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舞踏)는 어둠의 춤이며, 죽음의 춤이다. 1960년대 출현하여 일본 전위예술의 한 축을 이뤘던 부토는 당시 스스로를 암흑무용, 암흑부토로 명명하였다. 이때 암흑은 정신의 감옥에 갖힌 육체의 어둠(흔히 육체를 정신의 감옥으로 간주하는 사고의 전복)이자 육체의 무의식이며, 기존의 무용과 예술을 향한 반역의 정신이었다. 반라(半裸)의 몸을 하얗게 칠하고 침묵과 어둠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몸들, 에로티즘과 그로테스크, 기형과 잔혹, 극도로 미세하고 정밀한 움직임, 여장을 하고 어린아이처럼 무대를 유영(遊泳)하는 깊게 주름 패인 노인의 기묘한 형상들이 부토를 채우고 있는 몸들이었다.
어둠과 침묵, 느림과 기형의 미학으로 요약되는 부토가 탄생한지 이제 40년이 지났으며, 해외로 진출 세계 공연예술계에 충격을 주면서 20세기 공연예술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지도 20년이 흘렀다. 이번 제10회 창무국제예술제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부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두 개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산카이주쿠와 오노 요시토가 그들이다.
오노 요시토는 최초의 부토 작품으로 평가되는 히지가타 다츠미 안무 [킨지키(禁色)]*에서 히지가타와 함께 출연하였고, 이후 60년대 주요한 부토 공연들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부친인 부토 가(家) 오노 가즈오**의 무대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오노 가즈오의 자유로운 즉흥과 대비되는 정적인 움직임으로 공연의 균형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더 깊은 인상을 던져 주었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고령인 부친의 활동이 위축되자 요시토는 스스로 솔로 작품을 창작하여 발표하곤 하였다. 그러나 부토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오노 요시토가 안무하는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작품들은 부토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는 하나, 오노 가즈오 없는 그의 무대가 더없이 공허함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반면 부토 2세대를 대표하는 산카이주쿠(山海塾)는 히지가타류 양식부토의 세례를 받았으나 독자적인 부토 방법론과 공연 미학을 만들어냈고,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부토단이다. 산카이주쿠를 이끌고 있는 우시오 아마가츠는 70년대초 히지가타의 제자인 마로 아카지가 만든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의 주역 중 하나였다. 그가 75년 결성한 산카이주쿠는 8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2년에 한 번 꼴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유럽 최고의 공연단체 중 하나이다. 애초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으나, 80년대 초 미국순회 공연중 도심 빌딩숲 사이에 로프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산카이주쿠 특유의 하강의식(下降儀式)**** 퍼포먼스에서 사고로 한 명이 추락사한 이래로 네 명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산카이주쿠는 침묵과 느림, 흰 칠한 몸(혹은 흰 가운), 몸의 왜곡, 에로티시즘, 태아 자세가 표상하는 원형회귀의 욕망 등에서 분명 초기 암흑부토를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암흑부토의 거친 외형으로부터 특징적인 요소만을 추출하여, 이를 매끄럽고 정교하게 다듬어 새로운 차원으로 부토를 이동시킨다.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빛과 오브제,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완벽주의와 심미주의는 산카이주쿠의 극도로 절제된 양식미의 요체이다.
초기에 다른 부토 단체들처럼 잔인하고 자극적인 표현들을 등장시켰던 산카이주쿠는 80년대 중반 이후론 점차 심미적 경향이 강화되고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공연자들은 차분하지만 엄숙한 제의를 거행하는 사제들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제의는 고대로의 여행을 상정한다. 우시오 아마가츠에 따르면, “부토는 육체를 통해 존재의 근원, 의식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한 방법”이다.
산카이주쿠에게서 육체의 무의식의 탐색은 시원(始原)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부토는 사물의 기원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이는 인간이 물질 혹은 미지, 더 나아가 죽음을 처음 자각하고 발견했을 때의 기억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초기 부토에서 산카이주쿠로의 이런 이행은 마치 프로이트로부터 융의 원형심리학으로의 이행과 흡사하다. 그러나 부토에서 수단이자 주체는 어디까지나 육체이다. ‘지금 이곳’의 육체가 그때까지 진행된 모든 진화론적 흔적의 축적임을 인정한다면 산카이주쿠의 이상이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가츠는 “부토가의 몸은 막 넘칠 듯한, 한 방울도 더 담을 수 없는 술잔과 같다.”고 말한다. 이런 육체의 지점, 육체의 밀도와 감각에 어쩌면 부토의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바라보는 이에겐 신비주의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무대 위의 몸에는 분명 진실함이 있다. 아니 그것이 결국 환영(illusion)이면 또 어떤가. 부토는 예술이지 종교가 아니다. 불가능을 알면서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가 아닌 예술의 몫 아니던가.
또 하나의 질문. 부토는 과연 춤인가? 춤이 단지 음악적인 움직임이 아
니라 ‘몸’이라면, 부토는 춤이다. 정지해 있거나 느리게 움직이면서, 작은 소리의 울림과 공기의 변화에조차 반응하는 몸의 미세한 진동도 춤임을 긍정한다면 부토는 춤이다.
산카이주쿠의 대표작으로는 비교적 초기작인 [죠몽쇼](繩文頌: 일본 선사시대에의 경의)를 비롯, [시지마](しじま: 문어체 표현으로 침묵, 정적을 의미), [유라기](搖ぎ: 흔들림), 95년 첫 내한하여 공연했던 [우네츠](당시 한국어 제목은 “경이롭게 서 있는 달걀”) 등이 있다. 하지만 산카이주쿠의 공연은 제목이 어떻게 달라지든 그 몸의 움직임과 공연 미학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흔히 듣곤 한다.
이번에 그들이 가지고 오는 작품은 98년 초연된 [히비키](響き: 울림,반향)로, 극장 예술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의 BEST NEW DANCE PRODUCTION 부문 2002년 수상작이다.
* 1959년에 발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당시 무대에서 금기시되던 동성애와 닭의 도살을 표현하여 파문을 던졌다. 이를 계기로 히지가타 등은 일본 현대무용계의 주류와 결별한다.
** 오노 가즈오(1906-)는 히지가타 다츠미, 가사이 아키라 등과 더불어 초기 부토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인물이다. 물론 부토의 세계관과 표현 미학은 사실상 히지가타 다츠미(1928-1986)에 의해 정초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히지가타의 양식부토(혹은 암흑부토)와 대비되는 즉흥부토의 흐름을 부토에 접목시킨 것은 오노 가즈오의 공로였다. 특히 히지가타가 일선에서 물러난 70년대 후반 일흔이 넘는 나이로 무대에 복귀하여 부토 해외 진출의 선두에 섰던 세계적인 명성의 부토 가이다. 여장을 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추는 오노의 부토는 생의 깊은 비애와 아름다움이 묘하게 교차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차례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연극배우 출신 마로 아카지가 이끄는 다이라쿠다칸은 연극적인 스펙타클, 격렬한 움직임, 우스꽝스러운 행동, 기괴한 분장, 환각적이고 파괴적인 원시 제의의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며, 산카이주쿠, 뱌코샤, 세비와 아리아돈 등 70년대 후반 이후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부토 단체들의 산실이 되었다.
이렇게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육체의 하강은 인간의 탄생을 재현하는 의식이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고립된 인간을 암시하고, 그 구속 속에서 부여되는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첫댓글 새로움이다...
어둠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