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지동설』(그루, 2010)을 만나고
낮고 따스하고 올곧은 선비정신을 가진 시인을 만나려합니다.
김윤현 시인, 그는 자신의 시 쓰기를
‘온기를 나누어 호흡할 수 있다면 세상은 호주머니처럼 따뜻해지리라. 그 온기를 찾아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고 서로를 깊이 호흡하게 하는 시를 쓰고 싶어서 이리저리 뒤척인 나날이 내게는 온기를 더하는 시간이었다.’
고 고백합니다.
시인의 세상 살기로서의 자세와 정신이 깃들어 있는 시편들을 만나 보십시오.
시인은 195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분단시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은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질까』,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다』, 『들꽃을 엿듣다』, 『지동설』을 펴냈으며
한국작가회의, 대구가톨릭문인회, 대구시인협회, 계간 『사람의 문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봄 두 번째 달입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환한 달입니다
시를 좋아하는 이와 함께 즐거운 나들이 하십시오.
-일시 :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수성못 레스토랑 '케냐'
-회비 : 없음, 식사와 음료는 직접 구매하셔야 합니다
-제공 : 시하늘 2011 봄호, 시 낭송용 소책자
*시집『지동설』을 할인하여 사실 수 있습니다.
-연락처 : 가우 박창기 010-3818-9604/제4막 권순진011-9080-1296
어리연
-김윤현
수면보다 높지 않으려
수면에 누워 보네
제 스스로 약속한 평형의 삶
떠내려갈까 봐
수중 깊이 내려가
진흙을 꽉 물고 있네
도토리
-김윤현
미끄러지는 곳에서 생은 늘 시작된다
떨어져 구르고 구르다가 머무는 곳이 터전이다
부딪히지 않으려 몸가짐을 둥글게 하다가도
가을이 오면 도토리는 낮은 곳으로 구른다
다람쥐 눈에 띄지 않게 낙엽이 살짝 덮어주는 곳도
추워지면 마른 풀이 포근히 감싸주는 곳도
가슴 넓은 흙처럼 다 낮고 낮은 곳이라며
낮은 곳에서도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며
도토리가 짓는 표정에는 주름 하나 없다
강물
-사제를 위하여 2
-김윤현
산을 불러 강에다 맡겨두고 강물 떠나네 꽃을 불러 강에다 건네주고 강물 떠나네 뒤 따라 오는 강물이 좀 가져보라고 그대로 두고 강물 떠나네 내친 김에 하늘도 내려놓고 강더러 한 번 차지해 보라고 빈 몸으로 떠나네 굴려온 모래 깨끗해지면 죄다 두고 떠나가네 흘러온 생애 다시 흘러가네 두고 온 것 미련이 생길까 흘러갔다가 돌아오지 않네 돌아오지 않아 생애, 맑고 깨끗하다
계곡
-김윤현
해가 뜨면 세상은 양지처럼 밝게 빛나도
계곡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둠에 젖어 산다
어둠에 젖지 않으려 능선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다 내려간 곳 어딘가에서
목이 타는 가뭄에도
제 몸 깊숙이 간수해둔 물을 내려 보내면서
풀과 나무를 키워내는 계곡은
그렇게 어둠에 젖어 산다
진박새 불러 목을 적셔주고
하늘다람쥐 불러 물 한 모금 건네주는 계곡은
큰물 질 때마다
가슴 패이고 제 몸 무너지는 상처에 젖어 산다
다 내려간 곳 어딘가가 또 다른 시작임을
풀뿌리처럼 드러내지 않고 산다
해가 지기도 전에 가장 먼저 어둠에 젖는 계곡은
감은사지感恩寺址
-김윤현
그림자도 거느리지 못하는 희미한 높낮이가 정진의 극치를 증언하는 소리 어디 숨어 있을 듯, 키 낮은 풀들만 남아 보이지 않는 수행이 거친 숨결 고르며 천상을 눈앞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욕망에 젖어 무거워진 속세를 천상으로 들어올리기도 했던가 남은 자취의 허술함이 지상의 티끌을 어루만지면 비좁은 가슴은 바다로 흐르는가 하늘로 열리는가 이곳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삶에 젖은 생각은 은빛 물결로 가벼워지면서 안개가 되어 세상을 골고루 감싸 안을 수도 있을지 뚜렷함이 사라진 뒤의 저 소소함은 딱딱한 육신을 구름으로 흩어지게도 할는지 바늘구멍 같던 마음도 내게 먼 소리 꿰뚫어 다 들을 수 있을지 죄다 버리고 겨우 남은 흔적이 내 마음을 달빛처럼 골고루 차지하네
평지
-김윤현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부추기지도 않겠네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밀어내지도 않으려네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 다 지나갈 때까지 몸을 낮추겠네 물 흘러오면 같이 있어 주겠네 누군가 길을 내려고 하면 그렇게 해보라 하겠네 제 혼자 커서 남 어깨 누르는 풀을 키우지는 않으려네 한 가지 꽃만 피워 외롭기보다 꽃가루 날리며 이웃하려는 꽃을 키우려네 앞도 뒤도 구별하지 않으려네 왼쪽도 오른쪽도 차별하지 않으려네 보이는 것으로 생의 지평을 넓히려 하기보다 보이지 않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네 처음 그랬듯이 지금도 평형의 빈 마음 그대로라네
저 논
-어머니를 위하여
-김윤현
물속에 잠겨
온 몸 뒤집히고 파헤쳐지다가
잘게 썰리고 짓눌려 곤죽이 된 만신창이
저 몸으로
평생
판결문처럼 흔들리지 않은 채
어린 벼를 반듯하게 키웠으리
가끔 풀이었으면
-김윤현
바람 불 때마다 키스하네
밤낮 없이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하네
입도 없이 키스하네 껴안지도 않고 그냥 몸을 맡겨버리네
난리 났다고
새들은 제자리에서 날아올라 이산 저산 소문 내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네
바람 불면 아랫도리가 휘도록 사랑에 넘어지네
한껏 기분 좋으면 피라미처럼 제 몸을 바르르 떠네
사랑, 참 노골적이다 눈치 보지 않고
들판이고 냇가고 지평선에서였던가 눈에 쉬 띄어
으슥하지 않네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기다가
사랑이 끝날 때는 몸에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네
개운한 사랑, 적수공권으로 이루네
사람들은 저들의 사랑을 초록이라 부르네
요즘 들어 가끔 풀이었으면 하는 때가 있네
지동설 1
-김윤현
지구가 둥근데
평평한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람 위에 올라서지도
사람을
사람 아래 두지도 말라는 거라
지구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
하루에 한 번씩 제 몸을 굴리며
높낮이를 살펴보는 거라
청도 가는 길
-김윤현
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인가
막걸리에다 수북이 씹히는 콩
꿈도 꾸지 못했던 한약재
이건 내 즐거운 식단이 아니다
나는 이제 풀을 기대할 수 없나
분수에 맞지 않게 배불리 먹고
소화시킨 건 근육 같은 전의(戰意)
세상이 받아주면
싸움도 죄가 되지 않는 곳으로
뿔을 단단히 세우고 뚜벅뚜벅 걷는다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
지고나면 길고 긴 밤이 온다
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
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나가 아닌가
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
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
땅
-김윤현
쓰레기와 몸을 섞으면서
지렁이와 함께 뒹굴면서
썩은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시체와 오래도록 누워있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그대
땅땅거리지 않아서 기분 좋다
그대 하늘처럼 높다
먼 산
-김윤현
바람이 휘몰아쳐
기르던 나무들 다 넘어지고 꺾여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새순이 돋았던 생의 계곡
때 아닌 장마에 진흙처럼 무너져 내려도
단풍들었다가 단풍들 속절없이 져도 무표정입니다
고단한 생을 턱까지 숨겨둔 채
육탈을 쌓은 삶
능선 하나로 언질을 줄 뿐입니다
맑은 표정을 짓는 어린 산들 앞세우고 멀찍이 물러나 있다가도
손끝 얼어터지는 겨울, 눈이 오면
가장 먼저 눈을 받아 놓고 가장 나중까지 품어주었던 풍찬노숙
눈 감아도 훤히 보입니다
아버지 대신 불러보는 이름, 그대 먼 산이시여!
삽
-김윤현
삽이 밭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평생토록 일만 했던 삽은 이제
관절이 삭아 움직이면 재처럼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미끈하던 몸매는 간 곳 없고 전신이 푸석푸석해진 삽이
아버지처럼 밭 가장자리에 가만히 누워있다
삽은 마른 풀 위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 한다
검은 반점이 온몸에 돋아나고 뼛자루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눈이 오면 삽 모양을 희미하게 드러내며 눈 속에 묻혀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은 몸 안으로 들어와 사지를 휘돌아
기침을 조금만 해도 온몸이 함석처럼 덜컹거린다
거친 흙을 파서 밭을 일구었던 목질은
삭정이처럼 삭아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반들거리던 윤기는 간 곳 없고 삭은 육신만 남아
가만히 두면 삽인 줄은 알 수 있어도
이제 삽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이웃이고 동네에서 빈 약봉지처럼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삽의 여생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섶에 누워있는 일만 남아있다
삽은 표정이 없다,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삽은 빨리 썩어 없어질 힘도 없다
삽의 체온이 조금씩 식어간다
삽이 쓸 데가 없어졌다고 중얼거리시는 아버지처럼
첫댓글 4월 7일 입니다
4월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 한 권 미리 예약 부탁드릴께요.
깜박했네요. 수정했습니다. 낭송할 시는 미리 찜해 주세요.
카페 활동도 없고
아시는 분이 없어 말벗도 없고
먼저 다가가 손 내밀지도 못하는데
시 낭송회에는 가 보고 싶네요
가도 되나요? ㅎㅎ
누구 저와 함께 걸음하실 분은 안 계신지?
용기 내어 오시면 모두 반갑게 맞이할 겁니다'
처음이 힘들지,......... 기다리겠습니다.
ㅎㅎ 뭐 그런 걱정을요.
시하늘 막내가 잘 챙겨 드리겠습니다.
혼자 오시기 뭐하면 다른 분과 같이 오셔도 됩니다.
반겨주시면은 용기내어 가 보겠습니다
기대되옵니다
혹 사시는 곳이 방촌동이신지요? 그렇다면 그날 제게 미리 연락주시면 제 x차로나마 모시겠습니다...ㅎ
감사하옵니다
네 방촌인 둔산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조금은 낯이 익어서
봉무공원, 달빛산책에서 올려주신 사진 몇번을 뵈었습니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봄이라 가고싶네요..포항서 같이가실분 안 계신가요?
바다칭구 님께 쪽지 보내 보세요. 같이 올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바다칭구 님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같이 오시기로 했다고. 고맙습니다.
제165회 시하늘 시낭송회 주인공이 되신 김윤현 선생님 축하합니다. 참석합니다.
김윤현 시인님 축하합니다. 저도 어릴 때 삽질 많이 했슴다. 눈썰매 타기도 하고 엎드려 뻗쳐서 엉덩이 맞기도 했슴다.
'삽' 찜하겠습니다.
보고싶은 사람들 만나러 가야죠.^^ ㅎㅎ 4월7일 기다려 봅니다.
참석 하겠습니다^^
구미의 김정숙입니다. 김윤현 선생님의 시집 가까이 두고 읽습니다. <가끔 풀이었으면> 하는 시를 낭송하고 싶습니다.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해도 될까요?
그리하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제 마음은 김윤현 시인님의 '계곡'에서 더 오래 서성거립니다 '계곡'을 찜하겠습니다
찜을 허락합니다.
오랜만에 오시는 이해리 시인도 낭송하신다고 합니다 ...... [감은사지] 찜하겠습니다
막내 때문에 오래 고민을 하다가 저녁 먹으면서 남편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다녀오라네요 ... 약간 늦어도 문 닫아걸으시진 않겠지요?
물론이지요. 시하늘은 늘 열려 있습니다.
시어속에 '뚜벅뚜벅'이 있어서 "청도 가는 길"에 소가 되어 볼랍니다...^^
점 찍어 두겠습니다.
목요일 저녁 저도 가고싶습니다 여기는 신천동입니다 첨 이라 서먹한데요 가도 되겠습니까?
환영합니다. 시하늘은 그야말로 시를 나누는 아름다운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