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7]<김예슬 선언>을 기억하시겠지요?
엊그제 경희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을 소리내어 읽으며 몇 번이고 울컥했다. 명문名文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상아탑의 교수라는 지식-지성인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게시판에 붙은 한 여대생의 대자보가 떠올랐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대학’의 존재 자체와 그 가치를 이 친구처럼 적나라하게 짚은 것은 처음이었을 듯, 그 충격이 당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 그때쯤 <아름다운(?) 결단>이라는 제목으로 쓴 졸문을 기억해내 묵은 자료를 찾았다. 다시 읽어보는데 느낌이 새로워 전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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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책상 앞에는 A4용지 석 장으로 된 대자보가 복사되어 있다. 이른바 안암골(고려대학교)의 ‘김예슬 선언’이다. 나는 두 번, 세 번 읽은 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카피해 붙이면 그만이지만, 그 친구의 고민을 잠시라도 같이 느껴 보자는 생각에서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우리들의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25년간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 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을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큰 배움 없는 ‘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맹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두고 말한다.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다”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읽으셨는가? ‘대학 자체를 거부하는’ 22살 여대생의 뜨거운 고민이 숨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남의 딸이 아닌, 바로 우리의 딸이다. 무엇 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야단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명문대 경영학과 3학년, 요즘 말하는 ‘스펙’치고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있을까. 오죽하면 ‘스펙 세트’라는 말이 있을까. 학벌, 학점, 토익, 인턴십, 자격증, 봉사활동 등 6종 세트에 ‘성형’을 추가하면 7종세트라던가. 사립 명문대 경영학과이니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법도 한데, 그것은 ‘보장된 미래’가 아니고 ‘죽음의 미래’라고 선언하고 분연히 캠퍼스를 나선다.
누가 이 친구를 ‘돈키호테’라 하는가. 김예슬, 너의 ‘용기’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박수를 보낸다. ‘예쁘고 슬기로워서’ 예슬인가. 고민이 깊은 만큼 글에 진정성이 뚝뚝 묻어난다. 대학의 현실과 사회현상을 적확히 꿰뚫어보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의 결과까지 잘 알고 있다. 상아탑이 돌멩이 하나 빠진다고 끄떡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멩이는 외친다.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라고.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지만, 선전포고가 당차고 호기롭다. 논술시험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이렇게 ‘명문’을 쓸 수 있을까. 원고지 7장(1400자) 분량으로 써내려간 예슬양의 대자보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이렇게 이래서 이렇게 한다, 기승전결도 완벽하다. 요즘 대학생들 책 안읽는다는 말도 거짓말인가 보다.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고? 큰 배움 없는 대학이 무슨 대학이냐고? 대학이 자격증장사 브로커라고? 세계를 무대로 자유하리라는 말은 ‘말짱 황’이라고? 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실제로 그렇다는 말이다.
기성세대로서, 학부모로서 너를 보기가 부끄럽다. 아니 이 땅의 대학생들 보기가 창피하다.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짜안하다. 가만히 아무말없이 보듬어주고 싶다. 그랬구나. 네가 달려온 트랙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힘들었구나. 미안하다. 모두 어른들 잘못인 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카락을 쥐어뜯어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을. 아, 살아 있으면 올해 100살이 된다는 천재시인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 <13인의아해가 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네가 달려온 그 트랙은 출구가 안보였던 모양이구나. 끝이 없는 터널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지. 왜 모르겠니. 애썼다. 이제 ‘자유(自由)’로운 한 마리 새로 비상하라.
만약 나의 딸이, 아들이 이 친구와 같은 식견으로 ‘자발적 퇴교’를 상의해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줄까.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궁색한 답변을 찾기 바쁘리라. ‘네 마음과 결심은 알겠는데 1년만 죽어라고 참으로 안되겠니?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에서 무너지면 파멸인데. 그런 시도 있잖니? 님은 꼼짝도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사회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같은 거야.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다들 너만큼 고민해, 임마. 이 애비가 빈다. 제발 한번만 성질 죽이면 안되겠니? 어떻게 쌓아온 탑인데, 여기에서 주저앉아? 주저앉는 게 아니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얘야, 어림도 없어. 네가 사회를 잘 몰라서 그래. 어차피 사회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모 아니면 도란 말이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바꾼다는 말도 있어. 틀림없이 며칠 못가서 후회할 것다. 생각 고쳐 먹어, 제발이잉’
하지만, 나는 그런 답변은 사양하고 이렇게 말하겠다. 예슬양처럼 소신있게(말과 글과 행동이 뚜렷하다면) 대든다면 “좋다. 네 뜻대로 하라. 학적 밖으로 행군하라. 네 꿈을 찾아 떠나라. 어차피 네 삶은 너의 것이다. 부모는 너의 껍데기로 마지막까지 사랑해줄 의무 밖에 없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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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김예슬 선언’이 있고난 직후 ‘붓 가는대로’ 썼을 것이다. 14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쓴다해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현실과 상황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그 김예슬 양은 지금 무엇이 되었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 <시사저널>에서 ‘2024 차세대리더 100인’에 선정되었는데, <나눔문화> 사무처장(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나눔문화>는 “나눔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라는 기치로 설립한 비영리 시민단체이다. 그는 2016-2017년 23주 동안 계속된 촛불혁명의 현장과 역사적 의미를 기록한 『촛불혁명』(400쪽이 넘은 자료와 현장사진 그리고 해설을 덧붙였다)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일본국회에서 이 주제로 초청특강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작은 거짓은 쉬이 알아채도 거대한 거짓은 길게 유지된다”면서 “불의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2가지는 살아있는 시민의 항쟁과 그것을 기록한 한 권의 책이라는 믿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내 제대로 된 꿈을 찾아, 오늘도 내일도 ‘전진하는 차세대리더’임이 틀림없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