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의 내력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율곡리에 위치한 임진강 화석정 앞.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254㎞에 달한다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
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하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하였다
임진강의 슬픈 역사
서부전선 남과 북의 중간에 위치한 인진강.
김포 애기봉에 올라 보면
임진강 건너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의 모습이 훤히 보이더군.
이곳에
서 6,25때 얼마나 많은 남과 북의 군사들이 피를 흘렸던고.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이런 슬픈 역사가 가슴 아프다.
임진강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연천에서 한탄강과 합류하여 한강으
로 흐르는 700리나 되는 기나긴 젖줄이 임진강입니다.
임진강과 한강
이 만나는 삼각주 일대의 광활한 초지와 갈대밭은 늦가을부터 이른봄
까지 먹이를 찾는 철새들로 부산하죠.
그러나 여름 장마 때면 홍수를
조절할 댐이 없어 걸핏하면 강이 범람해 이 일대 주민들에게 큰 피해
를 주고 있습니다.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바로 자유의 다리와
통일대교 입니다.
신지강(神智江)에서 임진강(臨津江)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불과 20일 만에 서울을 내준 선조는 4월 30일
밤 부랴부랴 임진강을 건너 의주까지 피난길에 나섰다.
서울을 점령
한 왜군은 선조를 찾아 북진, 임진진에 군사를 배치했으나
배는 모두
반대편에 정박시킨 뒤였고 물살은 여간 빠른 게 아니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이 일본수군을 격파하고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
을 거두게 되자 왜군 잔여병들은 할 수 없이 한양을 버리고 부산으
로 후퇴한다.
왜군 후퇴 소식을 듣고 한양으로 돌아오던 선조는 나
루터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위령제를 지내면서 피난 당시 이
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군사들의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선조가 통곡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 나루터로 다시 오게 되었
구나." 하였다 하여
신지강을 임진강(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나루터)
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유의 다리
반세기 가까이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유의 다리.
임진강
의 푸른 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다리 초입에는 국군이 보초를 서고 있죠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휴전이 성립되자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급하게 설치된 다리입니다.
당시 북쪽에 잡혀 있던 포로 1만 2천
여명이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합니다.
현재 자유의 다리는 통일대교
개통 후에 폐쇄되었습니다.
통일대교
자유의 다리 옆에 임진강 남북을 잇는 새로운 다리, 통일대교가 1998
년에 개통되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1999년 소떼를 이끌고 북한
으로 간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현재 통일대교를 건너서 남쪽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판문점이다.
임진강 유역의 사진
임진강 / 이태호
1.풀피리 꺾어불면 물새도 노래하던
옛이야기 속삭이며 흐르는 임진강아
노젓던 뱃사공은 어디로 가고
쓸쓸한 나룻터엔 배만 떠있나
울지마라 물새야 울지를마라
세월가면 임도 오겠지
2.풀피리 꺾어불면 산새도 노래하던
옛이야기 모르는체 말없는 임진강아
휴전선 바람보며 목이 메이는
한많은 그사연을 너는 알겠지
울지마라 물새야 울지를 마라
세월가면 임도 오겠지
첫댓글 아름답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