 누리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4:4~7은 그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 평강을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은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내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교회 안에는 영적 뇌졸중 환자가 참으로 많습니다.
뇌졸증에 관한 간단한 진단 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지럽다고 하며 순간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면 뇌졸중의 증상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세 시간 안에 처치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것이 뇌졸중입니다.
혹 주변에 그런 증상을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다음의 세 가지를 물어보라고 합니다.
“웃어 보세요.”, “말해 보세요.”, 그리고 “두 팔을 올려 보세요.”로 긴급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안 되면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하여 속히 처치하면 회복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하면 이후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세 가지 행동을 영적으로 말하면 ‘웃으며 노래하며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웃으며 노래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그 사람은 기쁨의 사람입니다.
기쁨의 사람은 생명이 충만하고 평강이 충만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계획해놓으신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자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이미 최후 승리가 작정되어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는 마귀와 죄와 육신과 엎치락뒤치락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그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승리하고 때로는 패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패배하는 일에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고 앞으로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승리자가 되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승리자자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으시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평강을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관용’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대인관계 중 평강을 만드는 비결은 관용입니다.
관용의 원천은 재림신앙입니다.
주님이 곧 오시는데 무슨 분쟁, 미움, 시기, 질투가 필요하겠습니까?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이 기회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 찾아왔습니다.
한번은 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 왕이 볼일을 보러 굴에 들어온 것입니다.
또 한 번은 부하한명을 데리고 사울왕의 진지를 들어갔을 때 사울 왕과 부하들이 너무 피곤했는지 하나같이 골아떨어진 장면을 목격한 때입니다.
둘 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부하들은 두 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처치해버리자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 번다 사울 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치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처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내가 곧 왕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왕이 된다는 확신이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관용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곧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에 주님의 영광 속에 참여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영광 속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중국의 고사가운데 ‘해납백천’(海納百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백 개의 개천 물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이지요.
중국이 최초로 통일된 것은 BC 221년 진나라 시황 때였습니다.
척박한 서쪽에 위치해 가장 뒤떨어졌던 나라가 어떻게 수많은 나라를 제압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춘추전국시대에 강자로 등장한 진나라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인재를 끌어 모으고
척박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 이웃 한나라에서 정국이라는 토목 기술자를
초청하여 국토의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수많은 수로 공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국운이 걸린 이 중대한 역사를 진나라 출신 신하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국이 진의 국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밀령을 받고 온 첩자로 밝혀지자,
진나라 출신의 신하들은 진시황에게 정국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조정에서
일을 하는 외국 출신의 신하들 또한 적국의 첩자일 수 있다고 간언했습니다.
이에 진시황은 급기야 “다른 나라에서 온 모든 객을 쫓아내라.”는 이른바 축객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통일된 이후 진나라의 재상에 오른 초나라 출신의 젊은 신하인 이사가
진시황에게 축객령을 거두라는 ‘간축객서’를 올렸습니다.
그는 대담하게도 “진나라 왕궁을 장식하는 곤산의 옥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후궁에 있는 숱한 미녀들도 모두 원래부터 진나라의 것이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는 또한 “태산이 큰 것은 한 줌의 흙도 뿌리치지 않았음이요,
강과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라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간언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해납백천’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예수님이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자랍니다. 우리는 더럽습니다. 우리의 인격도 대단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받아 주라. 서로 받아 주라.”
우리가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상처투성이인 백성들을 받아 둘 때 가능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더 이상 상처의 소굴이 되어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오히려 평강의 사람이 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려면
주님처럼 받아 주고 관용을 베풀면 될 줄 믿습니다.
3. 평강을 만드는 세 번째 방법은 ‘기도’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람이 염려가 많아지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대인관계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유일의 방법은 기도입니다. 감사의 기도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초대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가로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가졌습니다.
그는 “죄 중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않는 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만족하지 못합니다.
행복하지 못합니다. 즐겁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은 이미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고 원망만 있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미래가 없고 과거만 있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웃음이 없고 울음만 있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소망이 없고 절망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고 불평만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는 평강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이제 천국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 목사님이 감사의 제목 10가지를 판넬로 만들어서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감사합니다. 등
그런데 그 후로, 어머니가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셨습니다.
‘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어머니가 더 살아계셔서, 마지막까지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어머니의 사명입니다.’
그 얘기를 보시고, 회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평강이 넘치고 치유의 은혜가 넘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내 안에 기쁨, 이웃과의 관용,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평강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여 치유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치유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