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안따지고 지원금 주자니… 맞벌이 “땅부자는 받고 우린 못받나”
재난지원금 소득기준 혼란 확대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득기준을 둘러싸고 혼란이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 70%’라는 대강의 기준만 밝혔을 뿐, 월 소득을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부동산 등 보유 재산까지 감안한 소득환산액을 기준으로 할지 등 핵심 기준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관련 부처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난지원금 수혜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정부에서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31일에도 이틀째 이어진 것이다. 정부는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 소득기준 두고 이틀째 갈팡질팡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재난지원금 기준에 대해 관계부처 및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늦어도 다음 주 중에는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면 신속하게 지급할 수는 있지만 재산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고, 그렇다고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하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있다”며 합리성과 신속성 등 두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득기준 시점에 대해서는 “최근 자료를 반영하면 집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올해보다 지난해 소득을 기준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앞서 이날 오전 구윤철 기획재정부 차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소득 하위) 70% 정도 되면 중위소득 기준으로 150% 정도가 되고, 월 710만 원이 넘어가는 수준”이라며 “시간이 많고 넉넉하면 재산, 금융소득 등을 넣을 수 있지만 이것은 긴급성 요소가 있다”고 했다. 지급 기준에 보유 재산을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재산을 반영하지 않으면 자산가들도 지급받는 것이라서 반드시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만약 월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위 70%의 소득기준이 정확히 얼마인지, 가구원의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등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성급하게 정책을 내놨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준도 정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하니 행정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맞벌이·노키즈·1인가구는 불리
이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계층의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4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최모 씨(29)는 “주변 맞벌이 부부 중 재난지원금을 받을 것 같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은 가구당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데다 가구원 수로 소득기준을 정하는 만큼 맞벌이나 아이가 없는 부부는 지원금을 받기가 매우 불리하다. 게다가 만약 재산 기준이 빠지게 되면 집 없는 월급쟁이들의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맞벌이 직장인 A 씨(31)는 “정부에 신고하는 소득은 적지만 부동산은 많은 자산가에게까지 혜택을 준다면 안 된다”고 했다.
근로소득이 어느 정도 있는 1인 가구도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인 가구에는 빈곤 노인이나 저소득 청년 가구도 포함되다 보니 재난지원금의 소득 기준선이 되는 중위소득 150%(올해 264만 원)가 상대적으로 낮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어차피 신속한 지원을 못 한다면 코로나로 인한 피해 정도를 좀 더 정밀하게 따져서 필요한 계층에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남건우 / 송혜미 기자
재원 20% 지자체 부담 요구에… 충북-울산 자체지원 보류
대구경북-대전-인천은 중복 지원
경기는 정부 지원금 20% 떼기로… 서울-강원-제주 아직 결정 못해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소요 예산의 20%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라고 하자 자체 현금성 지원안을 발표했던 지자체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부 지자체는 기존에 내놓았던 지원방안을 철회했다. ‘정부 지원금과 지자체 지원금을 중복 수령할 수 있다’고 한 정부 약속이 100% 지켜지지 않는 지자체가 많다.
31일 경기도는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전 도민에게 10만 원의 재난기본소득을 그대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단, 정부 지원금은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20%를 빼고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1인당 10만 원을 추가로 주는 경기 파주시의 소득 하위 70% 이하 4인 가족은 △경기도 지원금 40만 원 △파주시 지원금 40만 원 △정부 지원금 80만 원 등 총 160만 원을 받는다. 원래는 정부 지원금이 100만 원 나와야 하지만 20만 원 줄게 됐다.
원래부터 지자체 지원금을 주지 않는 경기도 내 시군에서는 정부 지원금 중 10%만 빼기로 했다. 소득 하위 70% 이하 4인 가구 기준 △경기도 지원금 40만 원 △정부 지원금 90만 원 등 130만 원을 주는 것이다.
서울시는 기존에 발표한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30만∼50만 원의 재난생활비를 정부 지원금과 중복으로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서울만 다른 지자체보다 재원을 더 부담하라고 한 것에는 난색을 표했다. 이상훈 서울시 재정기획관은 “다른 시도처럼 20%만 부담하게 해달라고 요구 중”이라고 했다. 강원, 제주, 광주, 전남 등도 기존 지원책을 유지할지 정부의 추가 방침이 나온 뒤 결정하기로 했다.
충북, 울산 등 일부 지자체는 재원 부담 탓에 기존에 추진하기로 했던 자체 지원을 보류하고 정부 지원금만 지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구 경북과 대전, 인천은 중복 지급한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의 재원 일부를 지자체에 부담하게 한 것에 대한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추경으로 보전해주겠다며 지방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독려했던 정부가 지방정부로 하여금 20%를 부담하라고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공무원은 “돈이 없는 곳은 빚을 내라는 것이냐. 전액 국비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 사회부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