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
김이듬
그들은 둘러앉아 잡담을 했다
담배를 피울 때나 뒤통수를 긁을 때도 그들은 시적
이었고
박수를 칠 때도 박자를 맞췄다
수상작에 대한 논란은 애초부터 없었고
술자리에서 사고 치지 않았으며
요절한 시인들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들도 분명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연애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버릴 테다
이 문장을 애용하던 그는
외국으로 나다니더니
여행책자를 출간해 한턱 쏘았다 난 안 취할 만큼
마셨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빠진 이들
그 시인들은 제 밥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신촌의 작업실에서 애들이 기어다니는 방구석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고 있는지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에서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지
중요한 건 그런 게 없다는 것
아무도 안 죽고 난 애도의 시를 쓸 수 없고
수술을 받으며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조용히 그리고 매우 바르게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2011)
김이듬 -2001년 계간 《포에지》를 통해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베를린, 딜렘의 노래』『히스테리아』『표류하는 흑발』『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