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9월의 일기, 추억의 편지
‘안녕하십니까. 전에 전화로 인사드렸던 조성표입니다. 저와 제 결혼할 사람의 서로에 대한 약속을 글로 써 보았습니다.’
12년 전으로 거슬러 2010년 10월 어느 멋진 날에, 내 Daum 메일함에 편지 한 통이 꽂혀들었다.
바로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조방연 친구의 아들인 성표 군이 띄워 보낸 편지였다.
위의 글은 그 편지 본문의 시작이다.
성표 군은 그달 23일 토요일 오전 11시 50분에, 우리 고향땅 문경 점촌의 궁전예식장에서 장가드는 혼사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바로 그 혼사에 혼주인 조방연 내 친구의 부탁으로 내가 주례로 나서게 되었고, 그 주례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혼사의 주인공인 신랑 성표 군과 신부 전소현 양의 마음가짐을 알아보고자 각자 글 한 편씩을 써보라고 당부했었다.
내 생전에 처음으로 맡아보게 된 주례여서,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신랑 신부가 좀 부담스럽게 느낄 것임을 빤히 알면서도, 내 그런 당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상대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의 약속을 그 글에 담아주기를 바랐었다.
고맙게도 둘은 내 그 당부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내게 그렇게 한 통 편지를 써서 띄워 보내준 것이었다.
구구절절 정성스러운 마음들을 담고 있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어서, 내 여기 감히 공개한다.
다음은 신랑 성표 군에서 신부 전소현 양으로 이어지는 편지의 전문이다.
(조성표)
기원섭 선생님께.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나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 올림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릴 적 읽은 우화 중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 식사에 초대하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평소 두루미를 좋아하던 여우는 두루미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여우가 항상 즐겨 쓰는 납작한 접시에 담아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두루미는 긴 부리 때문에 전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화가 난 두루미는 여우를 초대하여 호리병에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우 역시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하는 약속은 상대방인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아내를 위해 마음을 쓴다 하더라도, 나의 행동이 진정 아내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겠습니다. 음식을 아무리 정성껏 준비해도,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대접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아내의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소개로, 또 제 예비 아내는 친구의 소개로, 고향인 점촌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비 아내는 고향인 문경에, 저는 성남에 살아서 멀리 떨어졌다는 이유로 주위의 우려도 있었고, 저희 두 사람도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 문제 없이 여기까지 왔고, 매주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사랑을 키워 온 것에 대해 서로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커플들보다 잘 살 수 있는 짝이 되려고 합니다.
긴장하면서 처음 전화를 드리곤, 예상치 못했던 숙제(?)에 당황했습니다. 부담 없이 편하게 쓰라고 하셨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 부담스럽고, 어려웠는지 생각해 보니 그동안 이런 기회가 잘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몇 자 적진 않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지우고 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키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결혼할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저 스스로도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두 사람을 위해 수고로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고, 저희 두 사람을 위해서 주례를 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성표 올림
(전소현)
주례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10월의 신부가 될 전소현이라고 합니다. 먼저 저희의 주례를 맡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직접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어서 죄송스럽습니다.
선생님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마성초등학교, 중학교, 점촌고등학교를 졸업 후 안동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문경시청에서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저와 함께 모두 문경에서 살고 계시구요.
신랑은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점촌고등학교 선후배사이입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신랑 직장은 경기도 성남에 전 경북 문경에 있었지만 먼 거리가 저희에겐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1년6개월여를 만나면서 매 주말마다 만나서 가까운 산으로 강으로 다니면서 저희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 왔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희에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결혼하게 되면 신랑과 꼭 약속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서 서로의 단점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잘 관리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결혼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면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해도 무리하게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사람의 성격과 성향은 어차피 다 다르기 때문에 만일 그 단점이 그냥 포용하고 넘길 수 없는 것이라면 억지로 뜯어고치려 애쓰기보단, 상대방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고 싶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상대방의 단점을 억지로 고치려하기 때문에 부부관계는 자꾸만 상처가 남고 곪는 거 같습니다. 조금만 상대방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다면 충분히 다툼 없이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저는 다시 다짐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콩까지가 씌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신랑의 단점이 나중에 보이더라도, 화내거나 신경질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을 잘 독려해서 신랑을 한 가정의 이상적이 가장의 모델에 가깝게 만들겠다구요~^^
주례선생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저희의 주례를 맡아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 보여드릴께요.^^
전소현 올림
너무 늦게 글을 드려서, 주례사 준비하시는데 지장이 되었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결혼식 당일에 직접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조성표. 전소현 올림//
엊그제 토요일인 2022년 9월 17일 토요일의 일이다.
이날은 조방연 친구가 마지막 남아있던 인생 숙제를 풀어내는 날이었다.
이날 오후 4시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335 차바이오컴플렉스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소생인 3남매 중에 그동안 결혼을 미뤄오고 있던 딸아이 수진 양을 시집보내는 혼사를 치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기쁜 혼사이겠다 싶었다.
친구에게 그 기쁨을 더해주고자 아내를 동반해서 부리나케 달려갔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발걸음 해준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그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까만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느낌에 딱 젊다 싶었다.
그러나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저 성표입니다.”
가까이 다가와 그렇게 이름을 밝혀 인사를 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가 누군지를 알지를 못했다.
그때 뒤따라온 혼주 조방연 친구가 이렇게 거들고 있었다.
“성표라. 야 장가갈 때 주례를 맡아줬었잖아.”
그때서야, 내 겨우 앞에 서있는 그 젊은이가 누군지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날 그 편지에서 다짐했듯이, 그때의 신부와 지금껏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그렇다고 말을 해줘서 확인한 것이 아니다.
마스크 위쪽의 그 눈빛으로 확인했다.
꼭 이리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제가 지난날 선생님에게 띄워 보내드린 편지에서 약속했던 대로, 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추억의 편지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그 편지에서의 다짐과 약속을 늘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조수진양의 결혼을 衷心으로
축하하며 인생은 앞날이 꽃길만
걷는 행운의 길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