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조금 바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늘 그렇듯이.
세해를 맞이하여 기운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
좋은 징조요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하여 그 새로움을 찾아 나서기 위해 잡지 "피플투데이" 발행인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길에
안성 터미널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에
잠시 멍했다
아니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버스 한 대를 그냥 보내고서라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어째 저런 일이"가 그곳에 있다.
멀쩡하게 생겼다.
키도 그만 하면 족하다.
신발, 메이커다...가방, 필라 다.
그것도 짝퉁도 아닌.
서울로 가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헐레벌떡 터미널에 들어섰다.
차를 놓칠까 싶어 숨 차게 달렸지만 약간의 여유가 있어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웬 아이가 따라와서는
"저어기, 내가 강남에 가야 하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 그러니까 돈 조금만 "이란다.
힐끗 쳐다보니 괜찮아 보이는데 아인데 발음이 약간 어눌하다.
2프로 정도 모자라 보이는 발음으로 자꾸만 돈을 달라는 것이다.
귀찮기도 해서 낼름 천원을 꺼내주었더니만 돈만 받아 들고 냉큼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이다.
아, 뭐 저런 애가 다있냐...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하는 거 아니야? 하고 돌아보니
벌써 그 사이에 다른 아줌마한테 가서 붙었다.
또 천원을 획득했다.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주로 아줌마들을 쫓아다니면 약간 어눌한 말투로 동정심을 조장한다.
기가 막히다.
한참을 바라보며 살펴보았더니 아, 그게 수법이었던 거다.
터미널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먹이감 포착한 동물의 본능처럼 달려가는 것,
그것도 주로 여자들이 사냥감인데 그조차도 없으면 나이 든 아저씨나 남자애들에게 달라붙는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보내버리고도 한참을 그애를 주시했다.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그동안에 저런 애가 있었던가 싶었다.
시간대가 맞질 않아서 못 보았을 수도 있겠고 그날이 처음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을 접고 돌아설까 하는데 옆에 웬 아줌마를 또 쫓아가서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
이미 내가 돈을 준 사람을 본 것만 해도 몇 사람인데 여전히 삼천원이 모자란다며 돈을 달란다.
그런데 임자 잘 못 만났다 싶은 그 아줌마가
"너, 전에도 그랬잖아.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가..안줘, 못 줘, 한번 줬으면 됐지 아이고 기가 막혀서 원"
이러는 게 아닌가?
그럼 저 애는 수작이었던 거야? 정말 기가 막힌 거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아이 태도 다.
안 주면 말 일이지 뭔 참견이냐는 눈 빛으로 쓰윽 쳐다 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런 노여움도 타지 않는다는 듯이 말한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멀쩡하게
그냥 모르쇠로 다음 사냥감에게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적당히 돈이 모이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천원 짜리 하나 달랑 들고서 그 짓을 하는 거다.
그러데 더 놀라운 일은 지치지도 않고 수금하듯이 먹이감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는 수법이 경지요
일정 부분의 돈이 모아지면 터미널 바깥에 있는 자판기 비슷한 것의 뒤쪽으로 사라져 돈을 세어보고
가방에 넣어버리고 단단히 단속을 하여 다시 뛰어 온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내내 지켜보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약속 시간이 있는데
두 번이나 버스를 보낼 수 없어 버스에 올라타고서도 지켜보았더니 여전히 뛰어다니며
제 돈을 수금하듯이 먹이감에게 달려든다.
옆에 앉은 아줌마 왈, 저 애는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도 당했다면서 연신 화를 내고 덩달아 무슨 저런 애가 다 있느냐며 나도 동조를 하지만
그 아이 또한 뒤에서 사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 뿐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므로 나 또한 나설 일 없이 지켜보기는 했지만 참으로 씁쓸하다.
아고 참,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비럭질이고 소문없이 저질러지는 행태에 대한 분노로
즐겁게 나선 마음이 강탈당하는 것 같아 심사가 뒤틀려 버렸다는 말씀이지만 웃겨 정말.
그 녀석, 배짱도 좋더라.
첫댓글 참~! 뭐라 할말이 없군요~! 쨘하기도 하고 어린 친구가 세상사는 방법이... ㅜㅜ
그러게요...누굴 탓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