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주(38)는 이제 ‘두목 곰’이 아니다. 열흘 전 두산 베어스(Bears)에서 방출된 무적(無籍) 선수다. 그는 1998년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에서 데뷔해 올해까지 17시즌 동안 같은 유니폼만 입었다. 국내 정상급 타자로 전성기를 누렸고, 역대
최고 수준의 몸값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해외 무대에 나가고 싶다는 바람은 실현하지 못했고, 지난 3년 동안 1군에서 100경기도
채우지 못했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인 그는 다른 팀과 입단 협상을 거쳐 계약을 맺으면 내년에 선수로 뛸 수 있다. 자신을 원하는
구단이 없으면 제대로 된 은퇴식도 없이 유니폼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역대 신인 최다 홈런 등 화려했던 선수 생활
김
동주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8년 OB에 입단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현 한국야구위원회 규칙위원장)은 김동주에게 4번 타자를
맡겼다. 김동주는 데뷔하자마자 24홈런, 89타점, 타율 0.265를 기록했다. 신인 타자 24홈런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그해 신인왕은 12승4패, 승률 0.750(1위)의 고졸 신인 투수 김수경(현대)이 차지했다.
김
동주는 유연성, 변화구 대처 능력, 장타력, 선구안 등 좋은 타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갖고 있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시즌 동안 홈런 186개(평균 26.6개)를 터뜨렸다. 그는 통산 273개의 홈런 중 절반 가까운 131개를
잠실에서 쳤다. 특히 2000년 5월4일 잠실 롯데전에선 상대 에밀리아노 기론을 두들겨 좌월 홈런을 뽑아냈다. 비거리 150m.
1982년 잠실구장 개장 이후 최초의 장외 홈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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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 5일 LG와의 경기에서 김동주(두산 소속)가 개인통산 잠실구장 첫 100호 홈런을 기록한 후 주먹을 쥐며 기뻐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홈런 볼이 떨어진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 옆엔 그의 장외홈런을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김동주는 2001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앞장섰다. 1998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00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등 국제대회에서도 기쁨을 누렸다. 통산 골든 글러브를 4번 차지했고, 2003년엔 타격왕(타율
0.342)에 오르기도 했다. 가정불화, 은퇴 선언과 번복 등으로 굴곡 겪어 그
는 2003년에 5살 연상이던 부인과 이혼했다. 전 부인은 김동주가 고교시절부터 알던 누나였다. 김동주는 고려대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자 이 여성의 집으로 들어갔고, ‘미래의 처가’로부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동주는 대학을 마치고
OB에 들어가면서 전셋집을 얻어 전 부인과 혼인신고를 했다. 동거 일년 후쯤엔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김동주와 전 부인의
사이는 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 부인 측은 김동주가 외도를 했다고 주장하며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양육비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서기로 합의했다. 김
동주가 2004년 10월19일 구단과 언론사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잠적한 배경에도 가정 불화가
있다. 당시 두산 측은 “김동주가 손목과 무릎 등 잦은 부상과 가정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은 상태”라며 “돌아오는 대로 만나서
은퇴를 번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주는 2004년에 타율 0.286, 19홈런, 76타점으로 주춤했다. KIA, 삼성과 벌인
포스트 시즌에도 중심타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 그런데 김동주는 은퇴 선언 한 달여 만인 11월26일에 자신의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복귀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당시 그는 “목표가 하나 생겼다. 최고 몸값 선수가 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부상, 재혼, 이면 계약, 일본행 실패 등 굴곡 김
동주는 2006년 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대만전에서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쳤다.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부상이었다. 수술, 재활을 하느라 그해 국내리그엔 43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2007년 3할 타자로
복귀(0.322)하고 19홈런을 치며 재기했다. 그해 겨울 재혼도 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까지 얻었다.
구단 측은 4년 62억원을 제시했다. 김동주는 이를 거절했다. 대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진출이 여의치 않게 되자 두산과
1년 9억원(옵션 2억원 포함)에 2008년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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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김동주
김동주는 2008년에도 준수한 성적(타율 0.308ㆍ18홈런ㆍ104타점)을 거둬
다시 일본 진출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국내리그에 남은 보상은 충분히 받았다. 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51억원을
쥐었다. 그중 계약금 16억원은 공식적으로는 발표하지 않고, 이면합의로 받았음이 나중에 밝혀졌다.김동주는 2012 시즌을 마치곤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3년간 32억원(계약금 5억원ㆍ연봉 7억원ㆍ옵션 연간 2억원)이라는 조건에 계약했다. 국내리그에서만 뛴 야구 선수 중에선 처음으로 연봉 총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김동주는 지난 세 시즌 동안 한 번도 공식 연봉을 다 받지 못했다. 2군에 머무는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가 1군에서 제외되면 그 기간에 따라 일정액의 연봉을 깎는 규정이 있다. 규
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김동주는 인센티브를 받기는커녕 돈을 토해내야 하는 계약 조건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2년간 세금까지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2억원을 약간 넘었을 것이다. 올해는 연봉 6억원에서 출발했는데, 1군에서 뛰지 못하고 퓨처스(2군) 리그에만
45경기에 나서 타율 0.306(3홈런 18타점)을 기록했다. 따라서 실제 손에 쥔 돈은 2억원 남짓으로 추정된다. 다른 구단 간다면 베테랑 역할 할 수 있을까? 김동주의 사람됨에 대해선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경기 중에 휴대전화 등으로 게임을 하는데 정신이 팔린 적이 있었다는 소문이 그중 하나다. 물론 본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두
산 사령탑을 지냈던 김진욱, 송일수 전 감독이 김동주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송일수 전 감독은 김동주가
지난여름 트레이드를 요청하자 “김동주의 활용은 감독인 내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못박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동주는 통산 300홈런에 27개를 남겨 두고 있다. 300홈런을 채우면 미련없이 은퇴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친 적이 있다. 내년에
1군에 합류하는 제10구단 KT의 조범현 감독, 한화의 신임 사령탑인 김성근 감독은 김동주가 방출됐다는 소식에 관심을 보였다. 제
9구단이었던 NC는 이호준(38)이라는 베테랑을 영입하면서 선후배 간의 융화와 팀 전력 상승에 큰 효과를 누렸다. NC가 1군 두
번째 시즌이었던 올해 정규리그 3위를 하고, 포스트 시즌에 나갈 수 있었던 데는 이호준 등 선참 선수들의 공이 적지 않다. 한국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중엔 ‘국민 타자’로 꼽히는 이승엽(38)도 있다. 이승엽은 일본 무대를 거쳐 친정팀은 삼성에 돌아온 뒤에도 팀의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김동주가 새로운 둥지를 찾으면 NC의 이호준, 삼성의 이승엽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을까. “헌신과 희생으로 모든 걸 전수하고 떠나겠다”는 김동주에겐 남은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