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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으로 인해 강건합니다!
젊은 시절,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참다 참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박 일주일간 링거주사에만 의지한 채 단식을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매정하게도 제 침대 앞쪽에 ‘절대 금식’ 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틀간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만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분이 병원 밥투정을 하면서 딱 한 숟가락만 뜬 식판을 물리며 ‘그냥 내어가라’ 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저런 저런!’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배가 출출해지는 9시 뉴스 시간 때마다 통닭이다, 족발이다, 몰래 야식을 즐기는 날라리 환자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어찌 그리도 야속한 사람들이 다 있던지요. ‘절대 금식’이란 표시판 때문인지 한번 먹어보라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생리 구조상 하루 세 끼 식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단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목표하는 특정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진단, 질병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식은 하나의 목적성을 지닙니다. 사순시기 동안 그리스도 신자들은 작은 몸짓이지만 단식을 통해서 예수님 수난에 상징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 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 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막 걷기 시작한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 중에 악마로부터 받는 유혹도 많겠지만, 그 여정이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활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간의 긴 단식침묵 개인 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피정기간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정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빵과 권력과 재물이라는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용감히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피정을 보면 우리의 사순절이 어떠해야 하는지 즉시 답이 나오는군요.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루카 4,1-13
광야는 ‘이것’ 하나 찾는 장소이다
사순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 안에 합당하지 않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시간입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요? 헤라클레스 신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와 뛰어난 미모와 지혜를 지닌 인간 여성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영웅입니다.
제우스의 정실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여러 외도로 태어난 자식들을 매우 싫어했는데, 헤라클레스의 경우에도 특별히 더 큰 분노를 보였습니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헤라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빠는 힘이 너무 세서 억지로 떼어내야 했습니다.
그때 분출한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분노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어 인간으로 살게 만들어버립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그가 아내 메가라와 자녀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헤라클레스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겼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속죄를 결심하고, 델포이 신탁을 찾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유명한 ‘12가지 과업(노역)’이었습니다.
이 열두 가지 과업을 모두 완수함으로써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고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12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중에 머리가 여러 개인 괴물 히드라도 쳐부숩니다.
헤라클레스는 조카인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히드라의 목을 자른 뒤 불로 지져 재생을 막는 전략으로 괴물을 무찔렀고, 히드라의 독을 얻어 화살에 바름으로써 강력한 무기를 확보했습니다.
12가지 노역을 마친 뒤에도 헤라클레스는 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영웅적 모험을 이어갔습니다.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계략
때문에 헤라클레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네소스는 헤라켈레스에 의해 죽어가면서 히드라의 피가 사랑을 영속시키는 ‘묘약’이라고 말해줍니다.
데이아네이라가 ‘사랑의 묘약’이라고 여겨 헤라클레스의 옷에 바른 독이 그의 살갗에 닿아
끔찍한 고통을 일으켰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오릅니다.
떠밀리는 죽음이 아닌 산 채로 자신을 화장시키는 능동적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불길에 몸을 던지자, 제우스는 그의 영혼을 올림포스로 데려가 오랜 고통에서
해방했습니다.
이로써 헤라클레스는 신들 사이에 올라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며, 그를 괴롭히던 헤라 또한 그를 올림포스의 정당한 신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삶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함으로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이 평생 해 온 사명의 완수만으로 충분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겸손’을 회복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 교만을 태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발을 절뚝일 수밖에 없었고 에사우 앞에서 일곱 번이나 엎어져 “당신 얼굴을 보는 것이 하느님 얼굴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그를 경배합니다.
이에 선물 때문이 아닌 그의 겸손함을 보고 에사우는 야곱을 자신의 땅에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명을 수행하기 전에 광야에서 세 유혹과 싸우기 위해 단식하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불 속에 던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예수님을 인간성인 세속-육신-마귀를 태워버립니다.
결국 광야의 사순절은 우리가 기도-자선-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기 위해 겸손해지는 목적으로 행하는 인간이 신이 되는 과정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단식하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6끼를 굶고 느낀 것은 ‘이틀 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뭐 대단하다고 예수님께 무언가를 해드린다고 착각했을까요?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나의 뜻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고 자선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며 단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양식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존재도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속에서 유일하게 남는 이 ‘겸손’을 찾는 일이 사순의 의미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우리 교회 안에 파스카 축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은 없다. 파스카 축일이야말로 다른 모든 축일을 거룩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승리와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파스카 축일의 신비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하여 40일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즉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충만히 참여하는 데 필요한 기간으로 사순절을 살고 있다. 오늘의 성서 대목들은 이 파스카라고 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피곤하지만 기쁨에 차 있는 우리 여정의 의미와 방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 26,9)에서 수확한 첫 결실을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감격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첫 결실을 바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고백하고 있다(참조: 신명 26,5-9).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위해 오랫동안 시험과 단련을 받았다. 우리도 약속의 땅인 파스카의 영광에 참여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사순절을 지내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카의 신비는 약속의 땅보다 더 의미가 깊다.
복음: 루카 4,1-13: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유혹의 내용이 아니라 이 사순절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이 단련되고 또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따르게 하고 있다. 복음을 체험 중심으로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유혹은 예수님의 수난까지 계속된다. 즉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유혹이다. 즉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1-2절) 하고 있고,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13절). 그 ‘다음 기회’란 ‘수난의 때’이다. 그 악마는 유다의 배반과(루카 22,3)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루카 22,53)라고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둘째, 이 유혹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한(루카 3,22) 세례 후에 나타난다. 사탄은 아주 고도의 수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세속적 권세와 명예와 영광에 결부시켜 세속주의적인 ‘메시아’로 만들려고 한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유혹을 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3.9절).
이러한 유혹은 계속 예수님께 그분의 공생활 중에도 나타났던 것이었다. 군중들(14,15; 19,11)과 고향 사람들(4,23) 그리고 사도들(10,20)로부터도 나타났다. 십자가 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23,35). 사탄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유혹은 바로 예수께 하느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로서보다도 인간들이 바라고 원하는 그런 메시아가 되라는 무서운 유혹이다. 즉 현세적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이다. 이것이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동요시키는 유혹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이 보여주신 것을 통해 원하시는 것과는 달리, 즉 하느님의 뜻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눈치에 자신을 맞추라는 유혹이다.
이것이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하고 우리에게는 성공하는 영원한 유혹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의 표현인 ‘말씀’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성공하지 못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4절)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8절)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12절). 즉 예수님은 ‘말씀’의 식별력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하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명이다. 하느님만이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이란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어 구원해주실 수 있는 그분께 도움을 청하며 의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것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를 말하고 있다. 그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 자신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음의 멍에까지도 없애셨다. 이제는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 그 구원을 갈망하며 하느님께 호소하여야 한다고 한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13).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여정도 그리고 그 도착지도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사순절은 파스카와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은총이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감으로써 말씀을 실현해 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께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보다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라고 더 애쓰는(갈라 1,10)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체를 통해 받으셨던 유혹을 우리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리하고 인간적인 원의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유혹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좀 더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사순 오늘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우리나라 명품시장 규모가 세계 7위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명품을 좋아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날 품질과 디자인이 모두 뛰어나고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을 명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인 명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성숙함과 외면의 유려함을 모두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일상에서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 사람이 진짜 명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변함없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평가도 충분하지 않은,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귀한 우리가 될 것입니다. 명품의 삶을 사는 사람은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 세상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둘째, 잠잠히 때를 기다리고 실력을 쌓아 나간다.
여러분은 고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당연히 두 번째 선택에 손을 들어야 명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은 두 번째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맹자는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 스스로를 버리는 사람은 하늘도 도울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큰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당신을 바라보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그 고통과 시련을 겪으셨고, 이 모두를 이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모범을 보고 또 그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십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한 상태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악마를 경배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이었습니다. 마지막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입니다. 우리가 겪는 유혹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물질적인 유혹이고, 둘째는 세상 지위에 대한 유혹이고, 마지막은 하느님 존재에 대한 유혹, 즉 기적의 유혹입니다.
이를 성경 말씀으로 모두 이겨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유혹을 계속 받습니다. 과연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이겨내고 있습니까?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진짜 명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이 걱정하는 것은 결국 당신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조셉 머피).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2)
자, 이제
광야로 나갑시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예수님과 함께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며
성령의 충고를
섬세하게 깨닫기 위한
긴 침묵으로 들어갑시다.
지금 이 시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건너가려는 이들에게 허락된
절호의 기회입니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악마의 가장 교활한 유혹은
주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셨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잠시 누울 공간도 없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전교 활동을 했지만
유다인들의 몰이해와 몽매함의 벽에 부딪쳤을 때
전교 활동 중에 수많은 오해와 곡해로 배척받으면서
유다인들의 음모와 이간질을 몸소 받아내면서
3년 동안 동고동락하고 한솥밥을 먹으며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제자들의 배신과 부인 앞에서
올리브 산에서 홀로 외롭게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실 때
십자가 위에서 모진 수모와 비난을 받아내며
외로이 홀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때까지
그런데 결국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아버지의 손에 당신의 영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기도가 아니고서는 마귀를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사탄의 유혹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이를 막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그분께서 허락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또 다른 장소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 2)
사순(四旬)시기는
특별히
삶의 본질을
우리 삶에서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혹이 있고
또한 광야가
있습니다.
유혹이 있기에
기도가 있고
광야가 있기에
하느님을 찾는
우리의
성장이 있습니다.
유혹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느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말씀의 양식을
받아 먹습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결코 침범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우리들
여정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에서
유혹을
체험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기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사명을
뜨겁게 만나는
광야입니다.
물질에 대한
권력에 대한
명예에 대한
유혹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진정 살아있음이
인간의 욕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사순입니다.
말씀의 관계이며
섬김의 관계이며
내어맡김의
관계입니다.
유혹을 받는
삶의
광야에서도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깊어지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악마에 대처하는
지혜와 사명을
만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여정을
막을 수 없듯이
말씀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행복한
사순의 여정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덧없는 것을
물리치는
사순
제1주일입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26,4-1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9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0,8-13
형제 여러분, 성경에서 8 의로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