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생전 인터뷰 "죽음을 준비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해"
“암은 힘든 게 아니라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병이에요.”
배우 김자옥(63)씨가 16일 63세
일기로 별세했다. 사인은 폐암 합병증이었다. 6년전 대장암 수술을 한 고인은 2012년 4월 종합검진에서 임파선과 폐로 전이된
암을 발견했고, 항암 투병하다 이날 오전 7시 40분쯤으로 별세했다.
환한 반달 눈웃음과 애교가 매력적이었던 고인은
‘암(癌)을 극복한 탤런트’로 자주 회자됐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난 이후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며 대중 앞에 섰고,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암투병기를 공개하며 대중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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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최고의 유행어가 된 '공주병' 신드롬의 정점에서 인기를 누린 탤런트 김자옥. MBC TV '96 여자를 말한다'에서는 공주병 열풍의 원인을 진단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고인은 지난해 8월 출연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마지막 회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는
“교통사고나 혈압으로 쓰러지면 가족들도 모르게 죽는 것이지 않나. 하지만 암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병이다”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죽음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그 때부터 “싫은 사람이 있어도 싫어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순간을 감사하는 걸 생각하다 보니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고인은 말 그대로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남편인 가수 오승근과 함께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했다. 림프샘 항암치료 후 6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한 날이었다. 고인은 “(림프샘 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고 원망했다”면서 “하지만
나중에는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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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런트 김자옥.
고인은 6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난 이후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암이 재발해 투병을 해 온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했다. 고인이 아픈데도 방송을 강행했던 이유에 대해 한 지인은 “(김자옥은) 병원에 다니면서 (세상에) 아픈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다”고 했다.
고인은 한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와 같은 질문을 하자 “아프다고 일을 안 했더니 (사람들이) 엄청 아픈 줄 알더라. 그래서 아파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농담을 하며 주변을 안심시켰다. 고인은 지난 1월 케이블TV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함께
출연한 이미연, 김희애 등 후배 연기자의 식단을 봐 주는 등 건강을 챙겼다. ‘내가 아파 봐서 안다’는 말이 뒤따랐다. 이미연씨는
고인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왈칵 눈물을 흘렸다.
영원한 소녀이자 긍정의 아이콘인 고인에게도 암은
쉬운 병이 아니었다. 고인은 ‘꽃보다 누나’ 방송에서 제작진에게 “몇 년 동안 주사 맞고 항암 치료를 하다보니 사람이 위축됐다.
여기 출발하기 전날까지도 두려웠다”고 불안해 했다. 또 다른 아침방송 인터뷰에서 “죽음과 삶과의 차이가 정말 잠깐이더라.
수술하다가 안 깨어나면 죽는 거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쉽게 말할 수 없는 거다”라고 했다.
고인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자다가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말도 했다. 그는 “힘들고 지치니까 가족도 다 싫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픈 게 뭐가 자랑이라고, 왜 나 때문에 가족들까지 힘들게 하나’ 싶어 힘을 냈다”고 말했다. 고인은 남편 오승근 사이에 딸
오지연씨와 아들 오영환씨를 뒀다. 아들 오영환 씨는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딸 오지연 씨는 지난
2010년 5월 시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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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탤런트 김자옥.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이다. 고인은 1951년 경남
부산 출생으로, 배화여자중학교 재학 중 TBC 드라마 ‘우리집 5남매’로 데뷔했다.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본격 입문했으며 드라마 ‘심청전’, ‘수선화’, ‘보통여자’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꼽히는 고인은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로 ‘눈물의 여왕’이란 애칭을 얻었다. 1980년에 가수 최백호와 결혼하여
연예계를 은퇴했으나, 1982년 KBS 드라마 ‘사랑의 조건’으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1983년 최백호와 성격 차이로 이혼했으며
이듬해에 가수 오승근과 재혼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