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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
[K 생각] ㅡ 공포정치
어제 30일, 한동훈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MBC 기자와 MBC 보도본부 압수수색 국회사무처 압수수색, 윤석열의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 재가.
오늘 31일 아침 6시 반, 서울시가 서울시 950만 명에 대피령 문자, 잠시후 오발령 문자 발송. 경찰이 민노총 위원장에게 수갑 채우고 무릎으로 찍어누르고, 노조원 곤봉으로 타격해 심한 상해 입히고.
어제 오늘 보니, 윤석열이 하려는 건, 공포정치.
공포정치란 정권 유지를 위해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로, 프랑스에서 1793년 10월에 시작해 1794년 7월까지,
독재자는 처형되고 '9개월'만에 끝남.
2. 2022
[애니멀 뉴스] 누의 세계 : 우리가 보인다!
계속 달려야 하잔아
그래야 살잔아
멈추면 죽는 거잔아~
<넷플릭스> 제공
Our planet_One planet (우리 지구_하나뿐인 지구)
3. 2022
오늘의 생각..!!
1. "세계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보호주의 시대로 회귀했다"는 주장들이 쏟아집니다. 수출 강국인 우리에게 뼈아픈 이야기지요. 그런데 거기에다 굥은 '경제안보'란 선물을 바이든에게 안겨주었죠. 원래, 안보에는 국경이 있어도, 경제에는 국경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난 5년 간 애쓴 것인데, 굥이 입 한 번 잘못 놀리는 바람에 자유롭던 경제에 안보란 족쇄를 스스로 채운 꼴이 되었습니다.
2. 전체 인생에서 거짓 인생으로 산 시간들을 빼면 자기 인생의 총합이 됩니다. 평생을 거짓과 기만과 사기와 조작으로 살았다면 인생 자체가 없던 셈이지요. 기억할 필요조차 없고 가치도 없는~
3. 뇌가 녹아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생각이 불가능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30년 전의 것들을 습관적으로 뱉아내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빙하 타고 내려온 도리둘리 아닐까요?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지요.
오늘의 생각..!! (2)
굥이 미국 순방을 가면, 미국에선 기자들이 선물 하나 준비를 할 거야. 바이든은 알고도 모른척 할테고.
프롬프터 앞에서 20분간 연설하라고 할 거야. 그리곤 일부러 프롬프터를 2분 간 작동 안 되게 해놓고 원숭이 구경하듯 하겠지. 그 뒤는 끔찍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4. 2022
[탄핵지수]
탄핵으로 가는 길..!!
박근혜가 탄핵되어 대통령직이 파면됐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탄핵지수'란 걸 만들어보고 싶다.
탄핵 맥시멈 지수를 100으로 놓고 볼 때, 박근혜는 얼추 90이 넘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면서, 윤석열은 5월10일 취임 이후 3주가 지난 현재까지 쌓인 탄핵지수는 어느 정도가 될까?
개인적이고 주관적 평가를 한 번 내려보겠다.
1.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졸속 추진과, 이로 인한 안보 위험 상황 초래 및 국방부와 외교부 등 여러 기관들의 안정성 훼손과 행정 마비를 유발한 것.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초래한 것. 게다가 101 특별 경비단에서 분실한 실탄 6발을 2주가 지나도록 찾지 못한 점. 그리고 출퇴근 시 초래하는 용산 주민, 서울 시민들의 불편에 아무런 예비 및 후속 조치들이 없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탄핵 지수는 50 정도가 되리라는 것.
2. 12일 북한에서 3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상황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지 않아서 국가안보 의식의 부재를 드러냈고, 안보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더우기 그 다음날엔 오후 2시부터 준비에 들어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1차 술자리, 11시까지 2차 술자리를 가지면서, 만취 상태의 모습을 사진에 노출시켜, 대통령 유고 상황에 준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 게다가 1차 술자리는 6명과 동석했는데, 무려 9백만 원의 결제가 이루어졌다는 점으로 볼 때, 탄핵지수는 20 정도가 되리라는 것.
3. 28일 울진에서 화재가 나서 3단계 위험 상황에 이르고 축구장 200개 정도가 불탔는데, 그런 재난 상황에서, 부인이 개를 끌고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해서, 잔디밭에서 함께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고, 그때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것. 재난 상황에서의 대통령의 직무 유기 및 부인의 공사분별력 결여와 대통령 업무 방해 등으로 볼 때, 탄핵지수는 10 정도가 되리라는 것.
4. 인사에서 노골적인 편파성을 지적받고 있는데, 이는 국민 통합과 지역과 여성의 안배 등에 관한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냄과 동시에, 검사 출신들만을 대거 영입해 편파적 인사권 남용을 저지른 점. 게다가 검사 시절 직속 후배인 한동훈을 파격적으로 법무부 장관에 앉히고 초월적, 초법적 권한을 집중시키면서 한 법무장관에게 인사 검증 권한 조직까지 맡게 함으로써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을 파훼시키려 했다는 점으로 볼 때, 탄핵지수는 10 정도가 되리라는 것.
5.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탄핵지수는 벌써 90에 육박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취임한 지 이제 겨우 3주 지나고 있다는 것.
6. 사족 하나 달자면, 이런 여러 심각한 상황들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과거에도 있었던 사건과 유사한, 돌발적이고 불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
5. 2021
[관계와 이해]
이해의 조건은... 관계!
사실 관계, 인과 관계, 상관 관계, 소유관계, 전후 관계, 연인 관계, 성 관계, 부부 관계, 가족 관계, 친구 관계, 대인 관계, 이해충돌의 관계, 이해타산 관계, 거래 관계, 약탈적 관계,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동맹 관계, 한일 관계, 은원 관계, 노사 관계, 협력 관계, 갑을 관계, 종속 관계, 주종 관계, 모순 관계, 적대 관계, 힘의 역학 관계, 배타적 관계, 사제 관계, 내포와 외연의 관계, 국제 관계, 외교 관계, 군사적 관계, 정치사회경제적 관계, 긴장 관계, 호응 관계, 상호보완 관계, 유착 관계, 일 관계, 인간 관계 등, 모종(某種)의 관계까지...
이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들, 즉 '관계'란 것이 없다면?
'이해'는 "없다" 혹은 "소용없다"가 됩니다.
설명할 수만 있다면 이해가 된 것입니다.
설명은 결국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즉, 이유를 밝히는 것.
이해(理解)가 되어, 안으로 들이는 것을 납득(納得)이라 합니다.
(이유를)납득할 수 있다면 용서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지레짐작해서 이해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충분히 납득은 못 하지만 믿음으로 설명을 대신하는 경우입니다.
섵부른 저의 판단이지만, 믿음은 귀납의 결과요, 설명은 연역적 추론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관계'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나는 그 일과 무관하다."라는 주장은, 상관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지,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란,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삶과 깊숙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론 자물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열쇠(key)가 되기도 합니다.
6. 2021
[오늘의 생각 : 조국과 장자]
오늘의 생각..!!
방금 어떤 페친의 포스팅에, 조국 장관을 가리켜, 살면서 물 한 방울도 안 묻힌 샌님으로 알고 있다는 표현을 보면서 문득 장자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또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ㅎㅎ
주문했던 <조국의 시간>이 오늘 오후쯤 받아볼 것 같습니다. 아직 보진 못 했지만, 미리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2019년 이전까지의 조국은, 그냥 고고한 학자로서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마치 장자를 닮은 것 같습니다.
2019년은 조국 장관에겐 악몽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예수의 고난당하던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제 눈엔 그렇게 보였다는 겁니다.
그 후 2019년부터 2021년 초까지, 마음 안으로 고행을 겪는 부처의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이렇게 볼 때, "조국의 시간"은...
1기, 장자의 시간
2기, 예수의 시간
3기, 부처의 시간
으로 나뉘어 생각케 됩니다.
아마도 4기는, '대통령의 시간'이 될 지, 아니면 처음 '장자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앞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조건을 언급하면서, '목적성'과 '시대성'과 '확장성' 셋을 들었더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시대정신을 말하는 분들은 많은데, 정작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잘들 모르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조금 풀어서 말해 보자면, 조국 장관의 경우처럼, 거대한 파도가 갑자기 자신한테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도에 대한 준비와 각오가 없는 사람은 결국 파도에 먹히고 맙니다.
성난 파도가 비켜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려면 그런 성난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해서 헤쳐나가야만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우린 '노무현의 신화'에서 보았었고, 조국의 상황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우리를 저로 바꿔서 읽으시면 됩니다.
여기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삼가겠습니다. 단지 '노무현의 운명의 시간'과 '문재인의 운명의 시간'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저는 '불행'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예수의) '부활'의 시각으로 본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넘어갑니다.
어쨌거나,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란 건, 4차산업혁명을 눈으로 뒤쫓거나, AI 디지털 세상의 도래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탐색의 눈도 아닙니다. 결국 거세게 부딪혀 오는 새 시대에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각오와 정신이란 것입니다. 피하지 않고, 비켜가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물론 계산상으로는 전혀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부딪혀가는 불굴의 의지가 곧 제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입니다.
2019년과 2020년에 썼던 장자에 관련한 두 개의 글을 첨부합니다.
* [지식인 ㅡ 조국을 위한 변명 2]
2019. 10. 6. 3:00 / kjm
고등학교 미분 적분 방정식 문제를 대학교수보다 고등학생이 더 잘 푼다고 해서 그 고등학생을 지식인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대학 수능 시험에 만점을 맞은 입시생을 가리켜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지식인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넓음,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람들과 소통케 하는 공감 능력, 인생에 대한 철학과 관조, 보다 나은 것으로 향하는 신념과 결기, 미래에 대한 예견 능력...
이와 같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하다 하겠습니다.
머리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손목과 발목에 징이 박혀 몸은 피를 흘리지만 영혼의 순백함과 뜻의 숭고함을 보여준 예수, 예수처럼 온몸으로 외적 학대와 고통을 직접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내면으로부터 고행의 길을 스스로 걸었던 부처,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설명 가능했던 장자, 이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었더랬지요.
우리에게 있어 독립 운동을 했던 의사, 열사의 분들, 그리고 만학으로 만개했던 함석헌옹, 이외에도 수많은 지식인들 혹은 선지자들, 그리고 신의 영역에 들었던 분들.
반면에, 곡학아세를 일삼으며, 현실과 수시로 타협하고, 사람들에게 거리낌없이 출세지향을 가르치며 몸소 행하기도 하며 세상에 전파했던 사람들도 있어서 비교가 되곤 합니다.
한편으론, "나는 똥이니 더러운 건 당연하므로 나를 비교하고 비난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뭇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다니면서 철면피, 적반하장 소리를 들으며 사는 사람들도 의외로 참 많습니다. 이렇게 가짜 지식인들이 하도 많아서 이젠 '참 지식인'을 찾는 노력을 요구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식인은 지식인으로 자처하지 않고 늘 겸손합니다. 지식인은 남의 눈에 들보를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눈에 티끌을 걱정합니다. 조국에게서 나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국이 현재 가시 면류관과도 같은 감투를 쓰고 있지만, 조국은 그 고통과 세상의 부당한 조롱을 견뎌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제 눈엔 금태섭같은 이는 유다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조국에게 묻습니다. 왜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 그 자리에 연연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굳은 결기로서 마음에 담은 사명감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헌금을 들고 교회 앞에 나가 예수께 기도드립니다. 자신이 가짜 신도가 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감히 조국을 예수에 견주어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상황들의 유사성이 찾아질 뿐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저께 저보고 좌파 그것도 꼴통 좌파라고 하더이다. 그리고 문빠라고도 하더군요.
남을 이렇다 저렇다 결정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 입장에 대한 고려나 자기반성은 전혀 없더랬습니다.
여기서 고백컨대,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며, 더우기 문빠도 아닙니다. 저는 일종의 화가이며, 그림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제 눈에 비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 보는 것입니다. 왜곡해서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는 일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여기서 나경원의 욕을 많이 했더랬는데, 나경원이가 이쁜짓, 바른짓, 옳은짓을 하면 저는 기꺼이 나경원을 칭찬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또한 지금의 조국이 나중에라도 변질되면 조국에 대한 욕설에도 거리낌이 없을 겁니다. 또한 금태섭이 민주당이라고 해서 욕을 마다하겠습니까?
금태섭의 대학 때 지도교수가 조국이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승을 향해 청문회에서 대하는 태도와 말을 보면서, 저는 금태섭에게서 예수의 제자 '유다'를 보았던 것이기에 욕을 하는 것입니다. 조국이 스승이기에 조국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면 현재보다 더 정확한 상황 분석과 전체적 이해가 동반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금태섭은 시중의 조아무개 대하듯 했던 거지요.
아무튼 조국이든 윤석열이든 제대로 걸리기만 해 보십시오. 뼈도 못추릴 정도로 타작을 할 겁니다.
** [철학의 관점에서 본 코로나19]
2020. 3. 30. 11:54 / kjm
실제의 세계는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을 거쳐 몇 겹으로 걸쳐져 있는 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을 열어 어느 한 장을 찢어 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치 사라지듯이 말이다.
세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거나 망원경으로 내다 보거나 그 세상은 홑겹의 세상 한 편일 것이다.
거기에 관념의 눈으로 들여다 본 관념의 세상이 또한 존재하니,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편이 생겨난다.
성자 라즈니쉬는 장자를 가리켜, 보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장자라 했건만, 그것은 필시 관념의 눈으로 실제 세계를 이해했음이렸다.
훅 하고 불면 사라져 버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세계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변화조차도 덧없고 부질없는 행위들을 양산해내는 가운데, 코로나19의 등장은 바로 혼돈의 세계가 깨어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심연 속에서 잠자고 있던 혼돈의 세계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혼돈은 창조와 동시에 소멸을 뜻하기에, 코로나19를 철학적 혹은 관념적으로 규정할 때, 소멸과 창조의 시간이 도래했음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과학의 시간이 흐르면서 코로나19를 관찰하며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가 발견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관념의 세계에서는 인체의 오장육부의 움직임과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비교, 대조하면서 코로나19를 의미론적으로 관조해 내는 것이다.
코로나19의 등장은, 지탱해 온 기존 질서의 붕괴를 가져와 물귀신처럼 혼돈의 세계로 끌어들여 소멸을 맛보게 하고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엿보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을 겪기 마련이고 기존의 질서 체계의 존속을 믿지 않으려 하고 이탈 행위를 시도하려 한다. 실로 모든 관계들의 무너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는 심해지고 종교적 신앙들이 종말론적 왜곡으로 흐른다.
관념의 세계를 열어 실제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념 세계에 갖혀서 혼돈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각자도생식 이탈의 급증은 연대를 무너뜨리고 패닉으로 나타나 미래의 어두움에 공포심에 먹혀 버린다.
코로나19는 이제 우리에게 혼돈의 세계를 맛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세상을 세워야 한다.
이제 창조의 시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왜 세워야 하는 지 여전히 모른다면 세상은 찢겨진 종이 한 장처럼 그저 사라져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장자를 닮아가는 나의 관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렇게 그려지고 쓰여진다.
7. 2020
[트럼프 제국 건설의 실패 이유]
오늘날에 있어, 정보 없이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사회다.
트럼프 대통령 책상 위에는 여러 통로를 통해서 매일 매일 수없이 많은 고급 정보들이 쌓이게 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수없이 헛발질을 해댔고,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공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트럼프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장막이 두껍게 깔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수많은 정보 보고서들이 트럼프의 책상 위에서 치워지고 몇몇 보고서만이 올려지는데, 나는 그것이 폼페이오와 CIA 보고서가 주를 이룬다고 본다.
그런데 CIA가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가? 아니면 실업 문제를 해결해 주던가?
결국은 미중 간의 갈등만 심화시키면서 침체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가면서 미국을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폼페이오와 그의 CIA가 트럼프를, 나아가서 미국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수집에 탁월하고 정보 조작에 능숙한 CIA는 지속적으로 갈등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파워를 유지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는 170만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어서서, 세계 1위에 올려 세웠다.
그러면서 폼페이오의 사주를 받는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계속되는 월권 행사로 외교의 '외'자도 모르면서 자리를 유지시켜 왔다는 사실은 미국의 침몰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보게 되면 칼 포퍼가 연상된다.
칼 포퍼가 그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추상적인 善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惡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정치적 수단을 사용하여 행복을 이룩하려고 하지 마라. 구체적인 비참함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가난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충실히 따른다고 보여지는 이유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는 禽獸(금수)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 길은 '열린 사회'의 길이다."(같은책)라는 포퍼의 생각은 간과한 듯하다.
포퍼는 플라톤식 닫힌 세계의 연역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오류가능성'이나 '반증가능성'을 통해서 카르납의 귀납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새로이 연역주의를 세운다. 그가 말하는 세계는 '열린 세계'(열린 사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고, 문을 닫아 거는 데 골몰했던 터이기에, 트럼프가 CIA의 광대하면서도 편협한 정보들에 의존해서 제국을 건설하려던 것이 실패로 끝났다고 나는 본다.
나아가 이 실패는 트럼프의 실패이자 미국의 실패인 것이다. 그 원인은 폼페이오와 그의 CIA에 있음이 분명하다.
8. 2020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서]
하늘은 하나 둘 세지 않지만, 땅은 그 크기를 센다. 그리고 땅 위의 사람들도 함께 센다. 또한 동시에 사람들을 흑, 백, 황의 피부색으로 구별한다.
황은 자신의 피부색에 대한 자각이 없다. 반면에 백은 자신의 피부색에 우월감을 표시하며, 이는 곧 흑의 피부색에 대하여 열등함으로 규정한다.
피부가 흑이라는 이유로 죽을 수 있을까?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피부를 백으로 바꾸는 시술을 해야만 했던 게 그 이유일까? 실제로 엊그제는 백인 경찰관이 흑인 시민을, 무릎으로 목을 짓눌러 죽였다.
언젠가는 피부가 백이라는 이유로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리하여 얼굴에 흙이나 물감을 바르고 다니는 백인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황에게 있어서 흑과 백 모두는 극단으로 간주된다. 적당한 백은 수려한 아름다움으로, 적당한 흑은 건강미로 인지되지만, 극단의 흑과 백은 낯설고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이 황의 기존의 문화적 관습에 더해져서, 백에게는 숭배로, 흑에게는 공포로 인지되는 부조리하고 잘못된 인식을 낳게 되었다.
오늘도 미백 시술을 받으러 피부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리는 황색 사람들은 많고도 많다.
인간의 오감 중에 피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각 뿐이다. 여기에 청각으로 느끼는 언어적 차이가 보태지고, 냄새로 구별하는 후각이 더해지면, 이내 인종차별의 싹이 트면서 차별의 벽이 세워진다. 그리고 거기에 편의적으로 부적절한 인식 작용이 씌워지면 근거 없는 인종차별의 언어와 행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표출되면 수많은 자기 합리화들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에서 행해졌던 '인종청소'가, '인종차별'의 얼굴을 한 채, 세계화의 장소와 공간으로 옮겨 오고 있는 중이다. 그 시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될지 싶다.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or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드니,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 존 던, '묵상 meditations 17'의 기도문 중 일부
9. 2019
[임은정과 황교안]
임은정이 좋아지는 이유는 논리와 상식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논리라는 것도 결국은 그 안으로 들어 와 논리 규칙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은 무용이다.
상식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묵시적 동의로서의 합의 안에 들어와야지만 유용한 기능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논리 규칙들에 승복하기로 하고 상식 안에서 판단하기로 한 이상은 임은정은 그 안에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황교안 같은 이는 어떤가?
임은정과 황교안을 한 번 비교해 보시라.
같은 검찰 출신이다. 그럼에도 확연히 다르다.
임은정과 달리 황교안은 논리와 사실과 상식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그 어디에도 승복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A라는 사실과 B라는 사실 간의 인과관계, 또는 C라는 명제와 D라는 명제 사이의 논리적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승인조차 없이 무력화시키면 결국 시정잡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책임질 일도 역시 없다. 이것이 황교안의 그간에 처세술이었고 따라서 황교활 소리를 듣는 거다.
나의 경험상, 어떤 K는 말끝마다 "맞 지? 내 말이 맞지?"하고 확인하려 드는 습관이 있었다. 좀 투박하긴 했지만 자기 말의 논지를 펴 가기 위해 수순을 밟고 있다고 나는 여겼다. 또 한편으로는 감정적 즉흥적 판단을 지양하려는 자세가 좋게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맞다."고 맞장구를 쳐 줬다. 맞는 건 맞는 거니까. 어쨌든 그는 이어지는 다음 말을 반드시 토해냈고 어렴풋이나마 자못 논리성을 갖추어 나갔던 K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황교안은 내가 볼 때 이 K만도 못하다. 사실 인정도 없고 논리적 승인도 없고 상식도 매우 편의적으로 적용한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가며 위험을 전혀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황교안에게 들을 만한 내용의 말은 거의 없다. 황교안은 결단코 상식과 사실과 논리 안으로 들어 올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황교안과 비교해서 임은정을 바라보면 임은정은 분명하게 논리 안에 상식 안에 사실 속에 들어 와 있다. 그래서 임은정은 때때로 비판 받을 수 있게 된다. 비난이 아닌 비판.
그래서 이것이 우리 사회가 임은정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10. 2019
[인사가 만사!]
어떤 조직이든 '발전' 아니면 '정체'의 두 가지로 집약된다.
삼성이 잘하는 게 하나 있다.
조직의 활동이 정체됐다 싶으면 과감하게 혹은 무자비하게 인사 이동을 즉각적으로 시행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개개인에 따라서 적응 기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인사 이동 대상자가 되면 감히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서너번 자리가 바뀌면 불안해서라도 딴 맘을 먹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조직에 대한 반항은 커녕 순응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조직 길들이기의 ABC'인데도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말 잘 듣는 순한 그러나 부패한 양들'로 천세만세를 누리면서 정부의 발전보다는 정체에 커다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공무원들 스스로가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부 조직들은 발전한다 싶으면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인사 이동을 자제해야겠으나, 반면에 정체된다 싶으면 과감하게 인사 이동과 자리 이동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의 수장이 갖는 권능이자 의무인 것이다.
모처럼 삼성 칭찬 좀 해 보게 되는데, 한 번 느껴보시라. 삼성이라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충성도를 말이다. 이는 결국 무자비한 인사권의 발동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이다.
근래 외교부에서 자주 터져 나오는 터무니없는 사건들도 결국 조직의 정체에서 비롯되는 바 과감한 인사 개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렵게 뚫은 유리벽 천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려면 대외적으로 힘들고 지난한 업무에의 과로가 있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한다.
그리고 하더라도 무자비하게 과감하게 하시라.
K / 2026.5.31

첫댓글 안녕하세요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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