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사피엔스
때때로 발생하는 재앙에 가까운 전염병 창궐은 일상을 급작스럽게 예측불허로 침범하는 것이었으며,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설명이 가능한 범주의 바깥에 있다. - 윌리엄 맥닐 시카고대학 교수 -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지구온난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냈다. 이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다. 코로나19 앞에서 지금까지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이다.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류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포스트 코로나 문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장근본주의의 극복,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 구축,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 욕망에 대한 질서 부여, 인간서식지 무한 확대 방지, 도시적 공간 집약화 해소가 그것이다.- 홍기빈 글로벌경제연구소 소장
돌아보면 21세기 들어 발생한 악성 바이러스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네 개나 된다. 사스는 2002년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했고, 신종플루는 돼지에서 유래한 A형 인플루엔가 변이되어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해 전세계로 확산되었으나, 다행히 그해 백신이 나와 안정세를 찾은 바 있고, 메르스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되어 2015년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코로나19와 같은 호흡기 질환으로 기침, 호흡곤란, 설사, 고열 등 증상을 나타낸다. 치사율은 메르스가 27%였던데 비해, 코로나19는 2.6%로 낮은 편이지만, 확산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외 전염병 치사율을 보면 광견병과 에이즈가 거의 100%로 가장 높고, 아프리카 에볼라 강가에서 시작된 에볼라바이러스가 50∼89%, 홍콩독감이 70%, 천연두가 1% 정도였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武漢市)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발생하면서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그것은 전염됨으로써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달리,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을 못하고 남의 유전체를 통해 옮기는 특성과 감염 초기에 증상도 느끼지 못하면서 계속 남에게 옮겨 간다는 점과 전세계가 글로벌화 되었다는 데 있다.
WHO는 1968년 크게 유행한 홍콩독감과 신종플루에 이어서, 코로나19에게는 사상 세 번째로 펜데믹(世界的 大流行)을 선언하기도 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렇듯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으나 딱 떨어지는 처방은 없는 것 같다.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보자.
“우리가 자연과 접촉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자원이 자연에서 오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연과 좀 절제된 접촉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고서도 자연과 지나치게 접촉을 하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음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저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 학명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에 걸맞게 조금만 더 현명해집시다.”
다음은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의 재편에 있는 처방으로, “지금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게 수단이잖아요.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게 결국 목표인데, 주객이 전도된 이런 가치관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많은 사람에게 인간의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개인은 어떻게 인식과 행동을 바꾸고, 사회는 어떻게 개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위기가 지나간 후에 정확히 어떤 사회적 합의가 형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안전한 사회, 다 같이 잘사는 사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가 돈을 좀 더 풀고 의약산업이나 비대면 서비스산업 개발에 더 투자하는 차원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합니다.”- 장하준 교수
“KBS의 경우 2020년 이전 3년 동안 매년 1,000억 이상의 적자가 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 1,000명에게 저녁 7시에 어떤 매체를 보는지 설문조사를 했더니 56.7%가 유튜브를 본다고 대답했어요. 지상파는 18%, 그다음은 케이블로 9%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TV가 27%밖에 안 되는 거예요. TV 본다는 분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이었고요.
대학생이라면 거의 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IT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웁니다. 90개 대학이 참여하는 〈멋쟁이 사자처럼〉이란 동아리도 있고요. 그 친구들이 실제 자원봉사를 통해서 교육 콘텐츠도 만들고 본인이 개발한 소스를 공개해 학습에 활용하기도 하죠. 메리스 때는 개발했던 것을 그대로 적용해 단 하루 만에 확진자들의 이동경로를 지도상으로 보여주는 앱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이것을 본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cns-스마트 폰을 든 사람)들은 ‘국민이 진짜로 편하려면 지도 기반의 앱이 필요하겠다’라고 반응하기도 한 거죠.
구한말 유교적으로 사대해야 한다면서 단발령이 내리니까 광화문에서 읍소하고 난리가 났잖아요. 지금이 그때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요. 형식적으로 달라 보이면 두려움이 생기지만 마음속에서부터는 ‘이거 괜찮네’하면 할 수 있다고 봐요. 한 예로 연 매출 2억 원에 직원이 3명인 막걸리 회사가 있었어요. 사장이 사정이 어려워 문을 닫으려고 하자, 아들이 ‘우리 막걸리는 맛도 좋고 괜찮으니 제가 한번 살려보겠습니다’하고 뛰어들었죠. SNS 마케팅을 했더니, 딱 10년 만에 매출이 100배 늘고, 직원도 늘어났어요. 포노 사피엔스의 문명의 길이 열린 거죠.”-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 ‘포스트코로나, 시대 문명의 전환’중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 나이쯤 되면 SMS도, QR코드도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회자인 정관용 선생이 “어렵고 하기 싫어도 해야겠죠?”하고 물어보았다.
“맞습니다. 우리나라 60대 이상 분들이 대부분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않고 어려워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봤더니, 80달러더군요. 아프리카 우간다와 당시에 똑같이 출발한 겁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 태어나신 분들은 어린 시절을 우간다에서 보낸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환갑이 된 이분들이 60년 만에 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제조 강국으로 올려놨고,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현대 인류 100년 역사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기적을 만든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의 60대는 보호하고 지키는데 익숙한 세대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엄청난 도전으로 점철된 분들이라는 겁니다.
이런 분들이 디지털 문명과 스마트폰 이거 하나 적응 못 할 리가 있을까요? 젊은 애들한테 배워야 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문을 닫는 게 문제입니다.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더라. 그래서 난 안 배운다. 이러는 거죠. 그런데 지금 코로나19를 겪다 보니 어느 쪽이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 답이 나왔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나서서 바꿔야 합니다. 40억 인구가 동참하는 새로운 문명이라면 고집을 버리고 나도 한번 배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른들이 마음의 표준을 바꾸면 금새 바뀔 것입니다. 내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일, 우리나라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최재붕 교수
10년도 더 전에 미국 요새미트 국립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거기서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흑인과 백인이 섞여서 벌채인가, 간벌인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이드 왈, ‘쳐다보지 마라. 저들도 외국 여행 다니고 자신들보다 행복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 미국 우상주의에 빠져 있다.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다. 대학 제도, 엘리트 대학 시스템, 입시경쟁, 등록금이 모두 그렇다. 미국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국민소득에 대비하면 대한민국이 더 높다. 유럽은 엘리트 대학도, 입시도, 학비도 없다. 정치도 그렇다.
“미국인 절반 이상이 제3세계 수준의 삶을 산다는 것. 게다가 생존과 생명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줄 공공의료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진 미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너무나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국은 사실 전세계에서 가장 미국화가 심한 나라거든요. 어떤 이는 ‘과잉 미국화’라고 해요. 문제는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데 있어요. 우리는 미국을 선진국 모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는 ‘미국은 사회적으로 보면 지옥이다’라고까지 했어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긴 것은 맞지만, 자본주의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는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소위 ‘야수자본주의’라고 불러요. 전세계 최고 수준의 실업과 불평등, 자살률, 노동시간, 산업재해율을 보이는 건 바로 자본주의 야수성이 한국 사회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자본주의 문제는 무계획성입니다. 이미 과잉단계를 넘어섰습니다. 보통, 학자들은 ‘과잉 생산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체제이기는 하나 중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수요가 없는데도 무작정, 무한히 생산을 계속한다는 거죠. 생산을 중단하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수요가 없어 불필요할 때도 계속 생산해야 한다는 것, 생산이 뭔가요? 모든 생산은 자연 변형이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거잖아요. 끝없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말이죠.
지금의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준비해야 할 것은 첫째, 거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능력 위주, 실력주의 수월성 사고는 이제 존엄성 사고로 바꿔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자는 겁니다. 둘째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여준 것을 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전제주의, 미국의 자유방임주의, 일본의 관료주의 모델, 그 어느 것보다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를 맞아 힘든 점도 많습니다만 이런 위기를 계기로 우리가 전환적인 사고의 계기를 맞았다는 점, 그만큼 세계관이 넓어졌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포스트코로나 시대, 세계관의 전복’중
“나 스스로 하는 감탄이 바로 보람이죠. 나이 많아서 돌아가신 분들을 대상으로 연구해보면 ‘살아서 돈을 더 벌걸’하고 후회하는 분은 거의 없고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못 갔다.’며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는 죽을 때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해 원통하다.’고 하지 않았죠. 조조는 자기 무덤을 72개 더 만들라고 하고 죽었는데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사람들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보람을 못 찾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무덤을 누가 파헤칠까 봐 그 두려움 때문에 가짜 무덤을 만들라고 하고 죽었답니다.
지위고하와는 상관없이, 성공 여부를 막론하고 사람은 죽을 때 후회를 합니다. ‘그 친구한테 더 잘할걸, 그 사람한테 더 잘해줄걸’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보람’이라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잘 지내 온 흔적, 다른 사람과 공존한 삶의 흔적이란 애기입니다.
예전에는 반 친구들이 N사나 P사 운동화를 사면 다 따라 샀어요. 없으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학교를 가보면 각각 다양한 브렌드, 다양한 스타일의 신발을 신잖아요. 그만큼 개성을 찾아주는, 성장시켜주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개성을 살리는 게 사실 굉장히 중요하고 지혜로운 메카니즘입니다. 이제 다른 나라를 쫓는 시기는 지나갔어요. 한국은 독특한 장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저 외국 것을 배우거나 외국을 쫓는 것 말고, 내재 된 특이한 장점을 잘 꺼내와서 우리만의 장점으로 살리는 기회를 코로나19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BTS가, ‘기생충’이,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고 있는 거잖아요?”-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포스트코로나 시대 행복의 척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