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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편: https://cafe.daum.net/Europa/2oQs/1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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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편: https://cafe.daum.net/Europa/2oQs/17150
“하지만, 은행은요?”
“아, 그렇군. 얘기해서 하루 미루도록 하겠네.”
그 후, 포그 씨는 요키넨 씨를 만나러 가고, 나는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소가죽을 사기 위해 왔습니다. 신사복 세트를 전부 처분한 돈만큼 그대로 나갔네요. 이게 과연 도움이 될지.
우리는 은행이 여는 시간에 맞추어 돈을 찾으러 갔다. 이제 다시 출발할 준비는 되었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주위를 몇 시간 정도 산책했다. 그러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이탈리아 화가를 만나서 지갑 찾는 일을 도왔다. 그는 대단히 활기차게 이야기했는데, 그러다가 북극에는 호텔도 시장도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에게 우리가 그런 쪽으로 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들이 왜 여행하고 다니는지 내가 알 수는 없으니까요.”
DAY 9
출발 시각은 그대로 오전 8시이니 서두릅시다.
지금 보니 다음 주 수요일 도착이네요. 일주일이나 걸립니다.
550 파운드를 지출합니다.
헉...배에 다리를 달아 놓은 꼴이라니...
......
요키넨 씨가 북극 여행을 맡을 거대하고 기묘한 장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때, 나는 바보같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우린 이걸 아이스워커(Icewalker)라고 부른다오.”
그가 기계 아래쪽으로 달린 거대한 금속 스키 하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참으로…적합한…이름이네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요키넨 씨는 엷게 미소 짓다가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우아하게 입을 가렸다.
기계는 대략 배처럼 생겼는데, 전면에는 강화유리로 된 조종실이 있었다. 관절부나 연료 계통, 보일러는 모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모피로 덮였다. 선체 자체는 파모르 족이 북극에서 사냥할 때 타는 코치(koch) 선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선저가 둥글고 외판에는 붉게 도장을 했으며, 보호용 보강 용골(false keel)이 추가돼 있었다.
(주: https://en.wikipedia.org/wiki/Koch_(boat))
“이 경이로운 발명품은 누가 설계했습니까?”
넋을 놓고 기계를 구석구석 살피던 내가 무심코 말했다.
“수백 명의 발명가가 독창성을 발휘해 삼 년간 심혈을 기울인 결과물이오.”
요키넨 씨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도저히 자부심을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합이 하는 극지 탐사는 지금이 처음인가요?”
그가 거짓으로 말할까 고민하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극적인 반응을 끌어낼 생각은 곧 포기한 모양이었다.
“아니오.”
그는 이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탐사도 극비사항이지.”
“왜 숨기죠?”
“너무 뻔하잖소?”
그는 재미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조합이 워낙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지라, 실패를 공공연히 드러낼 수가 없는 거지요.”
그때, 내 뒤에 있던 포그 씨가 헛기침했다.
“타세, 파스파르투.”
그의 눈동자가 매우 반짝였다. 눈에서 빛나는 것은 열정인가? 이 여정은 여느 사람에게 감당할 수준의 조건이 아니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리가 탑승하자, 출발을 알리는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두 번 들렸다. 보일러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음을 부수며 미지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북극으로의 탐사가 시작됐다. 간신히 북극점에 도달한다면 무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일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래 기름 램프의 불빛을 어둡게 줄이고 침상으로 올라갔지만, 한동안 잠들 수 없었다.
DAY 10
이 길을 택하다니, 포그 씨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 겁니다. 알아봐야겠습니다.
“주인님. 어떤 걸 원하시는 겁니까?”
“응? 왜 그러나.”
“북극에 가시겠다니 가기는 하지만, 따로 조사하신 게 있겠지요?”
“극지에서는 나침반에 의존할 수가 없다네. 훨씬 정교한 장비가 필요하다지.”
그러나 그런 문제는 지금 우리가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타임즈 지를 보시면서 알아내신 건 없나요? 위니펙 같은 데로 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 아, 위니펙에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여인이 살고 있다는 기사는 기억이 나는군. 문제는 정확한 나이를 입증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네.”
“캘거리는, 어떨까요?”
“가스타운으로만 간다면, 캘거리는 금방 갈 수 있지.”
…주인님은 딱히 계획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배는 비르고함나 근처 만(灣)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는, 달려 있던 기구를 긴 밧줄로 호송선에 옮겨 매었다. 기구는 기상 관측과 간단한 주변 탐색에 활용한다고 한다.
옮겨 달기 전, 기구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고 그 아래에 격납고 같은 공간이 있었다. 발명가 한 명이 그 안에 들어가 앉더니 아이스워커를 노려보았다.
“이런 거지 같은 괴물.”
“발명가이시면서 그렇게 얘기하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외쳤지만, 그는 내가 지켜 보고 있었다는 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바보 천치가 보아도 이건 흉물이잖아요. 하물며 발명가가 보는데 당연히.”
그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살로몬 오귀스트 앙드레(Salomon Auguste Andrée)라고 합니다. 제가 만든 이 기구를 북극에 설치하자고 지금까지 계속 주장했는데, 그랬더니 위원회에서 그저 지원용으로 쓰겠다고 징발해 가네요. 그리고는 뒤로 빠져 있으랍니다.”
“이 기구를 직접 설계하셨나요?”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당연하죠!”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왜요? 무슨 말을 들었죠?”
“아니,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지요.”
그가 이어 말했다.
“기구는 사적으로 제가 제작한 겁니다. 조합 승인 없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들이니까.”
그가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자기들이 가져가 버렸어요.”
그가 왜 이렇게 선내에서도 홀로 떨어진 곳에 배치됐는지 알 수 있었다. 조합 내부 정치 문제에 끼는 건 사절이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요키넨 씨가 내 옆에서 나오더니 입을 앙다문 무슈 앙드레를 보며 나를 아이스워커로 잡아끌었다.
“태울 수 있는 기술자는 전부 본선(本船)에 태워야 하지 않나요?” 나는 아이스워커를 슬쩍 보면서 이야기했다.
“파스파르투.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수플레(Soufflé)를 망치는 법.”
요키넨 씨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프랑스 속담을 말하려고 한 것 같은데.
“무슈 앙드레는 적합하다고 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소. 그자는 집착이 너무 심해. 북극에 미쳤달까.”
“다른 발명가도 다 그러잖습니까?”
그는 모욕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허리를 확 펴고는 나를 위아래로 뜯어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쩌면.” 그가 낄낄거렸다.
“그럴지도…….”
DAY 11
주인님 몸 단장을 해 드리고 식당으로 갑니다.
......
아침 식사 때, 요키넨 씨가 탐사단 동료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특히 탐사대 연구단장이라는 라이어 유호(Raija Juho)라는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 그가 이번 탐사에서 관측과 실험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다.
그도 내가 자신을 살펴보는 것을 눈치채고는 방 안 사람들에게 말했다.
“왜 과학자들이 아니라 ‘손님’을 태운 겁니까?”
“저희는 탑승객입니다. 요금을 내고 탄 거요.” 내가 강조했다.
그러자 요키넨 씨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지당하신 말씀. 라이어, 날카롭게 굴지 말아요. 이 두 분께서 메젠스키(Mezensky)를 비롯해서 파모르 사냥꾼을 고용하는 값을 전부 치르셨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발명가들이 우리 주인님과 좋은 거래를 한 셈이다. 답변은 유호 양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어떻게 발명가가 되셨나요?”
듣자 하니, 유호 양은 북극권에서 거주하는 민족인 사미(Sámi) 족 사람이었다. 발명가 조합의 수백 년 역사에서, 사미족 중 단 일곱 명만이 가입할 수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그중 하나였다.
“그럼 그분들이 대단히 자랑스러워하시겠군요.”
“우리 부족 사람들은 아직도 요술을 믿어요.”
자신은 그런 사람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위 우리 ‘문화’에 따르면, 제가 과학을 하기로 선택되었답니다.”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당신, 그럼 식구들은 포기한 겁니까?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그러자 유호 양은 날을 세웠다.
“당신은 이모가 배가 아프다고 의원 대신 무당에게 가는 모습을 봤나요? 당신네 지도자라는 사람이 신의 분노를 달래겠다고 돼지를 바다에 던져 넣는 짓을 한답니까? 기상 연구 대신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을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고요.”
“음…전공이 어떻게 됩니까?”
그의 분노를 조금 진정시켜 보려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완전히 다른 면이 발동했다.
“해양 생물학이에요.”
그러더니 그는 북극 제비갈매기의 번식 습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자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행히, 요키넨 씨가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그 틈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DAY 12
늦은 오후, 우리는 빙벽에 도달했다. 아이스워커에 달린 스키로 넘어갈 시도를 해 보기에는 너무 가팔랐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두꺼운 유리창이 달린 선교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요키넨 씨는 장난기 그득한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광택이 번쩍이는 나무 손잡이를 당겼다. 기계가 피식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요동치고, 엔진음이 전보다 더 높게 울렸다.
나는 주인님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는 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차분해 보였다. 나는 근처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창밖으로 기계 스키가 구부러지고 재조합되는 모습이 보였다. 숨겨 놓은 관절부가 있던 게 틀림없다! 스키는 저절로 날카로운 발톱 모양으로 변하고는 얼음덩이를 푹 찔렀다.
우리는 얼음 표면을 종종거리며 올랐다. 그 외에 다른 적합한 표현이 없을 것 같군. 아이스워커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쉭쉭거리고 찢어질 듯 큰 소리와 함께 증기를 내뿜어 댔지만, 그래도 덕분에 우리는 오 분 내로 얼음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다음에는…” 요키넨 씨가 쾌활하게 말했다.
“벨트 잘 매라고!”
“다음에는 미리 알려주세요!” 내가 씩씩댔다.
그가 씨익 웃었다. 덕분에 그의 하얗고 고른 이가 활짝 드러났다.
“그러면 무슨 재미야?”
나는 눈길을 돌렸다. 그에게 이런 식으로 당하는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
DAY 13
일어나 보니,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 연안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극점까지 육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아마 얼어붙은 바다와 끝없는 하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으리라.
북극은 밤이었다. 넉 달 정도의 짙은 어둠을 달래는 것은 쌓인 눈에 반사되는 미약한 빛과 한낮에 볼 수 있는 엷은 장밋빛 오로라뿐이다.
조용하고, 일견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잔혹한 곳이다. 바깥 풍경을 보다 보면, 전율에 마치 나를 내던져 저 광야에 녹아들고 떠다니고 싶은 마음도 든다. 우리 뒤쪽으로는 아주 작은 문명의 빛무리가 있을 뿐이고, 앞으로는 단조로운 백색만이 가득하다.
생각보다 가는 길이 편안하네요. 수시로 관리를 해 드렸더니 포그 씨 상태가 좋아요. 오늘은 주인님 다듬는 명령이 뜨지 않습니다. 그 대신 또 한 번 대화 기회가 왔습니다.
“요키넨 씨! 안녕하십니까!”
“오, 반갑소. 무슨 일로?”
요키넨 씨라면 다음 길을 알고 있을 것이다.
“듣기로 북극에서는 나침반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요. 훨씬 정교한 장비가 필요하다는데, 정말 가도 괜찮은 겁니까?”
“아, 물론. 그리고 보통 사람들 생각과 달리, 북극에도 꽤 많은 생물이 살고 있지. 못 살 곳은 아니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좋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계속 있을 수는 없고,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요? 개스타운에 가게 됩니까?”
“아닌데. 북극에서 딱히 아메리카로 가는 법은 우리도 모르오.”
헉…….
“그럼, 아시아는요? 요코하마는요?”
“그쪽도 잘 모르지. 이봐, 북극에서 알려진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DAY 14
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유호 양을 만나러 갔다.
“안녕하십니까, 마담 유호!”
“아. 무단침입자 씨.”
“무단이라니요. 정당하게 지불하고 탑승한 것이라니까.”
“네, 뭐…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북극에 가려는 이유가 뭐예요?”
“여행이죠. 우리는 세계 탐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세상에 이미 탐사가 끝난 곳이 얼마나 많은데.”
사실 그의 말이 맞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극이라고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건 아니라고요? 동식물도 제법 많으니.”
“그렇다니까요. 아, 참. 알려드리는 걸 잊었는데, 더 올라가면 정말 거대한 북극광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환상적이죠.”
나는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음, 그런 정도면…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도 한두 가지쯤 알려져 있겠죠? 가령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라든지…….”
그러나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지금까지 아무도 극점에 도달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처음이 될 텐데, 무슨 다른 길이 알려져 있겠어요?”
“아니, 그래도, 개스타운 정도라도! 호놀룰루로 바로 가는 방법이라든가!”
그는 질린 듯했다.
“없으니 그만 하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
망했네요. 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북극점 탐사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나는 포그 씨의 면도 물 온도를 정밀하게 맞추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트럼펫 소리가 길게 나더니 회랑에 많은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나는 포그 씨를 애원하듯 바라보았고, 그는 뺨을 한 번 슥슥 긁더니 입을 달싹거렸다.
“아, 그래 좋아. 파스파르투.” 그가 말했다.
“알아보러 가게.”
나는 장홧발 소리를 따라, 뱃고물에 있는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방으로 갔다. 메젠스키 씨가 파모르 족 사냥꾼 무리에게 큰 소리로 명령하고 있었는데, 그가 잠시 멈추더니 내 쪽을 노려보는 게 아닌가.
“여긴 무슨 일이오, 민간인?”
“뭐 하는 겁니까?” 내가 되물었다.
메젠스키 씨는 빛이 소름 끼치게 깜빡거리는 계기판을 슬쩍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너무 늦었군.”
그는 나를 옆으로 밀치고는 끙끙대며 내 뒤쪽의 격실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내 발 아래 바닥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요?”
나는 애처롭게 물었다. 하지만 답을 들으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파모르 족 사냥꾼이 나를 자기 옆 의자로 끌어당겨 앉히고, 안전띠 여러 개를 마구 채웠다. 쓸데없이 폭력적인데? 그러나 나는 괜히 끼어들었다 싶어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냥꾼은 모두 따뜻한 복장이었고, 중무장했으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웅웅 소리가 점점 고조되고, 이윽고 격실이 마구 뒤흔들려 토할 것 같았다. 격실이 아이스워커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발사됐다! 상황실인 줄 알았는데, 상황실을 가장한 자이로콥터였단 말인가!
나는 관측창에 몸을 기댔다. 흐릿한 하늘, 유빙이 휘도는 바다, 그리고 저건…오메!
“고래 저기 있네. (Thar she blows.)”
메젠스키 씨가 고래를 가리키더니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푹 찔렀다.
“영어로 그렇게 하잖소? 고래를 발견하면?”
“브리튼 사람이 아니라서요.”
나는 진부한 이 말을 계속 되뇌었다. 왠지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메젠스키 사냥단의 한 사람이 노어로 무어라 짧게 외치자, 사람들이 마구 서둘러 움직였다. 한 명이 천장의 해치를 열고 사다리를 타고 작살을 든 남자가 있는 쪽으로 올라갔다. 다른 이는 조종사에게 고래가 향하는 방향을 외쳤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없소.” 메젠스키 씨는 낮게 으르렁댔다.
“그러니 닥치고 거기 그대로 있으쇼.”
고래가 거대한 꼬리를 철썩여 달아나려는 모습이 보였다. 작살이 발사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큰 고함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이로콥터가 마구 흔들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작살잡이가 제대로 쏘았다. 굵은 밧줄이 사냥감에 제대로 들어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래 때문에 우리도 그를 따라 같이 흔들렸고, 바닷물은 피로 물들어 갔다.
주위를 살짝 둘러보았다. 사냥꾼들은 오히려 전보다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안전띠를 단단히 조였다. 두 번째 작살 소리.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우리는 이리저리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 한복판에서 반대로 뒤집혀 버렸다.
나는 의자 다리에 내 발을 바싹 붙이고 머리를 다리 사이로 넣었다. 불시착에 대비하기 위해서. 메젠스키 씨가 사냥단원들에게 소리 지르면서 명령을 해댔다.
현기증으로 아찔해진 내 머릿속으로 비명이 뚫고 들어왔다. 머리를 올려 보니 작살잡이 한 명이 손을 놓쳐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곧 작고 검은 점으로 변해 버렸다.
메젠스키 씨는 욕을 내뱉고는 자기 안전띠를 풀어내려고 했다. 그는 천장 해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먼저 사다리로 달려가 올랐다. 그는 너무 놀라서 나를 안으로 붙잡아 넣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남아서 사람들을 통솔하고 명령할 필요가 있다. 나는 순수히 필요에 따라 움직인 것뿐이다. 머릿속에서는 극적인 순간 등장하는 나의 재주에 한탄하는 우리 엄마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북극의 바람에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기 때문에 내 장갑이 금세 축축해졌다. 나는 작살을 잡고 흔들며 고래 쪽으로 조준했다. 자이로콥터가 기수를 위아래로 흔드는 통에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작살이 앞으로 날아가, 짐승의 급소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혔다. 피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고래가 한번 더 울부짖고 몸을 뒤틀었다. 작살 밧줄이 팽팽해지고 다시 한번 엄청난 요동이 닥쳤다.
장갑 낀 손이 연기에 그을린 유리나 기름때 낀 사진기 렌즈처럼 미끈거려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목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지른 것 같다. 나는 하늘 한복판에서 얼어붙을 듯 차고 어두운 바다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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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마 그대로...?
??? : Hey you, You're finally awake.
지금까지 80DAYS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너무 추워요ㅠㅠ
후 삘받아서 75일만에 세계일주 완료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위 게임 홍보 글은 무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ㅋㅋ