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마음을 내게 주소서
열왕기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찬송가 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오늘 읽은 열왕기상 3장 9절 말씀은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소원을 말하라고 했을 때에 솔로몬이 부와 귀와 원수를 멸함과 장수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왕으로서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인 최종재판장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잘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청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지혜와 명철을 달라는 소원을 두고 ‘듣는 마음을 주소서’라고 표현했습니다. ‘듣는 마음’이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라는 말로서 잘 귀담아 듣는 마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원고와 피고와 증인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듣다 보면 사리를 분별하여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를 잘 깨달을 수 있고,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서로의 이익과 손해를 합당하게 계산하여 공정하게 판결할지를 잘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종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방 말을 잘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말만 앞서지 않고 주로 귀 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인간관계가 잘 형성이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내면의 인격이 깊이 소통이 되고 신뢰가 쌓이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잘 듣는 것이 인격관의 교제와 신뢰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의 깊이와 성숙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율법의 핵심 구절인 신명기 6:4,5 말씀에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일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중요하기에 ‘들으라 이스라엘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실 때 자주 일러주신 말씀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고 경고적인 말씀을 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듣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깊게 영적으로 깨닫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귀담아 들으라는 당부인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사울 왕에게 이르기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사무엘상 15:22).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보입니다. 교회가 어디 있는가를 주의깊게 보면 교회가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믿음이 없던 시절에는 어디를 가도 교회가 안 보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소중함을 알고는 어디 여행을 갈 때 시골을 보더라도 교회가 그 동네에 있는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니까 교회가 눈에 보이곤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갈망하는 마음을 가질 때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잘 듣고자 하는 갈망의 자세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말씀이 열려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는 바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때에도 우리가 내게 주시는 말씀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 중에 말씀을 들으면 선포되는 말씀 속에 내게 주시는 말씀과 나를 깨닫게 해주시는 지혜를 얻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응답의 말씀을 주시곤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설교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도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언제든지 순종하여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질 때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요한복음 7:17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고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언제든지 순종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더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베풀어주셔서 순종하지 않고 무시하고 거역하고 순종하기를 더디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더해주지 않으십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사이에서도 한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늘 해도 상대방이 응답을 안하거나 말을 거는 데도 대답을 안하면 더 이상 인사하거나 말을 걸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을 해주셨으나 무시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살아 있고 라마 나욧에서 기도하는 거룩한 영적 지도자로 살아 있었으나 나라의 중대사가 있을 때에도 절대 찾아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위기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물었으나 대답을 일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조급한 나머지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점치러 갔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잘 듣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더 자상하게 말씀하시고 더 자주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하였고 엘리야, 엘리사가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듣는 마음을 위하여서 한 가지 더 잠시 유념할 것은 항상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헛간에서 일하다가 손목 시계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한 소년이 그 손목 시계를 찾아냈습니다. 어떻게 찾았냐면 헛간을 모두 떠난 뒤에 남아서 세미한 작은 시계 바늘 소리까지 들릴 만큼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시계 소리가 조그마하게 톱밥 속에서 들려와서 마침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하여서는 우리 마음의 풍랑이 잠잠하고 고요해져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 육신적인 계획, 염려 근심 등의 눌리는 마음들이 잠잠해지고 고요해질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입니다.
호렙 산 동굴에 낙심한 채 처박혀 있던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에 바람이 세게 불고 지진이 나고 불이 붙었으나 하나님이 거기에 아니계시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음성이 들리며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다고 열왕기 기록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세미하게 들려옵니다. 성령의 음성은 내면에 조용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고요하게 들려옵니다. 항상 마음을 격랑의 강물이 흐르게 하지 말고 조용히 성령의 시냇물이 흐르도록 내어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성령께서 우리 영에게 조용히 말씀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기록된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때로 우리 마음에 전혀 다른 생각의 방향을 전환해주시면서 마음의 무릎을 탁치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러한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요 생각의 전환을 주시는 성령의 음성인 것입니다. 차분하게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려 기다리시는 지혜의 영이십니다. 주님 앞에 자주 “듣는 마음을 내게 주소서.”라고 간절히 간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