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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을 녹여낸듯한 방울이 혀에 닿는 순간 비단이 되어 혀 전체를 감는다. 나른한오후 알몸으로 벨벳을 두른듯한 이 부드러움 ㅡ 향끗한 꽃향기인가 싶더니 달콤한 오랜지인 양, 복숭아인 양 발랄하면서도 은은한 과일향이 솟 아난다. 녹아들듯 혀속을 파고드는 방울은 어느새 초코렛이 섞인듯한 아몬드 쿠키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18년산을 머금었을때 "앗! 이건 초코릿"이라고 했다면 21년산은 어느 하나만을 모나게 하지않는 포용력과 복합미로 자신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 숨을 내 쉬었을때 코를 찡긋하게 만들고 홀연하게 사 라지면 "내가 와인을 마셨던가?" 하는 부드러움을 준다. 증류주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그 여운은 차라리 예술이리라...」
1909년 시바스리갈 21산 로얄살루트 시음회에 참석한 세계각지에서 뽑힌 450명의 사람들 입에서는 이런 경탄의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1801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2세기전부터 스카치위스키 시바스리갈의 맛을 계승해온 장인 (匠人) 콜린스콧이 스코트랜드 전통악기 연주자들을 이끌고 무대로 올라 오더니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꿈에서 황급빛 병을 꺼내들어 보였다. '시바스리갈(Chivas Regal)21년산 ..... 12년,18년산이 이미 고급 위스키 시장을 장악한 터에 21년산이라는 '거인'이 등장한 것이다. 1801년 부터 위스키를 만들어온 '시바스리갈 사람들'은 미국 상류사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자 혼신을 다했다. 그렇게 하기를 100년,마침내 시바스리갈21년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위스키는 스코트랜드의 경계선을 넘어 처음올 뉴욕에 도착한 스카치 위스키가 되었다. 시바스리갈21년의 출현은 충격이였다. 금새 뉴욕 상류층은 이 술을 즐기는 것을 고급문화의 상징으로 삼게 됐다. 시바스리갈은 다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술은 '박정희 술'로 알려질 정도로 고급술의 대명사였다.
술은 크게 양조주(釀造酒)와 증류주(蒸溜酒)로 나눈다. 청주.포도주.맥주등이 전자이고 위스키,브랜디.럼.진.보드카등이 후자에 속한다. 증류주중에 가장 알려진 브랜디는 과일을 양조해 증류된 술을 말하며 밀,보리등 곡물을 발효시켜 생산하는 알콜을 위스키라 한다. 시바스리갈,로얄살루트.발렌타인,썸싱스페셜,패스포트,클랜캠벨,조니워커.헌드레드파이퍼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시바스리갈은 12년산과 18년산이 주류를 이루었다. 전에는 양주하면 조니워커가 주종을 이루었고 나 자신도 이술을 여러번 마셔왔었지만 궁정동사건이 일어난후 돌연 시바스리갈이 세간에 화두로 떠올랐고 그해 겨울 친구들과 몇이서 가보시끼로 양주코너에서 사온 그 술은 단박에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시바스리갈21년산은, 있다는 것은 말로만 들었을뿐 근년까지도 그 존재를 직접 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들의 일본 여자친구가 인사을 오면서 처음으로 이 술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아버지 21년산 맛보셨어요?" 아들 녀석은 빙긍빙글 웃으며 종이박스에 곱게 포장한 술병을 내밀었다. "글쎄다 말은 들었지만...." 포장을 뜯으니 녹색주머니에 고이 담겨진 역시 진한 녹색도자기의 술병이 아름다운 자태 를 내밀었다. 콜크로 된 마개를 따니 순간 향긋한 주취(酒臭)가 방안 가득히 풍겨온다. 진한 장미향이였다. 황금색 노란 액체가 돌돌돌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술잔 그득히 따라졌다. 가만히 들어 코끝에 대어보니 아찔한 향기속에 잘익은 농취가 머릿속을 띵하게 울려온다. 입술에 스치는 부드러운 포만감은 순간적으로 심호흡을 절로 몰고 온다. 아주 조금 입안에 넘겼다. 싸아한 양주 특유의 맛과 함께 달콤한 복숭이향기가 목젖을 감싼다. "어떠세요?" 한모금 먹음고 눈을 감고 음미하는 나를 호기심 반짝이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마누라가 조심 스레 묻는 말이다.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을까? 시바스리갈21년산의 황홀한 맛에 몽롱한 내게선 한참후에야 이 세마디가 튀어나왔단다. "희얀해..."
이 시바스리갈이 100년만에 시바스리갈25년산이 생산되어 시음회가 얼마전 뉴욕에서 열렀 다 한다. 21년산의 맛이 이러할진대 25년산은 또 어떤 맛일까? 신이 내려준 향기인 21년산맛에다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켰다니 자못 궁금함이 나를 들쑤시게 한다. 11월부터 출시된다 하니 기대가 크기는 하지만 그 값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출고가가 700ml기준으로 255달러. 50여만원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 가가 무려 80만원이라니...ㅣ 하기사 21년산도 30만원선이니 이것도 만만치는 않지만...
우울한 가을 오후ㅡ 신이 내린 맛,향기로운 술한잔에 온몸을 맡긴채 유유히 떠도는 실구름을 바라보며 잡다한 세속의 고통을 잊는 樂道를 꿈꾸는 것은 내게는 사치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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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2년산맛만 보았으니 25년산은 정말 아떨까 음미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