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6]경희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
서울에 사는 여성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경희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을 몇 줄 읽다가 ‘이거야말로 대단한 명문이다. 요즘말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면서 평했다는 ‘시적 산문’에 다름 아니다고 생각하면서 읽기를 중단하고 녹음을 했습니다. 6분 23초 동안 낭송하면서 나도 모르게 진짜로 흥분했습니다. ‘대학에 이런 지식인, 이런 지성인이 괴로워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구나’ 생각하며 한없이 마음이 짜안했습니다. 더불어 상황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현 대통령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 글을 카톡으로 전해준 지인은 저의 육성을 듣더니 “마치 판소리 랩같다”고 하더군요. 클릭하여 제 목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지만, 기술적으로 링크를 시킬 줄 모르기에 그 전문을 전재하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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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226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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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민주화투쟁 시기의 대학생들 대자보 격문檄文같지만, 아니다. 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지식인이자 지성인인 한 교수가 전체 교수를 대표하여 쓴 절절切切하면서도 한없이 쪽팔려하는 자기 고백서에 다름아닌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얼마나 쪽팔렸으면 이런 글을 쓰고 전체의 이름으로 선언했을까. 그 진정성이 구절구절마다 우러나고 가슴에 와닿지 아니하던가?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대 잘못이 크다. 어쩌다 현 대통령은 상아탑의 교수들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갔는지 한심지경. 자기들 책임도 크다는 이들 교수의 잘못은 과연 무엇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만한 명문을 쓰기까지의 고통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이럴 수 밖에 없는 교수들의 심정과 현실 진단을 한 구절이라도 인정하고 공감하고 박수를 칠 수 없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대는 마음이 삐뚤어지거나 나쁘고 잘못된 사람이라고 확실히 말하겠다.
경희대라는 사립대 교수들의 묵시적이나 적극적인 동의로 발표되었을 시국선언문을 보고 읽으면서, 나는 우리 모교가 갑자기 창피스러웠다. 그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는지 나는 모른다. 허나, 유학의 본산으로 건학 600년이 넘는 한 사립대학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이런 참담한 명문으로 먼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면, 얼마나 뿌듯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선수先手’를 뺏긴 것같다. 속상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쩐지 절묘한 시기를 놓친 듯해 아쉽고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이 시국선언문으로 경희대학교의 가치는 여러 면에서 엄청 솟아 올랐을 것이 틀림없다. ‘살아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은가. 학부모를 비롯해 학생들이 경희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100% 달라졌을 것이 틀림없다. 교수가 죽지 않으면 학생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목이었다.
이 글이 집단창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한 분이 줄줄줄 분노를 참아가며 쓴 장문의 투서投書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작성자의 이름이 아니고, 그의 나이가 궁금하다는 말이다. 대체 몇 살이나 된 친구가 이런 기막힌 글을 썼을까? 현하지변懸河之辨, 천의무봉天衣無縫意이란 말이 절로 나오지 않던가. ‘자자字字이 관점觀點이요, 구구句句이 비점批點’이라는 말도 있듯, 어느 한 구석인들 틀린 말이 있던가. 현 시국을 진단하는 그들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역시 교수’다. 대한민국 각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현상)을 보고 나는 속으로 ‘너 윤석열, 진작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끌어내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았던가. 조금이라도 생각(지각)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이렇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질주를 하는 것일까? 얼른 이 부도덕한 사태가 끝나기를 그들도 원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은 절대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동반자살,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서글프다. 망명이 아니고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넘치고도 넘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어찌 일일이 사례로 들을 수 있나? 눈이 아프고 귀가 힘들었다. 입은 왜 꿀먹은 벙어리인지 짐작하시라. 공정과 상식의 잣대를 뒤흔들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왜곡된 가치관이 심어줬을 듯한데, 그 무지막지한 죄악의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 것인가. 나는 2년 반이 넘도록 그 점을 염려해 왔다.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미망과 혼돈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을. 경희대 교수들아, 고맙다. 당신들이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무언가 떳떳하게 가르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믿자.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 부탁한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