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題(우제)
윤두서(尹斗緖:1668~1715)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종애(鐘崖).
고산 윤선도의 종손으로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후기 삼재(三齋)로 불린다.
작은 집에 먼지없이 맑게 갠 날에
小閣無塵霽景明 소각무진제경월
따사롭게 부는 실바람에도 주렴은 흔들리지 않네
簾波不動惠風輕 염파부동혜풍경
푸른 이끼는 땅에 가득 비단을 펼쳐놓은 듯
滿地綠苔如舖錦 만지록태여포금
정향꽃아래 한낮에 닭이 우네
丁香花下午鷄鳴 정향 화하 오계명
*
은행나무 여인숙
김이듬
방으로 갈래?
너의 손을 끌고 방으로 가고 있을 때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숲은 적막하여
태양이 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들어와
방은 타원형에 가깝고 천장이 뚫려 있다
거친 나뭇결의 벽에 나뭇가지들
서거나 기대면 다칠 것이다
그는 웅크리고 기어들어온다
백 년 전에 수백 년 전에는 살아 있었을
그리하여 절 뒤란을 누렇게 뒤덮었을
은행나무는 죽어서 동굴처럼 서 있다
잠시 우리는 자신을 만난 듯 부끄러워진다
누우면 다리가 밖이 되는 방에서
비어 있는 중심을 다 보게 되면 끝에 가닿을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방에 눕는다
뾰족한 하늘을 쳐다본다
텅 빈 가운데를 쓰다듬는다
죽은 새가 궁륭을 날아간다
『명랑하라 팜 파탈』, 김이듬,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