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등급(刑無等級)
처벌에서 예외도 없고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刑 : 형벌 형
無 : 없을 무
等 : 무리 등
級 : 등급 급
사회적 해악 끼치는 일탈이나 불법행위를
국위선양 등 이유로 그냥 넘어가면
유사한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으니
법 적용서 예외나 차별두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거대한 정치권력이
사회악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견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인권을 억압하는 등
숱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정착하게 되자
막강한 권력의 비리는 줄어들게 됐다.
언론이 성역 없이 취재하고
시민사회도 감시활동을 강화해
견제가 없는 사각지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를 덜 받는 곳에서
비슷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장과 거리에 비해 골목과 음지에는
풀뿌리 민주화가 아직 덜 정착됐다고 할 수 있다.
즉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를 덜 받는 사회
다양한 영역의 골목대장들이 아직 봉건시대의 영주처럼
견제받지 않은 전횡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체육 분야의 부당행위는 잊힐 만하면 사건화된다.
쇼트트랙 심 모(某)선수가 코치로부터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에도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대한체육회와 정부가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철인 3종경기의 최숙현 선수가
팀 내 다양한 인물로부터 폭행과 부당한
대우를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는 한 번의 사건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배워 재발 방지에 성공하지 못하고
제2, 제3의 사례가 생겨난다.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후진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근래 우리나라는 드라마, 노래, 스포츠,
방역 등에서 세계 시민의 폭넓은 관심을 받으면서
K드라마, K팝, K스포츠, K방역 등의 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이를 묶어서 한류라고 부르며 자부심을 느낄 정도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세계로부터 도움만을 받지 않고
세계를 향해 기준이 될 만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또 다른
‘K’라는 이름으로 회자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춘추전국 시대의 상앙은 신분이 세습되던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법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대접받는 실적 중시의 사회로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기존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일탈하는 사건 사고가 많았다.
이때 상앙은 범죄가 될 만한 사건 사고에 대해
재상과 장군에서 대부와 서인에 이르기까지
처벌에서 예외도 없고 차별도 없어야 한다며
형무등급(刑無等級)을 주장했다.
법적 책임에서 예외가 있고 차별이 있다면
법은 공평하지 않다.
법이 공평하지 않으면 범죄가 싹틀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예방할 수가 없다.
상앙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탈과 불법을
방지하기 위해 형무등급을 더 구체화시켰다.
그는 불법의 제로를 기획하기 위해 불법에 대해
관용하지 않고 엄격하게 처벌하며
가족까지 연대 책임을 묻는 연좌제를 실시했고
심지어 가벼운 불법이라도 중형에
처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이는 상앙이 활약했던 시대를 반영하는 모습이므로
오늘날 그대로 시행할 수는 없다.
아무리 불법의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고 하더라도
죄형 법정주의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앙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했던 형무등급의 원칙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불법이 있는 곳에 국위 선양과 사회적 기여를 이유로
정상을 참작해 책임을 경감하게 되면
제대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유사한 사건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으면서도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로 인해 겪지 말아야 할 고통을 겪는 사람,
고통을 겪고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야 하는데
계속 생겨난다면 결국 사람이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후진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다양한 K사례가 주는 영광에만 도취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K사례의 예방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